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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쳐, 폭주하는 공권력은 스스로 악이 될 수밖에 없다


입력 2019.08.28 09:31 수정 2019.08.28 09:31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권력이 과도한 정의감에 빠져 폭주하면 안 된다 경고

<하재근의 이슈분석> 공권력이 과도한 정의감에 빠져 폭주하면 안 된다 경고

ⓒ데일리안 ⓒ데일리안

OCN에서 또다시 장르물 명작이 탄생했다. 이번엔 경찰 감찰반의 내부비리 수사를 담은 'WATCHER(왓쳐)’다. ‘터널’, ‘라이프 온 마스’의 뒤를 잇는 장르물 최고작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장르물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할 당시 기대치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내부 감찰 설정도 이미 ‘비밀의 숲’, ‘열혈사제’ 등 많은 작품에서 권력기관의 내부 부패를 그렸기 때문에, 새삼 경찰 부패를 그린다고 해도 식상할 것 같았다.

하지만 ‘왓쳐’는 기존 권력기관 부패를 그린 작품들과는 다른 차원의 내부비리 설정으로 차별성을 확보했다. 기존의 부패는 부나 권력을 탐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왓쳐’에선 정의를 추구하던 사조직의 필연적 타락을 그렸다.

그런 설정으로 공권력에 대한 다른 차원의 경고를 한 셈이다. 기존 작품들이 부와 권력 욕망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를 주로 했다면, ‘왓쳐’는 공권력이 과도한 정의감에 빠져 폭주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남겼다.

작은 사건 해결부터 시작했던 ‘왓쳐’는 ‘장사회’라는 경찰 사조직으로 접근해갔다. 장사회는 거북이라는 킬러를 내세워 사람들을 잇따라 죽이면서 조직을 보위했다. 드라마는 처음에 장사회를, 검찰의 ‘소년급제’에 비견할 만한 경찰 엘리트들이 ‘소년장사’라며 만든 미스터리한 사조직이라고 했다. 극중에서 모두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주인공 김영군(서강준)의 아버지인 경찰 김재명이 일선 수사팀과 함께 만든 작은 모임이었다는 점이 나중에 드러난다. 김재명은 기껏 흉악범을 잡아넣어도 이런저런 사유로 쉽게 풀어주고 효율적인 수사도 가로막는 사법당국에 실망했다. 그래서 범죄에 대한 분노로 탈법조작 수사를 서슴지 않는 모임을 만든 것이다. 그러다 걸리면 장사나 하자는 뜻으로 ‘장사회’라 이름 지었다.

그렇게 악에 대한 분노를 담아 소박하게 만든 모임이었지만 일단 시작된 사조직은 그 자체의 동력으로 덩치를 키워나갔고 결국 무고한 사람까지 죽이며 기득권을 지켜나가는 괴물 조직으로 발전했다. 뒤늦게 이것을 막으려던 김재명은 결국 장사회가 보낸 킬러에 의해 부인을 잃고 부인 살해범으로 조작돼 갇힌다. 석방된 후 진실을 밝히려다 장사회의 킬러에게 그 자신까지 살해당하고 만다.

장사회의 킬러는 경찰이었다. 범죄자에 대한 분노가 가득 한 경찰을 장사회가 포섭해 ‘거북이’라는 이름의 킬러로 활용했다. 거북이는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자르며 살해하는 엽기적인 방식으로 시청자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 방식도 김재명에게서 시작됐다.

김재명은 범죄자에 대한 분노로 범죄자의 손가락을 부러뜨려 제압하는 기술을 동료들에게 가르쳤다. 김재명 팀원들에게 손가락을 다친 범죄자가 수사관 딸의 손가락을 잘라 복수했다. 그러자 범죄자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수사관을 장사회가 포섭해 거북이로 만들었다. 그 수사관은 사람 같지 않는 범죄자들에게 ‘인간의 의미’를 물으며 엄지손가락을 자르고 살해했다. 그 방식이 신진 거북이들에게 전수돼 결국 창시자인 김재명이 젊은 거북이에 의해 엄지손가락이 잘리고 살해당한다.

처음엔 악에 대한 분노로, 정의감으로 탈법 사조직을 만들고 탈법적 폭력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돌고돌아 결국 창립자에게 닥친 것이다. 일탈한 조직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김재명과 함께 사조직을 시작한 또다른 창립자도 거북이 손에 비참하게 죽는다. 감찰반장 도치광(한석규)은 범죄자에 대한 확신으로 증거를 조작해 구속시키지만 그 때문에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게 된다.

분노, 정의, 어떤 이유로든 공권력이 정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주제의식이다. 폭주하는 공권력은 스스로 악이 될 수밖에 없다. 일단 정도를 벗어나는 사조직이 작동하면, 가볍게 만든 장사회가 나중에 무서운 엘리트 조직이 되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하나로 뭉치자 그래서 하나회, 알고 지내자 해서 알자회’ 모두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국 가볍지 않게 귀결됐다고 극중에서 도치광은 말했다. 그러니 공권력은 언제나 투명해야 하고 감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존의 부패비리 고발과는 다른 문제의식이어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누가 거북이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언제든 거북이에게 습격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극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장사회로 한 발 한 발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느슨해지지 않았고, 예측대로의 뻔한 진행도 없었다. 배우들도 인생연기 수준의 연기로 더욱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이러니 최고의 장르물 반열에 오른 것이다. 좋은 뜻이 타락해가는 과정을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감시자, ‘왓쳐’의 후속 시즌을 기다리는 이유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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