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은행원 1명이 보험·펀드·파생 상담 원스톱…허울좋은 종합금융


입력 2019.10.01 06:00 수정 2019.09.30 18:04        박유진 기자

자격증만 있으면 보험·증권업 오가며 원스톱 상담

정보 많지만 전문성 떨어져…"파생상품 판매 막아야"

자격증만 있으면 보험·증권업 오가며 원스톱 상담
정보 많지만 전문성 떨어져…"파생상품 판매 막아야"

ⓒ

"직원 1명이 종합 상담을 하는데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겠어요?"

파생결합증권(DLS·DLF)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와 관련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파생상품 판매를 아예 막아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금융권에 겸업주의가 허용되고 복합점포 규제 완화가 풀린 이후 은행에서 자산관리 서비스를 벌이는 행태가 많아 불완전판매 우려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소비자로선 각종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는 장점이 있지만, 자격증을 갖추기만 하면 직원 1명이 여러 분야의 상담이 가능해 전문성이 결여될 수 밖에 없다. 실제 은행을 방문해 자산관리 상담을 받아본 결과 이러한 입장은 납득이 가능했다.

직원 1명이 연금·보험·펀드 상담 올스톱

"보통 여성분들이 좋아하는 건 이 펀드죠. 소비재 쪽 주로 명품회사나 혁신 기업에 투자해요.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명품 시장이 죽지 않는 것처럼, 또 해외는 배당도 많이 해서 비교적 안정형에 가까운 상품이죠"

퇴직연금 신탁에 편입할 수 있는 안정추구형 펀드 상품을 추천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서울 을지로 소재 A은행의 직원은 이 같은 답변을 내놨다. 이 펀드는 페이스북과 애플 과 같은 누구나 알법한 글로벌 IT 기업을 비롯해 루비이통과 같은 고부가소비재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펀드 수익률의 경우 연초 16%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날 만큼 수익률이 좋은 편이다. 은행원이 건네 준 펀드 수익률 목록이 온통 빨간색 글자에 마이너스를 표시할 때 이 펀드의 수익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 소액으로 운용하는 상품은 없냐'는 물음에 은행원은 다른 상품을 설명했다. 이번엔 저축성보험 상품이다. 10년 이상 유지 시 비과세 혜택에 복리 이자가 붙는다고 언급했다.

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장기간 납입이 곤란하다고 말하니 최종적으로는 개인형 퇴직연금 상품을 추천했다. 16%에 해당되는 절세 혜택을 수익률로 봐달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위험 상품 포함 3종 설명 20분…불완전판매 우려 없나

이날 방문한 영업점이 혼잡한 탓에 은행원과의 상담은 짧게 끝났다. 보험과 펀드, 연금 상품의 설명을 듣고 OTP 재발급까지 받는 데는 총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각각의 상품에 대한 정보를 살펴본 결과 투자를 결정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연금 편입 자산으로 추천했던 펀드 상품의 경우 은행원의 말처럼 안전 자산은 아니다. 운용사 홈페이지를 통해 살펴본 결과 해당 상품의 투자등급은 2등급인 '높은 위험' 수준이다. 우량주에 투자한다는 말에 무심코 가입했다간 원금 손실이 뒤따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품의 운용 실적은 최근 5개월 간 수익률이 많이 내려간 상태였다. 페이스북 등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현지 정부의 독과점 규제에 따라 주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어 펀드 운용의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저축성보험도 마찬가지다. 은행원은 상품 가입 때 납입하는 보험료에서 일정 부분 사업비가 사라지는 문제나 중도해지 시 터무니없이 낮은 환급률에 대해선 언급조차 않았다. 해지환급률에 대한 표로서만 보여줄 뿐이다.

이날 은행원이 건네 준 명함을 살펴봤다. 명함 속에는 총 8가지에 달하는 금융 자격증이 빼곡히 기재 돼 있었다. 금융사에서 펀드를 판매하려는 자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자격증 3종 외에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생명·손해·제3보험대리점 등의 전문 자격이 대표적이다.

상품을 권유한 은행 직원의 경우 증권사나 보험사 출신이 아니다. 단순히 이 같은 자격증을 갖추고 있어 상담이 가능했던 것인데, 은행의 자산관리 서비스 실태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제2 DLS 사태 막으려면 은행 파생상품 판매 막아야

현재 은행권은 독일과 영국 등 주요 국가 금리 연계 파생상품을 팔았다가 해당 국가의 금리가 약정된 원금 손실 구간까지 내려가면서 투자자들이 돈을 잃는 상황에 처했다. 이를 놓고 금융사와 은행 간 분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원금 손실을 입은 소비자들의 경우 은행에서 파생상품을 판매할 때 투자자별 성향과 관계없이 위험 상품을 가입을 권유했고, 여기에 설명 불충분, 고령투자자 보호를 위한 숙려제도 등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금융당국은 문제가 된 파생상품을 판매한 KEB하나은행, 우리은행의 상품판매 과정을 들여다 본 중간 결과를 1일 발표할 예정이다. 상품 판매 과정 때 투자 적합성 원칙 등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등을 따져봐 제도 개선 등을 논의한다는 취지에서다. 수십 장에 달하는 상품설명서를 은행이 제대로 설명했는지, 또 그에 맞춰 소비자가 자필 서명 등을 충분히 했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의 점검이 사후약방문 격인 처사에 불과하고, 근본적으로는 은행의 파생상품 판매 자체를 막거나 투자 설명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유주선 전국금융노동조합 사무총장은 "지금처럼 상품 판매 과정에서의 원칙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따지는 것은 은행권의 업무 절차만 복잡하게 만들고 불완전판매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당국의 규제는 단순히 수십장의 약관을 보여주면서 그에 맞춰 고객에게 상품의 위험성을 설명했는지 따지는 방식인데 이 같은 방식으론 불완전판매 위험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행 상품설명서 전달 등은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기보다 금융사의 면피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생태정보학에 따르면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를 투자자에게 주입했을 때 오히려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지는 분석 결과가 있어 분쟁을 막으려면 상품 설명을 보다 명확하고 쉬운 방식으로 바꿔나가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유진 기자 (rorisang@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박유진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