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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호갱’ 되기 싫으면 발품 팔라는 이통사


입력 2019.07.31 07:00 수정 2019.07.31 06:19        김은경 기자

유명무실 단통법에 스마트폰 ‘빵집’ 찾아 헤매는 사람들

방통위 솜방망이 처벌에 반복되는 ‘불법 보조금’ 논란

유명무실 단통법에 스마트폰 ‘빵집’ 찾아 헤매는 사람들
방통위 솜방망이 처벌에 반복되는 ‘불법 보조금’ 논란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을 ‘0원’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내걸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을 ‘0원’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내걸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김은경 기자

‘빵집’, ‘마이너스 폰’, ‘좌표’ 등은 이동통신업계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더는 생소하지만은 않은 용어다. 빵집은 불법 보조금으로 스마트폰을 실구매가 0원에 살 수 있는 판매점, 마이너스 폰은 여기에 차비까지 얹어주는 판매점을 일컫는다. 좌표는 이러한 판매점 위치를 온라인상에서 은밀히 공유하는 은어다.

5세대 이동통신(5G) 서비스 전에도 신규 단말이 출시될 때마다 불법 보조금 문제는 불거져왔다. 같은 기종도 어디서 어떻게 흥정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소비자들은 소위 ‘호갱(호구+고객의 합성어)’이 되지 않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러다 2014년 10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됐다. 단말기 지원금을 투명하게 해서 통신 시장 유통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도입 취지는 좋았다. 도입 후 이동통신사들의 공시지원금 정책으로 누구나 더 많은 보조금을 받고 휴대폰을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5G 스마트폰이 출시되자마자 불법 보조금은 또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5G 고객은 가입자당 평균 수익(ARPU)이 롱텀에볼루션(LTE)보다 높다. 한 마디로 돈이 되는 시장이다. 당장 출혈경쟁으로 인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통사들이 가입자 확보에 혈안이 돼 있는 이유다.

맹수들 사이에 먹음직한 토끼 떼가 던져진 형국인데 이들을 보호하는 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불법 보조금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도 “이통 3사 임원을 소집해 경고한 이후 불법 보조금이 상당히 근절됐다”며 “시장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고 온라인 시장도 안정화됐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후 상황을 살펴봐도 방통위가 제대로 통신 시장을 관리·감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방통위는 지난 7일 단통법을 위반한 SK텔레콤에 단말기 한 대 값에 불과한 과태료 150만원을 부과했다.

SK텔레콤은 경쟁사가 같은 단말에 더 높은 공시지원금을 책정한 것을 인지하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금을 상향했다는 입장이지만, 법 위반은 위반이다. 단통법에 따르면 통신사업자는 공시 내용과 관련한 정보를 최소 7일 이상 변경 없이 유지해야 하지만 SK텔레콤은 공시 당일 금액을 변경했다.

방통위가 솜방망이 처벌로 이통사들에 ‘법을 어겨도 150만원의 벌금만 내면 된다’고 확인시켜주고 있는 사이 정작 불법 보조금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불법행위의 주체인 이통사들 중 하나였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4일 SK텔레콤과 KT를 불법보조금 살포 혐의로 방통위에 신고하면서 실태점검과 사실조사를 요청했다. 회사측은 “이번 일로 조사를 받게 되면 (LG유플러스도) 불법 행위에 대해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면서 “다만 단통법에 위반되는 불법 보조금 경쟁을 지양하자는 입장이고 업계에서 자정작용을 하자는 의미에서 신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경쟁사들은 5G 초기 경쟁에서 지원금을 남발해 ‘총알’을 다 쓴 LG유플러스가 이제 와서 다른 통신사들이 지원금을 쓸 수 없도록 신고해 발목을 잡았다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지만, 어찌 됐건 이번 사태는 방통위의 적발이 아닌 ‘자수’를 통해 공식화됐다.

김은경 산업부 기자. 김은경 산업부 기자.
여기서부터는 방통위의 역할이다. 그동안 관리·감독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방통위는 이번 사태를 불법 보조금을 근절하고 단통법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전파는 공공재로서 모두가 누려야 할 권한이 있다. 가격 정보에 밝지 않은 소비자들도 공시된 지원금을 받고 공평하게 단말기를 구매할 권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호갱’이 된 소비자들이 억울함에 분통을 터트리지 않도록, 더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빵집을 찾는 일이 없도록 방통위의 엄정한 집행과 감시,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은경 기자 (e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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