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이정은 "제가 무섭다고요? 나름 귀염상인데"

실시간 뉴스
    최종편집시간 : 2019년 09월 16일 00:10:25
    [D-인터뷰] 이정은 "제가 무섭다고요? 나름 귀염상인데"
    영화 '기생충'서 문광 역
    "주·조연 상관 없이 출연"
    기사본문
    등록 : 2019-06-17 09:09
    부수정 기자(sjboo71@dailian.co.kr)
    ▲ 배우 이정은은 영화 '기생충'에서 문광 역을 맡았다.ⓒ윌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서 문광 역
    "주·조연 상관 없이 출연"


    "저도 그 장면이 그렇게 무섭게 나올지 몰랐어요."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에서 극의 분위기를 바꾼 이정은(49)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맡은 문광은 주인공 박 사장(이선균) 집의 가사 도우미다. 은광은 극 중반부터 예기치 못한 사건을 일으키는 장본인. 문광의 등장으로 극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린 '가족 희비극'이다.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국내에서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11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은은 "팀플레이가 좋았다는 얘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좋은 결실을 봐서 또 좋다"고 밝혔다.

    이정은은 '마더'(2009) 단역, '옥자'(2017)의 옥자 목소리 연기로 봉 감독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옥자' 촬영이 끝난 후 봉 감독은 이정은에게 내년 스케줄을 비우라고 주문했다. 당시 '미스터 션샤인'을 준비하던 이정은은 봉 감독의 콘티를 받았다. '재밌고 이상한 작품'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봉 감독은 "앞으로 재밌고 이상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고, 이정은은 "재밌게 연기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옥자' 때까지 캐릭터를 철저하게 준비한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봉 감독과 세 번째 호흡한 그는 '봉준호의 페르소나'라는 평가에 대해 "저도 페르소나인가요?"라고 웃은 뒤 "배우로서는 '어떤 사단'에 갇히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기생충'은 우리 옆집에 살 것 같은 평범한 두 가족을 내세운다. 봉 감독은 형편이 다른 두 가족이 만나는 과정을 통해 현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한다.

    이정은은 "대본을 읽을수록 이야기가 와닿았다"면서 "빈부 격차나 계급 사회를 다룬 작품이 드문데, 한국에서 좋은 영화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전했다.

    ▲ 배우 이정은은 영화 '기생충'에서 문광 역을 맡았다.ⓒ윌엔터테인먼트

    이정은이 맡은 문광은 영화의 장르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우비를 입고, 박사장네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긴장감이 배가 된다. 떨리는 듯하면서 다급한 목소리도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이 그렇게 화제가 될 줄 몰랐어요. 저 스스로 '귀염상'이라고 생각해서 누군가에게 공포를 줄 수 있을까 걱정했답니다. 하하. 감독님은 최대한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연기하라고 하셨어요. 감독님의 연출력 덕에 장면이 잘 살아났어요."

    문광이 문을 여는 장면에 대해선 "처음엔 의아했고, 나도 궁금한 장면"이라며 "감독님이 다 구상한 장면"이라고 전했다.

    '종북 개그'도 소화한 그는 "문광의 처지를 나타낸 장면"이라며 "북한 앵커 방송, 개그맨들의 방송을 참고하며 연습했다. 문광의 상황을 나타내는 장면이라 슬프기도 하다. 칸 영화제 시사회 때 '빵' 터졌다"고 말했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사투리 연기에 특화된 배우로 꼽힌다. 주변에선 그가 쓰는 서울말도 사투리도 들린단다. 언어에 관심이 있다는 배우는 "연극 무대에서나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투리를 많이 경험했다. 사투리 연기가 잘 안 될 때는 안타까워서 울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욕 연기에 대해선 "한 방에 날리는 욕을 시원하게 하려고 했다"고 웃었다.

    기택 네 가족과 싸움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빈자들의 이야기라서 어느 쪽도 더 나빠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관객들이 기택 네나 문광 네 둘 다에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연기했다.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한 이정은은 30년 가까이 무대, 스크린, 안방극장을 오가며 내공을 쌓았다. '오 나의 귀신님'(2015) 속 서빙고로 얼굴을 알린 그는 이후 다양한 작품에 꾸준히 출연했다.

    특히 김은숙 작가의 '미스터 션샤인(2018)에서 함안댁으로 분해 '함블리'라는 애칭을 얻어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아는 와이프'(2018), '미쓰백'(2018), '눈이 부시게'(2019), '미성년'(2019) 등에 출연하며 그야말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 배우 이정은은 영화 '기생충'에서 문광 역을 맡았다.ⓒ윌엔터테인먼트

    이정은은 작은 역할이라도 존재감을 뽐낸다. 그는 "제가 맡은 인물이 어떻게 연기해야 이야기에서 잘 살아날까 고민하는 편"이라며 "너무 밋밋하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크게 욕심내지 않고 역할을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성년'에도 출연한 그는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미성년'에서 맡은 역할 같은 사람이 현실에 존재한다"며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방파제에 많이 갔다. 좋은 반응을 들을지 몰랐다"고 했다.

    연극 무대 출신인 그는 "큰 극장보다는 소극장에서 소소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끌린다"면서 "연극 무대에 다시 서려면 스케줄을 다 빼고 연극에 집중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무대 올라가는 게 너무 좋았어요. 무대에서 내려오면 심심했고요. 제 역할을 누군가 꿈꾼다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이정은이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이미지는 '친근함'이다. 이야기와 이미지,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면 작품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절 신스틸러라고 부르지만, 저는 제가 맡은 배역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주연과 같은 마음으로 연기해요. 주연이 지닌 무거운 책임감을 알고 있죠. 저는 제 남은 생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보내고 싶진 않아요. 배우한테 가장 좋은 꿈은 연기를 가장 즐겁게 하는 거죠. 제가 나왔으면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하고, 눈물을 머금었으면 합니다."

    이정은은 또 다른 도전을 꿈꾼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작품을 찍는 거다.

    '미스터 션샤인'으로 '함블리'(함안댁+러블리)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는 '기생충'으로 전혀 다른 얼굴을 선보였다. "감독이 만들어내는 비주얼이 강했어요. 전 사실 정말 귀여운 사람이거든요. 호호."

    싱글인 그는 결혼 얘기가 나오자 "저 연애 많이 했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결혼과는 연이 안 닿았을 뿐이죠(웃음)."[데일리안 = 부수정 기자]
    ⓒ (주)데일리안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