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파국위기] 文정부, 목표 설정 안된 '반일'로 대결은 '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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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시간 : 2019년 07월 23일 22:56:59
    [한일 파국위기] 文정부, 목표 설정 안된 '반일'로 대결은 '필망'
    박정희·전두환 '차관', 노태우·김영삼 '사과'
    김대중·노무현 '미래관계 재설정' 집중해 관철
    "승리조건 설정되지 않아 승리 자체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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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07-12 12:00
    정도원 기자(united97@dailian.co.kr)
    한미공조·명분·전략적 목표 세 가지 '아리송'
    "승리조건 설정되지 않아 승리 자체가 불가능"


    ▲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앞두고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나 서로의 이니셜을 새긴 양국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교환하고 있다. 김 대통령 임기 중에 우리나라와 일본은 월드컵을 공동개최했으며, 일본의 대중문화가 순차적으로 수입 개방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사진DB

    문재인정부가 전략적 목표 설정 없이 감성적 반일주의로 일본과의 정면대결에 나설 경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산업계와 국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간 역대 정부는 한미 공조 체제 내에서 일본을 상대로 분명한 명분을 갖고 전략적 목표를 설정해 관철해왔는데, 현 정부는 한미 공조도, 명분도, 전략적 목표도 모두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 등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강화를 둘러싼 현재의 한일 외교관계 파국 위기에 역대 정부의 사례를 들면서 염려를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1983년 이른바 안보 협정으로 일본으로 40억 달러 차관을 공여받은 사례를 거론했다.

    이 관계자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으로 식민 배상 문제는 종료됐다고 판단한 전두환정부는 방향을 바꿔, 극동 안보 체제에서 일본이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논리로 안보 분담금 100억 달러를 요구했다"며 "일본은 '갑자기 100억 달러를 내라니, 한국이 미쳤다'며 펄펄 뛰었지만, 결국 40억 달러를 공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40억 달러가 공여된 것은 한미 공조, 명분, 전략적 목표 세 가지 틀이 다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1979년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데탕트 체제'가 깨지고 신(新)냉전이 시작되자,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극동에서의 안보 환경에 다시 무게를 실었다.

    '안보'라는 카드를 내세운 것은 미국의 공감 하에서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절묘한 수였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 하에서의 서독과는 달리, 일본이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를 내면서도 극동에서의 안보 분담에 소극적인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이 때 우리 정부가 일본의 '안보 무임승차'를 거론하며 안보 분담금을 요구하자, 일본도 액수 조정의 문제일 뿐 결국 차관 공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2차 오일 쇼크로 1980년 해방 이후 최초의 마이너스 성장(경제성장률 -1.7%)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경제 재도약을 위한 일본으로부터의 차관 확보에 우리의 전략적 목표를 집중했던 것도 유효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외통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 등은 "지금은 한미 공조, 명분, 전략적 목표라는 요소가 전부 결여된 상태"라며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출구 전략'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게 될까 우려된다"고 혀를 찼다.

    박정희·전두환 '차관', 노태우·김영삼 '사과'
    김대중·노무현 '미래관계 재설정' 집중해 관철


    ▲ 김영삼 대통령과 무라야마 도이치(村山富市) 일본 내각총리대신이 1994년 7월 청와대에서 한일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김 대통령은 취임초부터 배상은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을 상대로 국내적으로 해결할테니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 표명을 하라며 사과 문제에 집중했고, 무라야마 총리를 상대로 1995년 전후 최초로 일본 내각의 공식 입장으로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연합뉴스 사진DB

    미국과 일본 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개별 청구권을 상실한 미국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지만,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이미 모두 패소했다.

    이탈리아 대법원이 이탈리아의 독일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자, 독일의 제소로 이 사건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됐는데 국가간 조약으로 이미 배상 문제가 종결됐다는 이유로 이탈리아가 패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 편을 들기 어렵고, 국제적인 여론에 호소할 명분도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번 한일 외교 분쟁에서 우리가 관철하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관측도 있었다.

    박정희정부 때의 한일청구권협정, 전두환정부 때의 안보분담금 때는 식민배상이나 안보 무임승차를 지렛대 삼아 일단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게 전략적 목표였고, 이를 관철했다. 각각 전후의 절대빈곤, 오일쇼크 충격으로부터의 탈출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다.

    나라 형편이 나아진 노태우정부 때부터는 '돈'보다 일본의 '사과' 표명을 받는 것에 전략적 목표가 설정됐다.

    노태우정부 때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으로부터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치 못한다는 표현을 이끌어냈다. 아예 "배상은 우리 정부가 할테니, 일본은 사과나 하라"고 선언하고 들어갔던 김영삼정부 때는 지금까지도 인용되는 '무라야마(村山) 담화'를 이끌어냈다. 일본 내각의 공식 입장으로 식민 지배를 사과한 유일한 사례다.

    김대중정부 때부터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도약하는데 초점을 뒀다. 김대중정부 때는 월드컵의 한일 공동개최가 있었으며,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문호개방이 시작됐다. 노무현정부 때는 우리 대통령과 일본 총리 사이의 '셔틀외교'가 시작됐다.

    외통위 의원실 관계자는 "박정희·전두환정부는 '돈', 노태우·김영삼정부는 '사과', 김대중·노무현정부는 '미래관계 재설정'이라는 분명한 전략적 목표가 있었고, 그것을 차근차근 관철해냈다"며 "이명박정부부터는 분명한 전략적 목표 없이 반일감정 이용을 일삼아 그 뱡항감각 상실이 지금 문재인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정부 말기 지지율 하락을 극복하기 위한 '이벤트'성 독도 방문, 박근혜정부 때 친중반일(親中反日) 정책에 이어 현 정부의 감성적 반일감정 고취까지,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겠다는 목표가 없다"며 "명확한 전략적 목표 설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반일(反日)로는 부딪쳐봤자 승리조건이 없으니 승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데일리안 = 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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