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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자 망언의 이유, 왜 미스트롯에서만 이런 일이


입력 2019.06.12 08:30 수정 2019.06.12 08:31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미스트롯’, 지역 대결구도 콘셉트에서 벗어나야

<하재근의 이슈분석> ‘미스트롯’, 지역 대결구도 콘셉트에서 벗어나야

ⓒTV조선 화면캡처 ⓒTV조선 화면캡처

홍자가 황당한 망언으로 본심을 드러냈다며 공분이 뜨겁다.

“가인이가 경상도 가서 울었어요. 근데 제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무대 올라오기 전에 전라도 사람들은 실제로 뵈면 뿔도 나 있고, 이빨도 있고, 손톱 대신에 발톱이 있고 그런 줄 알았는데 여러분들 이렇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라도 자주 와도 될까요? 외가댁은 전부 다 전라도세요. 낳아준 분, 길러준 분 다 어머니이듯이 전라도, 경상도 다 저에게 같은 고향입니다. 감사합니다.”

전라도 사람들을 뿔이 난 괴물로 알았었다는 황당한 망언이다. 그런데 이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홍자가 주장한 것처럼 외가가 전라도라면 전라도 사람이 괴물이 아니란 걸(?)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호남 출신 가수로 유명한 남진도 ‘미스트롯’ 마스터로 출연했었다. 대선배 남진을 직접 보면서 뿔이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호남 출신 선배가수들이 무수히 많고, 홍자는 그들을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홍자가 ‘전라도 사람들이 뿔이 난 줄 알았다’고 한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전부터 전라도 출신 송가인과 경상도 출신 홍자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돼 있었고, 두 사람 관련해서 지역구도 얘기가 많이 나왔었다. 송가인이 경남 행사 소감으로, 전라도 사람이라 호응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반응이 좋아 울었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홍자도 송가인의 말을 받아, ‘경상도 출신인 내가 전라도에서 환영 받을 줄 몰랐고, 떨리고 두려웠는데 환영해줘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사랑 부탁드린다’는 취지의 말을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을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이성의 통제가 마비된 상태에서 입만 움직이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도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면서 말을 그냥 내뱉게 된다. 전라도 공연이 낯설고, 떨리고, 두려웠다는 말을 재미있고 극적이며 유머가 섞인 멘트로 하려다보니 표현이 본인 통제에서 벗어나 폭주한 것으로 보인다. 홍자 스스로도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황당해 했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계획된 말이긴 했는데, 재미있는 비유를 하려다 부주의와 지역주의의 심각성에 대한 무지로 인해 발생한 참사일 수도 있다. 이런 사고를 방지하려면 말을 재밌고 극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재미없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의미만 천천히 전달하는 데에 중점을 둬야 한다.

어쨌든 가요계에서 지역구도를 생각한 것 자체가 황당하다. 지금까지 호남 가수라고 영남에서 푸대접 받은 적 없고, 영남 가수라고 호남에서 푸대접 받은 적 없었다. 지역구도는 정치판에서나 있는 일이지 대중문화계에서 고향 따져가면서 누구를 비토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송가인과 홍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렇게 예민하게 따지는 걸까?

바로 이것이 ‘미스트롯’에서 형성된 이들의 대결구도 콘셉트였다. 두 사람이 마치 지역 대결을 벌이는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고 관련된 언급이 많았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송가인이 영남 행사에 가서 지역을 언급하고, 홍자는 또 호남 행사에 가서 지역을 언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게 참 기이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오디션이 있었다. 그중엔 영호남이 고향인 사람들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사례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것이 언급된 적이 없다. 출연자들의 고향을 두고 영남호남 대결구도라는 식으로 몰아간 적이 없었다는 뜻이다. 출연자의 고향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유독 ‘미스트롯’에서만 영호남 대결구도라는 콘셉트가 나타난 것일까?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건지 따져봐야 한다. 제작진이 편집 같은 걸로 빌미를 준 것인지, 아니면 언론이나 시청자들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몰아간 것인지, 성찰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는 망국병이다. 정치판에 나타나는 걸로도 이미 충분히 신물이 나는데 대중문화계에서까지 그것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지금까지 가수 고향으로 지역색 따진 적이 없는데 유독 ‘미스트롯’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앞으로 재발을 막기 위해 제작진도 한 번 더 고민해야 한다. 출연자들도 ‘미스트롯’의 지역 대결구도 콘셉트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수 고향 따져서 적대감 보이는 청중은 우리나라에 없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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