정의선은 왜 IT 삼매경에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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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은 왜 IT 삼매경에 빠졌을까
    자동차의 전동화, 스마트·자율주행화, 공유화, 항공화 시대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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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10-10 06:00
    박영국 기자(24pyk@dailian.co.kr)
    자동차의 전동화, 스마트·자율주행화, 공유화, 항공화 시대 대비

    ▲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케빈 클락 앱티브 CEO가 9월 23일 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서 자율주행 S/W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합작법인 설립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미국 레이더·인공지능(AI) 전문 스타트업 메타웨이브 ▲이스라엘 차량용 통신 반도체 설계 업체 오토톡스 ▲미국 모빌리티 서비스 업체 미고 ▲스위스 홀로그램 전문 기업 웨이레이 ▲미국 AI 전문 스타트업 퍼셉티브 오토마타 ▲이스라엘 인공지능 전문 스타트업 알레그로.ai ▲이스라엘 차량 탑승객 외상 분석 전문 스타트업 엠디고 ▲미국 드론 업체 ‘톱 플라이트 테크놀러지스’ ▲유럽 초고속 충전소 업체 아이오니티 ▲국내 IT분야 스타트업 '코드42(CODE42.ai)' ▲동남아 최대 카-헤일링 업체 그랩 ▲호주 차량공유 선도 업체 카 넥스트 도어 ▲인도 최대 차량 호출 서비스 기업 올라 ▲라스트 마일 물류업체 메쉬코리아(한국)·임모터(중국).

    지난 2년간 현대자동차그룹이 투자한 회사들이다. IT를 비롯, 물류, 차량공유 등 다양한 업종을 망라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나아가 한국을 비롯, 미국, 중국, 독일, 이스라엘 등 세계 5개 지역에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설립해 투자처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율주행 기업 앱티브와 손잡고 20억달러(약 2조3900억원)를 투자해 자율주행 S/W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합작법인을 세우거나 에너지 솔루션 기업 OCI와 공동으로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에너지저장장치(ESS) 실증 및 분산발전 사업을 추진하는 등 각종 협력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박사를 비롯, 삼성전자 출신 지영조 사장, KT 출신 윤경림 부사장, SK텔레콤 출신 설원희 부사장 등 이업종(異業種)으로부터의 인재 영입도 활발하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이업종을 향한 이같은 행보가 ‘과감’을 넘어 ‘과도’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투자 여력이나 기업 역량이 분산되며 본업인 자동차 쪽에 소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자동차 산업의 변화를 감안하면 이업종과의 협력과 투자, 그리고 학습은 완성차 제조를 주력으로 하는 현대차그룹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노력이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17년 3월 3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서울모터쇼 네이버 부스를 찾아 네이버랩의 자율주행 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데일리안 박영국 기자

    # 현재 자율주행 시장의 선두주자는 자동차 업체가 아닌 IT업체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Waymo)다. 시장조사기관 네비건트리서치(Navigant Research)에 따르면 웨이모는 2009년 이후 미국에서 누적 거리 400만 마일을 돌파했다. 국내 IT 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 SKT, KT, LG유플러스 등도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IT 업체가 자율주행차 시장을 ‘접수’할 경우 완성차 업체는 IT 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이폰 단말기를 만드는 곳은 대만 폭스콘이지만, 아이폰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곳은 애플인 것과 마찬가지다.

    # 차량공유서비스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앞으로 자동차가 ‘소유’가 아닌 ‘공유’의 개념으로 변모할 경우 완성차 업체들의 고객은 ‘대중’이 아닌 ‘공유서비스 업체’가 된다. 단일화된 거대 고객은 ‘절대갑(甲)’의 지위를 차지하게 마련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을(乙)의 위치에서 ‘판매’가 아닌 ‘납품’을 위해 갑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생애 주기를 통제하는 ‘BaaS(battery as a Service)’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배터리 제조를 넘어 렌탈이나 리스 등 배터리와 연계된 서비스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전기차 업체에는 렌탈이나 리스 형태로 공급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기차의 수명이 다하면 배터리를 회수해 ESS에 사용함으로써 수익을 보전 받고 ESS 사업도 키운다는 구상이다. 자동차의 전동화(電動化)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배터리 제조사가 전기차의 가장 중요한 부품인 배터리의 생애 주기를 통제하게 될 경우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제조사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 20세기에 공상과학영화 등을 통해 그려졌던 21세기의 모습은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전화기’와 ‘하늘을 나는 자동차’로 대변된다. 통신 기술이 당시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발전한 것에 비해 자동차의 발전은 더디지만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자동차에서 땅을 굴러다니는 기술이 큰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동안 그 기술을 연마해 온 완성차 업체들은 중요한 기술적 자산을 잃고 ‘제로 베이스’에서 이업종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


    ▲ 현대차그룹이 투자한 스위스 홀로그램 전문 기업 웨이레이의 홀로그램 증강현실 내비게이션 이미지.ⓒ현대자동차그룹

    위의 사례는 자동차의 스마트·자율주행화, 공유화, 전동화, 항공화 등 미래차 시대를 맞아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질 일 들이다. 모두 전통적인 완성차 업체에게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기존의 사업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이업종으로부터 고유의 영역을 침범당하거나, 시장을 통째로 내주거나, 이업종에 종속되는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IT업체와 차량공유 업체에 투자하고 IT·항공 전문가를 모셔오는 일은 이업종으로부터 영역을 침범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이업종의 영역을 침범해 미래차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차원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전통적인 자동차 분야에서도 세계 선두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해 ‘적진(敵陣)’에서 인재를 모셔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 디자인을 비롯, 고급 브랜드 전략, 고성능 분야의 책임자들은 모두 경쟁사 출신 외국인 임원들로, 현대차그룹이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투자·제휴하고 영입한 이업종 기업들과 이업종 출신 인재들은 앞으로 미래차 분야에서 현대차그룹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가 되는 데 도움을 줄 든든한 우군(友軍)이 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세계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장 왕성히 활동하는 지역에 오픈 이노베이션 네트워크를 갖추고 스타트업 발굴에 나서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견인하고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강력한 대응체계를 갖추기 위한 차원”이라며 “혁신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미래 그룹 성장을 이끌 신규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데일리안 = 박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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