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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거북선 지붕은 보지 않고 '12척 승리'만 외치는 정부


입력 2019.07.26 07:00 수정 2019.07.26 06:07        이소희 기자

사라진 ‘경제첨병’과 선봉장 역할…일본 수출규제 대응책은 ‘아직도 마련 중’

사라진 ‘경제첨병’과 선봉장들의 역할…일본 수출규제에 대응책은 ‘아직도 마련 중’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해전전의 전투.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일본 수군을 대파한 명량해전전의 전투. ⓒ영화 ‘명량’의 한 장면

‘첨병’이라는 말이 있다. 원뜻은 군사 행군의 맨 앞에서 경계·수색을 하는 임무를 맡은 병사나 부대를 지칭하는 표현이지만 한 때 경제적으로 수출 호황기 때는 ‘수출산업의 첨병’ ‘국제화의 첨병’ 등등의 용어가 자주 등장했고 ‘선봉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뿌듯함마저 안겨줬다.

어느 부분에서든 앞장서야 하는 ‘선봉장’은 수많은 역경과 인정, 실전과 결과를 통해 다져지면서 성장을 거듭해낸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 왜구를 물리쳤을 때도 선봉에 나가 승리의 첨병 역할을 했고 삼성의 반도체도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으로 그러했다.

7월 들어 과거사 논쟁에서 비롯된 무역보복으로 느껴지는 일본의 경제제재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대책이나 대응보다는 연일 쏟아지는 선봉장들의 말의 해법이 국민감정을 파고들지만 정작 경제제재에 미치는 영향은 역효과라는 비판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순신 리더십을 주창하는 유명 강사의 최근 강의에서 “이순신 장군이 이끈 판옥선이 왜 크고 높은 줄 아십니까, 거북선이 왜 지붕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1000만 고객을 돌파한 명량해전의 전투신을 떠올려봤지만 즉답 대신 이순신=거북선이라는 등식만 맴돌았다.

그가 말한 답은 “칼을 잘 쓰는 일본에 대한 대응전략이면서 활과 창을 잘 쏘는 우리의 공격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판옥선의 사정거리와 거북선 지붕의 방패역할”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전법이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적을 알고 우리의 주효한 전략을 펴기 위한 포석’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활과 창 대신 칼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다. 난중일기에 수록된 한 구절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는 각인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물론 임란(壬亂) 전장에서의 칼은 주된 무기이기도 했다.

3년 간 칼을 갈고 어느 정도의 자국희생은 감수할 태세를 갖추면서 협의시도라는 절차를 거친 후 가장 한국에 치명적일 산업부터 수출규제라는 통보 수순에 이른 일본의 치밀한 무역보복에 정작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충혼이 깃든 거북선이 아닌 12척 승전의 배만 바라보고 있다.

경제 선봉장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우리 산업의 대일 의존도를 완화하고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일본이 추가로 ‘화이트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배제할 방침을 밝힌 것과 관련해서는 “어떤 품목이 얼마만큼 우리 경제에 영향이 있고 기업이 관련됐는지에 대해 밀접한 품목들을 뽑아내 대응해나가고 있다”면서도 홍 부총리는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나 일일이 내용을 말하면 일본에 보고하는 형태라 제약이 있다”고 언급했다.

대비는 하겠지만 세세히 밝힐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일면 이해는 되면서도 사안의 중요성이나 시급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단편적인 발언이다.

일본의 속내가 경제보복이든 국제규범상 온당치 못한 행위든 이미 수출규제는 단행됐다. 이어 화이트리스트 제외까지 밝힌 상황에서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피해품목도 파급범위도 밝히지 않으면서 ‘대응책 마련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되고 있다.

적어도 국민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현 상황이 어떻고 어떻게 대응하고 얼마나 감내하고 극복해나갈 지를 정부가 보고하고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감수하고 응원하고 싸워나갈지를 결정하고 위기를 넘기는 지혜를 함께 모을 때 일본도 한국의 결기 있는 대동단결에 ‘쫄지’ 않겠는가.

피해는 반도체 등 일부 산업품목과 기업만 보는 것이 아니다. 당장 대 일본 의존도가 높은 농산물과 수산물도 포함된다. 이미 수출이 줄어든 품목도 있고, 한일 어업협상은 4년 째 표류 중으로 피해어민들을 위한 대체어장을 찾고 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미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카페리선의 승객은 눈에 띄게 줄었다. 피해를 입고 있는 사업자를 지원하고 싶어도 국제규범 위반에 해당된다. 이 운항노선의 절반은 한국, 나머지 절반은 일본에서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꼬인 외교는 외교로 풀고 경제적인 관점은 더 냉정하고 실리적으로 판단할 때’라는 합리적인 비판이 ‘친일’이 되고 과도한 반일 불법시위나 일본산 불매운동에 토를 달면 ‘매국’이 되는 시류가 팽배해졌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국산 파프리카와 수출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최상의 우리 김은 일본의 밥상을 지배하는 품목이다. 때문에 이들 품목에 수출차질을 빚을 경우 ‘일본이 더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공직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회자되기도 한다.

아직은 일부지만 일본 내에 흐르고 있는 ‘혐한’과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은 생각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발상이다.

소통과 협치를 주장해온 정부가 대일관계에서는 꼬여진 실타래를 풀기보다는 적대적 감정만 내세우면서 국민들에게는 희망과 극복, 자신감으로 무장하라는 은근한 반일로 내몰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 정책 일선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조차 “피해는 우려되지만 아직까지는 별 변화는 없다, 정책적으로는 지원책말고는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지원부가 잘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들이 표출되고 있다.

일본여행을 취소하는 고객들에게 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쌀을 경품으로 나눠주는 지방농협도 등장했다.

과거사 문제에서 출발한 한일 갈등은 뿌리가 깊다. 특히 한 때 일본에게 나라를 찬탈 당했던 한국의 반일 감정은 오랫동안 자리한 만큼 쉬 사라지지도 않는다.

때문에 비전시 상황에서 한국 국민이라면 친일도 매국도 할 생각도 이유도 없다. 상황에 대한 인식과 해법이 다를 뿐이다.

정부의 이 같은 일방통행에도 불구하고 각계 분야의 선봉장들이 나서 경색된 한일관계를 주도적으로 풀고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소희 기자 (aswit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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