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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주의’로 뭉치면 일본 물리칠 수 있나?


입력 2019.07.22 09:00 수정 2019.07.22 10:32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정부와 다른 말 하면 ‘친일파’

이순신에 이어 서희까지 등장…일, 외교적 해결의 문도 열어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정부와 다른 말 하면 ‘친일파’
이순신에 이어 서희까지 등장…일, 외교적 해결의 문도 열어야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4년에만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입니다. 일본에 비해 172배라고 합니다. 인구수를 감안한 1인당 위증죄는 일본의 430배나 됩니다.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곧 무고 건수는 500배라고 합니다. 1인당으로 치면 일본의 1,250배입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의 프롤로그 중에서도 맨 첫 부분이다. 이 서문은 “거짓말의 나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비슷한 기사 혹은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 듯도 하지만 확실하진 않다. 기억하기 싫어서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이없고 난감하다. 비교 대상이 하필이면 일본이다. 그 사람들에 비해 우리가 이처럼 참담할 정도로 정직성의 결여를 드러내다니!

(본문에 들어가면 ‘강제징용’이라고 표현되어 온 일제의 행위, 당시의 상황과 진상, 그리고 이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에 대한 기술도 나온다. 위의 글을 인용한 까닭이다.)

정부와 다른 말 하면 ‘친일파’

그래도 우리의 수석 애국자(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는 당당히 페이스북에 쓸 것 같다. “이런 통계 따위를 기억하고, 그걸 첫머리에 소개하는 책을 내는 것이야 말로 이적행위다.” 억측만은 아니다. 그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이냐’ 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좌‧우 구분 없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모두 애국전선에 나서라는 격문이었을 터이다.(중국의 제2차 국공합작이라도 떠올렸던 것일까?)

조 수석은 이후 계속 페이스북에 조국에 대한 애국심,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자극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20일엔 ‘대한민국 대통령의 법률보좌가 업무 중 하나인 민정수석으로서(그 이전에 법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법학자로서)’ ‘배상과 보상의 차이를 구분 못하는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무지’를 질타했다. “대법원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일기본조약 및 한일청구권협정’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국교정상화협상을 벌여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정권 실세(實勢)의 판단이고 호통이다.)

법학자라기보다는 정치선동가로서의 자질이 더 뛰어난 것 같은데, 어쨌든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입지를 바꾸는 역량은 일단 수준급이라 할만하다. 어떻게 그의 눈에는 애국자와 친일파만 보인다는 것인가. 문제해결의 방법론을 문재인-조국 팀과 달리하면 ‘친일파’가 되는가?

그는 21일에 또 독전(督戰)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문재인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비장감이 철철 흐른다.

이순신에 이어 서희까지 등장

“전례를 보건대 몇 년 걸릴 것이며 어려운 일도 있을 것이다. 일본의 국력은 분명 한국 국력보다 위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

‘법학자’다운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국민은 ‘쫄지’ 않는다. 다만 정부의 외교력 빈곤이 한심스럽다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거기에 대해 답해줘야 할 청와대 실세가 느닷없이 왜 진군의 나팔수가 되었는지 그게 의아스럽다고 한다.

조 수석에 호응해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또 ‘친일론’을 제기했다. 그는 21일 한일간의 무역마찰을 ‘경제 한일전(韓日戰)’이라고 규정하면서 일본이 아니라 자유한국당을 ‘신친일’이라며 ‘준엄히 경고’했다. ‘백태클’을 한다는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 이끌어온 것은 정부 아닌가. 야당은 그걸 따질 권리와 함께 책임을 진 정당이다. 그런데 박수칠 것이 아니면 입을 다물라고 하는가.

‘친일’은 국민정서의 ‘블랙홀’이다. 흔히들 ‘기승전○’라는 표현으로 인식과 판단과 표현의 획일성을 풍자하던데 정권 측 논리가 갈 데 없는 ‘기‧승‧전‧친일’이다. 처지나 말이 궁해지면 두 번 생각하는 법도 없이 ‘친일’을 내민다. “이래도 덤빌 거냐”는 투로!

그 정당, 당내에서 행세께나 하는 사람들 다수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친일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진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어떤 이는 사과를 하면서 당의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또 다른 이는 사과는 했으나 당과 국회의 요직을 섭렵하며 승승장구하기도 한다. 당적을 바꿨지만, 사과 자체를 외면하면서 여전히 친일에 호통을 치는 정치인도 보인다.

그러면서 생뚱맞게 ‘신친일’은 뭔가. 과거의 친일파는 ‘친일인명사전’에 가둬뒀으니 이제 다시 새로운 범주를 만들겠다는 건가? ‘신친일’ ‘토착왜구’ 식으로? 자기 국민들에 대해 이처럼 악착같이 덤벼들어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인격 자체를 헐뜯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들이 증오해 마지않는 일본인의 경우는 어떨까?

일, 외교적 해결의 문도 열어야

그렇게 애국하는 사람들이 ‘김일성부역 인명사전’ 만들기는 왜 안하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유난히 북한에 대해 친근감을 과시하는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신친북’이나 ‘토착친북’으로? 아예 대놓고 김정은을 찬양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들은 ‘신종북’ ‘토착종북’인가? 애국의 화신이 된 조 수석과 이 원내대표가 왜 이들에게는 입을 다물고 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정치세력을 이념적 성향으로 갈라놓고, 온갖 선동용어를 구사하면서 상대편을 매도해댄 끝에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실세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다. 그렇게 집권을 했으면 그때부터라도 진지하게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증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여전히 ‘국민 편 가르기’의 이점에 취해 있다니!

정작 일본과 사이에서는 돌파구를 못 찾으면서 국민을 상대로 “‘친일’ ‘신친일’ ‘토착왜구’로 찍히지 않으려면 말조심하라”는 식으로 을러대는 권력자들이 참으로 한심하다. “정부가 문제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왜 뒤에서 헐뜯고만 있느냐”는 불만스러움이 가슴에서 치밀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그걸 가지고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시민이나 언론과 드잡이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과거 자신들이 야당일적에 정부의 선택이나 결정에 사사건건 어떤 태도로 대응했었는지부터 돌아보면서….

일본의 처사도 용인하기 어려운 횡포다. 이런 식으로 정치외교적인 문제를 ‘경제력의 과시’ 방식으로 풀려고 해서는 ‘국제사회의 평화적 공존’ 질서가 유지되기 어렵다. 외교적 해결의 계기를 찾지 못한 탓이었다고 하더라도, 힘자랑과 함께 ‘외교적 해결’이라는 옆문도 열어둬야 옳다. 항복을 요구하는 것은 외교적 방식이 아니다.

이를 전제로 다시 말하자. 상대는 일본 정부다. 안쪽을 향해 ‘친일’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자해행위일 뿐이다. ‘기회는 이때다’해서 이런 작태로 차기 집권을 꿈꾸는 인사는 제발이지 없기를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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