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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최희서 "결혼 발표, 여배우 편견 깨고 싶었죠"


입력 2019.09.25 09:11 수정 2019.09.29 10:37        부수정 기자

'아워 바디'서 자영 역 맡아

"나로부터 시작한 작품"

'아워 바디'서 자영 역 맡아
"나로부터 시작한 작품"


배우 최희서는 영화 '아워바디'에서 행정고시에 번번이 떨어지는 청춘 자영 역을 맡았다.ⓒ웅빈이엔에스 배우 최희서는 영화 '아워바디'에서 행정고시에 번번이 떨어지는 청춘 자영 역을 맡았다.ⓒ웅빈이엔에스

"결혼한다니 너무 좋아서 코끝이 찡해지고 경련이 인다."

어느 배우의 행복한 결혼 소감이다. 자신이 직접 결혼 발표를 한 이 당찬 배우는 최희서(32·본명 최문경)다.

2017년 이준익 감독의 '박열'(2017)로 그해 영화제 신인 여우상을 휩쓴 그다. '박열' 속 가네코 후미코처럼 단단단하고 곧은 그의 성품은 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결혼 발표와 함께 자신의 실제 나이도 고백했다. 그러면서 여배우에게 결혼이 갖는 의미와 이를 둘러싼 편견에 대해서도 짚었다. 여배우가 결혼하면 작품 활동에 제약이 있을 것이고, 내리막길을 걷는다는 게 주변의 우려다. 하지만 최희서는 이를 보란 듯이 깰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박열'로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던 그가 이번엔 '아워 바디'(감독 한가람·26일 개봉)로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는 8년간 고시 공부만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방치하던 주인공 '자영'(최희서)이 우연히 달리는 여자 '현주'(안지혜)를 만나 함께 달리기 시작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섬세한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촬영을 끝낸 지는 무려 2년이나 됐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인 이 영화로 최희서는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최희서는 고시생 자영이 탄탄한 몸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몸, 마음, 표정 모든 면에서 보여줬다. 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연기에 엄지가 올라간다.

23일 서울 안국동에서 만난 최희서는 "드디어 개봉한다"고 웃은 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났는데 영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극 중 자영은 명문대를 나온 뒤 행정고시 공부를 하지만 번번이 떨어진다. 자존감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결국 시험을 포기한다.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해도 안 된다는 걸 받아들인 것죠. 자기와 맞지 않다는 것도요. 아마 자영이는 더 일찍 알았을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올해는 될 거야'라는 희망에 계속한 것뿐이죠."

배우 최희서는 영화 '아워바디'에서 행정고시에 번번이 떨어지는 청춘 자영 역을 맡았다.ⓒ웅빈이엔에스 배우 최희서는 영화 '아워바디'에서 행정고시에 번번이 떨어지는 청춘 자영 역을 맡았다.ⓒ웅빈이엔에스

한국 사회는 나이에 민감하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가든 나이를 묻는다. 취업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자영이는 공부하느라 어느덧 서른을 넘겼고, 면접장에선 그런 자영을 한심하듯 쳐다본다. 최희서는 "'나이가 뭐가 중요해'라는 말은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라고 짚었다.

주변에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기에 자영이를 이해하기란 힘들지 않았다.

처음에 자영은 현주를 따라가지 못해 펑펑 울어버리지만 조금씩 몸을 단련한다. 군살도 자연스럽게 빠지자 안 맞던 옷도 들어간다. 겉모습도 달라진다. 평소 무표정에 무채색 옷만 입던 자영은 건강한 변화를 맞이하며 잃었던 활기를 되찾는다.

자영이를 연기하기 위해 최희서는 몸은 만들어야 했다. 복근, 등근육은 필수였다. 촬영 전 한 달 반 동안 운동한 끝에 지방은 6㎏을 빼고, 근육은 3㎏ 정도 늘렸다. 매일 한 시간 반씩 뛰고 닭가슴살 위주로 식이요법을 병행한 결과였다. "공복 상태에서 움직이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염분 섭취도 피했고, 나중에는 수분 조절까지 했죠. 촬영하기 전엔 물을 아예 마시지 않기도 했고요. 이렇게 전문적으로 몸을 만든 건 처음이었답니다."

외적인 변화보다 중요했던 게 눈빛이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생기를 잃은 자영이의 눈빛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신경 썼다.

영화의 주된 소재인 달리기는 특별한 장비나 복장이 없어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다. 돈을 들일 필요도 없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랑, 취업, 일 등 모든 게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운동은 내가 노력한 만큼 정직한 결과를 내놓는다. 영화에선 달리기가 그렇다.

자영이가 달리기를 통해 변했듯, 최희서도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몸매를 만들기보다는 자기 만족을 위해 몸을 관리하려 한다. 퍼스널 트레이닝(PT)을 꾸준히 하며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배우 최희서는 영화 '아워바디'에서 행정고시에 번번이 떨어지는 청춘 자영 역을 맡았다.ⓒ웅빈이엔에스 배우 최희서는 영화 '아워바디'에서 행정고시에 번번이 떨어지는 청춘 자영 역을 맡았다.ⓒ웅빈이엔에스

자영이가 현주를 바라보는 표정은 미묘하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는지 모를 정도다. 배우는 "자영이에게 현주는 우상"이라며 "동경하고 존경한다. 친구인데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고 해석했다.

최희서는 '아워 바디'를 두고 '나로부터 출발한 영화'라고 소개했다. "자영이와 저는 나이도 비슷해요. 고민하는 지점도 닮았고요. 옆집에 있는 친구 같은 느낌으로 다가갔어요."

자영이 같이 좌절해본 적 있을까 궁금했다. 배우는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전 그렇게 좌절해본 적 없어요. 연기는 제가 선택해서 한 거잖아요. 확신이 없으면 큰일 나요. 자존감이 무너질 것 같으면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마음을 다잡아요. 그리고 계속 작품을 찾고 연기해요. 자책하기보다는 더 좋은 기회를 찾아요. 정 힘들면 제가 작품을 제작한다든지 해서 발 벗고 나서죠. 그러면 주변에서 저를 발견해주시더라고요."

'박열' 이후 많은 러브콜을 받지 않았냐고 묻자 "그렇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할 만한 여성 캐릭터가 없었다. 영화에 출연할 법했지만 드라마를 선택했다.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좋은 선택이었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독특한 드라마여서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는 28일 결혼하는 그에게 결혼을 직접 발표한 이유를 물었다. "결혼 앞두고 주변에서 작품이 끊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더라고요. '여배우가 결혼하면' 하고 이런저런 편견이 생기잖아요. 그런 잣대를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했어요. 작아지는 제 모습이 우스웠고 주눅 들기 싫었어요. 그래서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죠. 제 글을 보고 동료 배우들이 공감했다고 얘기해줬어요. 글이 이렇게 화제가 될지도 몰랐답니다(웃음)."

할리우드에도 진출한다. 연말에는 촬영에 들어간다. 결혼을 앞당긴 것도 이 때문이다.

최희서는 올 상반기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지거나 일정이 미뤄진 탓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친 마음은 글로 풀었다. 최희서의 과거·현재·미래, 그리고 가치관을 다룬 글을 에세이집으로 낼 계획이다. "최희서의 삶의 기록이 될 듯하다"며 배우는 두 눈을 반짝였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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