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非戰) 위해서라면 무장해제도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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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非戰) 위해서라면 무장해제도 가능한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노예의 평화에도 가치 부여하나
    군사적 무방비 상태의 동해 … 져야 할 사람 따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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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06-24 09:00
    이진곤 언론인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노예의 평화에도 가치 부여하나
    군사적 무방비 상태의 동해 … 져야 할 사람 따로 있는데


    ▲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최근 북한 주민들이 목선을 이용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삼척항에 정박한 것과 관련해 가진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전쟁의 시기에는 전쟁의 논리로 평화를 심판하고 대결의 시대에는 대결의 논리로 대화를 심판하려 합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부여합니다. 우리가 터 잡고 사는 한반도는 전쟁을 통해 분단되었습니다. 이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며 통일을 지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숙명입니다.

    전쟁은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무덤이며, 평화는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요람입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정부는 평화를 통해 국민의 삶을 지키고, 평화를 통해 경제를 성장 시키는 정부입니다.”

    노예의 평화에도 가치 부여하나

    2016년 10월 15일에 문재인 당시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가 SNS에 올렸다는 글이다. 어떤 SNS에 올렸는지는 모른다. 인터넷에서 발견해 옮겼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문제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던 시기였다. 문 당시 의원의 마음으로는 아마 청와대에 한쪽 다리를 들여놓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경영의 지표 같은 것을 제시했을 법하다.

    아주 괜찮은 말인 듯하나 뜯어보면 쓸 만한 대목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표현의 기교가 오히려 의미 전달을 방해하는 경우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이니까 평화의 논리로 전쟁을 심판하겠다는 것인가? 또 대화의 시대이니까 대화의 논리로 대결을 심판하겠다는 뜻인가? 이런 인식의 논리적 귀결은 뻔하다. “국가안보를 핑계로 무장을 강화해서는 안 되고 협상 성공을 위해 논쟁을 벌여서도 안 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전쟁은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무덤이며, 평화는 국민의 생존과 인권의 요람’이라고 했는데 이야말로 문 대통령의 환상이 시작되는 ‘유아적 상상의 요람’이다. 전쟁이 비극이고 죄악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평화가 행복의 원천이고 그 자체로 선(善)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문 대통령이 기교를 부려가며 강조할 필요조차 없는 인간의 본능적 판단이고 욕구라 하겠다.

    문제는 전쟁과 평화가 동일 스펙트럼 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끝나는 지점부터 평화가 시작되는가? 같은 스펙트럼이라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쟁과 평화는 차원을 달리하는 상황이다. 전쟁이 없는 상태가 곧 평화는 아니다. 전쟁의 끝은, 간혹 무승부도 있지만 대개는 승리이거나 항복이다. 항복은 굴종의 각오를 전제로 한다. 전쟁이 지나간 곳에서 노예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건 평화일 수가 없다. 평화는 몸과 마음이, 이웃과 사회가 두루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 노예에게는 그런 평화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고 할 때에만 문 대통령의 ‘전쟁과 평화’ 명제는 성립한다. 그리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무장해제다. 설령 방어용이라고 해도 무장은 전쟁의 한 양상 또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군사적 무방비 상태의 동해 바다

    문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6·25남침으로 수많은 동족을 살상한 북한 김씨 3대의 왕조체제에 대해 한없는 친애의 정을 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35년간 우리에 대해 제국주의적 식민통치를 자행한 일본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분출시킨다. 김일성이 일으킨 건 악랄한 침략 전쟁이었다. 일제 통치는 ‘가장 나쁘긴 했지만’ 어쨌든 전쟁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왜 문 대통령은 자신의 원칙, 논리를 거슬러가며 평화보다 전쟁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온 것일까.

    ‘북한 어선의 삼척항 진입’과 관련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다시 ‘문재인의 평화’를 생각하게 된다. 청와대와 군의 발표 및 설명은 요령부득이다. 무슨 말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어물어물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어조로 말하는데 이해가 잘 안되니 문제다. “개떡 같이 말하더라도 찰떡 같이 알아들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할 것인가.

    윤도한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이 21일 ‘은폐·축소’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애초 북한에서 어떻게든 남쪽으로 오면 합동심문을 해서 끝날 때까지 (몇 달간 발표를) 안 하는 것인데 (이번 사건은) 중간에 일종의 사고가 생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보도가 나가선 안 됐다. 만일 그들이 모두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왔다면 그것이 보도돼 남북관계가 굉장히 경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찌어찌 이해할 수는 있다고 하자. 그러니까 북한을 조심하느라 해경의 당초 보고와 군 당국의 브리핑 사이에 좀 혼선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과거 같으면 알려주지 않았을 일인데 이미 새 나가버렸으니 이렇게 설명이라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알고 억측을 하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이게 현 정부의 북한을 대하는 자세이고 방식이다 .

    북한 어선 승선자 4명 가운데 두 명은 여기 남고 두 명은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것도 의아하다. 사흘 만에 조사를 끝내고 18일 오전에 판문점을 통해 보냈다는 것인데, 그야말로 속전속결이다. 이런 예가 과거에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작은 목선(네 사람이 고기잡이를 할 만한 크기의 배도 아니었다는데)을 타고 삼척항에 스스로 들어온 연유를 파악하기보다는 돌려보내기에 더 급급했다는 인상을 준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 따로 있는데

    정경두 국방장관이 19일 ‘2019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이 사건과 관련 “책임져야 할 인원이 있다면 엄중하게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만 이는 그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책임을 논하기로 하면 문 대통령과 국방장관 청와대 안보실장을 먼저 대상으로 해서 따져야 하는 것 아닌가?

    ‘9.19남북군사합의서’는 ‘육상과 해상에서 군사분계선 이쪽저쪽 일정범위내의 무장해제’ 효과를 염두에 둔 문건이었다는 인상이 짙다. 동해의 경우 ‘남측 속초 이북부터 북측 통천 이남까지 수역’에서 포사격과 해상기동훈련을 중지하기로 했다. 그렇게 명시해놓고 이 바다에서 왜 경계를 소홀히 했느냐고 추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다시 문 대통령의 ‘평화관(觀)’에 대해서인데, 가장 좋은 전쟁이라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못하다고 한다면 무장해제는 당연한 귀결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조국방위전쟁도 안 된다. 유사시엔 북한에 굴종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 문 대통령의 선언이나 행보로 헤아려보자면, 연역적으로든 귀납적으로든 비전(非戰)에 가닿는다. “어떤 이유나 명분이든, 전쟁은 안 된다. 전쟁을 피하자면 우리가 먼저 무장을 내려놓아야 한다.” 설마 이런 생각까지야 할까만 그렇다고 그리 미더운 것도 아니다.

    지난 20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오성기와 인공기를 흔드는 수 십만 북한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평양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작년 9월 문 대통령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김정은의 전용차에 올라 평양 시가지를 누볐다. 그러나 그때 태극기는 없었다. 문 대통령은 그달 19일 평양의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감격어린 목소리로 연설을 했다. 거기에서도 태극기는 안 보였다. 바로 그 같은 남북관계, 또 그 자리에 동원된 15만 명 주민들의 ‘평화’도 좋은 것인지, 문 대통령의 생각이 궁금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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