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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일제의 '비국민'이 겹쳐보이는 조국의 '친일파' 낙인


입력 2019.07.22 04:00 수정 2019.07.22 05:52        정도원 기자

曺 "일부 언론 주장, '친일파'라 불러야 한다"

SBS논설위원 방송하차 "靑, 친일파 공세 집요"

일제도 비판적 주필 '비국민' 낙인…퇴사시켜

曺 "일부 언론 주장, '친일파'라 불러야 한다"
SBS논설위원 방송하차 "靑, 친일파 공세 집요"
일제도 비판적 주필 '비국민' 낙인…퇴사시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기류 유유(桐生悠悠) 시나노 마이니치신문 주필은 1933년 일제가 미국과의 전쟁을 상정하고 방공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목조 건물이 많은 도쿄가 초토화돼 참상이 간토대지진에 버금갈 것"이라며 "미군기가 하늘에 나타나면 이미 우리의 패배 그 자체"라고, 냉정한 현실 진단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촉구했다.

기류 주필의 지적은 10여 년 뒤에 현실로 드러났지만, 당시의 파장은 엄청났다. 육군대신을 비롯한 정권의 실력자들이 노기를 감추지 않았고, 친정부 단체는 시나노 마이니치신문을 향해 '안 봅니다' 불매운동을 조직했다. '비국민(非国民)'으로 낙인 찍힌 기류 주필은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의병으로는 안 된다"며 정부의 '역할'을 촉구한 원일희 SBS 논설위원이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 원 위원은 하차 방송에서 "일본의 경제보복은 잘못됐고 철회돼야 하나, 대응은 외교 협상이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라며, 그에 대해 "익명의 청와대 고위관계자까지 동원된 '친일파' 공세가 집요했다"고 토로했다.

'친일파' 공세는 현 정권의 '실력자'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메시지에서 나왔다. 조 수석은 지난 20일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 문재인정부를 흔들기 위해 황당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공언했다.

조 수석의 메시지는 날로 독기를 더해가고 있다. 지난 18일 "경제전쟁이 발발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라고 포문을 열었던 조 수석은 21일에도 "문재인정부를 매도하는데 앞장서는 일부 한국 정치인과 언론의 행태가 개탄스럽다.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고 공세의 고삐를 죄고 있다.

포문의 방향이 일본이 아니라, 우리 내부를 향하고 있다. 누군가를 "이적"으로 몰아붙이고, "발목을 잡는다"며 공박한다. 조 수석의 '친일파' 낙인 찍기 속에서 오히려 '비국민'이라며 기류 주필을 몰아냈던 일제 군국주의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조 수석은 지난 16일에는 대표적인 비판 언론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제호를 실명 거론하며 "민정수석 이전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한다"고 공격했다. 이처럼 내부를 향한 화력 투사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청와대이지만, 정작 일본과의 무역분쟁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무능·무책임·무대책'이란 비판에 노출돼 있다.

정작 일본 대책은 '죽창' 찾으며 "몇 년 걸려"
'죽창' 비판도 "文정부 흔들기 위한 기사"인가
내부 비판에만 시퍼렇게 날세우는 진의는 뭔가


조 수석은 지난 13일 "드라마를 보는데, 한참 잊고 있던 이 노래(죽창가)가 나왔다"며 '죽창'을 찾았다. 21일에는 "(문재인정부가) '서희'와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며 "(해결에는) 몇 년 걸릴 것"이라고 시사했다.

공교롭게도 일제 때도 '죽창을 들자'는 군국주의자들과 비판 언론이 맞붙었다. 1944년 마이니치신문에서 해군성을 출입하던 신묘 다케오(新名丈夫) 기자는 "승리하기 위해 우선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다른 조건도 갖춰져야지 필승의 신념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며 "죽창으로는 적의 항공기를 떨어뜨릴 수 없다"는 해설기사를 썼다.

이 기사로 요시오카 분로쿠(吉岡文六) 마이니치신문 편집국장이 쫓겨났다. 비판의 대상이 됐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통수권을 흔들기 위한 기사"라고 광분하며, 마이니치신문을 폐간하라고 지시했다.

70여 년전 일본에서의 상황이 요즘과 뭔가 비슷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또한 지나친 비약일까.

일본식 이름이란 이유로 '고로케' 장사가 안돼서 거리로 나앉게 된 식자재 판매상과, 퇴직금을 모아 이자카야 프랜차이즈 식당을 창업했다가 꼼짝없이 날리게 된 소상공인, 매장에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게 된 아르바이트생, 이들 앞에서 권력 핵심부·친정부 인사들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일까.

대체 왜 집권 세력은 무역분쟁의 상대방인 일본을 향한 대응에 있어선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느긋하면서도, 우리 내부의 비판자들을 향해서는 시퍼렇게 날을 세우는 것일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그 진의가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 활용에 있다는 의구심을 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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