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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집은 댁, 여자 집은 가, 이제는 바꿔야 할 호칭


입력 2019.09.09 08:25 수정 2019.09.09 08:20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남녀차별 문제 아니라 개인에 대한 현대적 존중 차원

<하재근의 이슈분석> 남녀차별 문제 아니라 개인에 대한 현대적 존중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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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추석 연휴 기간에 평등한 명절 문화 캠페인을 실시한다고 한다. 여기엔 남녀 차별적인 호칭 문화의 개선도 포함되어있다. 기존 호칭이 너무나 심각하게 불편감을 초래하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호칭 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일단 여성이 남성의 집을 일컬을 땐 ‘시댁’이라고 높여 부르는 단어를 쓰는데, 남성이 여성의 집을 일컬을 땐 ‘처가’라고 하는 것부터가 차별적이다. ‘처댁’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다.

여성이 남성의 남동생을 부를 땐 ‘도련님’ 또는 ‘서방님’이라고 한다. 도련님은 과거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단어, 혹은 총각을 대접하여 이르는 도령이라는 말의 높임말이다. 도령에 이미 대접하는 의미가 있는데 거기에서 한 계단 더 높여 부르는 것이다. 반면에 남성이 여성의 남동생을 부를 땐 ‘처남’이라고 한다. 여기엔 대접하거나 높여 부르는 의미가 전혀 없다.

여성이 남성의 여동생을 부를 땐 ‘아가씨’라고 한다. 아가씨 역시 종이 상전을 부르는 호칭 중의 하나였다. 원래는 ‘아기씨’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딸을 일컫는 존칭이기도 했다. 반면에 남성이 여성의 여동생을 부를 땐 그냥 ‘처제’라고 한다.

여성이 남성의 누나를 부를 땐 ‘형님’이라고 한다. 반면에 남성이 여성의 언니를 부를 땐 ‘처형’이라고 한다. 여성이 남성 여동생의 남편을 부를 땐 ‘서방님’이라고 하지만, 남성이 여성 여동생의 남편을 부를 땐 그냥 ‘0서방’이라고 한다. ‘님’자가 빠지는 것이다. 존댓말 차이도 있다. 여성은 아가씨와 도련님과 서방님에게 존댓말을 하지만, 남성은 처제와 처남과 0서방에게 편하게 말한다.

오빠의 부인을 가리키는 ‘올케’의 어원이 ‘오라비의 겨집(계집)’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선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부모를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하는 데에 반해 어머니의 부모는 ‘외’자를 덧붙여 호칭한다. 아버지쪽 혈연이 더 우선이라는 사고방식이 읽힌다.

너무나 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표현들인 것이다. 생각이 언어에 반영되지만, 반대로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렇게 차별적인 언어를 쓰면서 자기도 모르게 남성우월적, 부계우선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10여 년 전에도 이런 관습에 대한 반성으로 호칭 바꾸기 운동이 제안됐었다. ‘아가씨, 도련님, 며느리’ 대신에 ‘새동생, 시제, 자부’ 등으로 바꾸자는 식이었다. 낯설고 어색한 새 단어를 만들어 쓰자는 주장이어서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번 캠페인에 여가부가 제안하는 것은 더 실용적이다. 배우자의 부모님은 남성 쪽이건 여성 쪽이건 아버님, 어머님으로 통일하자는 것이다. 조부모 호칭도 양친 어느 쪽이건 할머니, 할아버지로 통일이다. 구분이 필요할 땐 거주 지역을 붙이면 된다. ‘서울 할머니’, ‘대전 할머니’, 이런 식이다.

형제자매들을 호칭할 땐 나이를 기준으로 해서 간단하게 나이가 더 많으면 형님이나 언니 등으로 통일하고, 나이가 어리면 이름을 부르거나 이름에 ‘씨’자를 붙여 부르자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의 배우자를 부를 때도 지금까지의 원리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을 더 많이 부르는 건 개인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하다. 우리는 누군가를 가족 등 집단 속에서의 위치로 지칭하려 하는데, 이러면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만 강조될 뿐 독립된 개인이 사라진다. 남녀차별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현대적 존중 차원에서도 호칭문제는 정리될 필요가 있다.

성균관 등 유교계에서는 가족 호칭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성차별적이라고 반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유교계는 전통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유교적 인습이 한국사회에 어떤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우나 고우나 오랫동안 익숙해진 전통인데 하루아침에 바꾸려면 손발이 오그라들 것이다. 그래도 이번 명절부턴 호칭 합리화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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