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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든 길 돌아갈 줄 아는 게 지혜다


입력 2019.06.10 09:00 수정 2019.06.10 16:26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지치지도 않고 이어가는 억지

문 대통령의 좌익인사 구하기…자기 땅에서 유배당하는 우파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지치지도 않고 이어가는 억지
문 대통령의 좌익인사 구하기…자기 땅에서 유배당하는 우파


ⓒ데일리안 ⓒ데일리안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지지·추종하는 사람들이 왜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국 주역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는 대충 짐작이 되긴 한다. 여기, 또 이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하면 스스로 보수의 아류가 되고 만다. 독립운동기부터 이념성을 분명히 했던 선배들의 맥을 이으려면 보수세력과의 차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생각 아닐까?

물론 이보다 훨씬 많은 이유와 배경이 이들로 하여금 한사코 대한민국을 부인하도록 유혹했을 것이다. 이미 문 대통령 훨씬 이전부터 이들은 민족사적 정통성을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에 두는 듯한 언행을 지속했고, ‘이승만 죽이기와 김구 띄우기’에 열을 올렸다.

지치지도 않고 이어가는 억지

억지주장은 논리적 오류를 낳게 마련이다. 1919년 4월 11일 건국설에 집착했지만 너무도 명백한 사실(史實) 왜곡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우리가 헌법전문에까지 명시하고 있는 임시정부는 19년 4월에 조직된 그 정부가 아니다. 그해 9월 한성·상해·노령 3정부가, 한성정부를 중심으로 통합해 성립시킨 임시정부를 가리킨다. 게다가 ‘19년 건국설’을 고집할 경우, 북한 김일성 3대 왕조 체제의 반역성을 확인하고 부각시키는 결과가 된다. 임시정부가 오늘의 대한민국과 동일체라면 북한은 반역집단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건국 100주년 주장은 슬그머니 거둬들였지만 그렇다고 ‘이승만 주도의 대한민국’을 인정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하든 이승만, 그리고 그와 맥이 이어지는 정치인, 정치세력을 한국 현대사와 국민의식 속에서 단죄해야 하는 게 우리들의 사명이다. 국가건설과 발전의 과정에서 그들의 자리를 빼앗아버리기에 이미지훼손 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까. 그들을 축출하고 우리의 이념적 선배들 이름으로 그 자리를 채우자.”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 때문에 스스로 괴롭다.

이승만·박정희야 진작 부정·단죄됐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의 집요한 노력으로 그 점에서는 과도한 성과를 거뒀다. 자연 보수우파 정권에 참여했거나 그 우군을 형성했던 정치·사회세력도 국민의식으로부터의 추방자·유형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 ‘친일인명사전’이 전형적 예이지만 이들은 ‘민족반역자’, ‘독재자’ 및 그 ‘부역자’들을 양산해냈다. 동시에 6·25전범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한 부정적 기억들을 쓸어 내거나 그들의 이미지를 미화하는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해왔다.

재작년 7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독일에 있던 윤이상 묘소에 경남 통영시의 동백나무 한 그루를 가져다 심었다(대통령 전용기에 싣고 갔다는데 독일 검역당국의 사전 양해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작년 2월 윤 작곡가의 유해는 고향에 돌아와 묻혔다. 그의 김일성 정권 부역 논란은 여전히 해소되거나 정리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운명』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견한 이영희의 월남전 관련 논문을 읽고 희열을 느꼈다고 썼다.

문 대통령의 좌익인사 구하기

그는 작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리셉션 환영사를 통해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이라고 강조했다. 그 사람은 통혁당 사건으로 20년을 복역했다. 감옥에서 전향서를 썼다는데 석방 후 그 자신은 “지금 다시 그때가 되더라도 전향서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전향’은 ‘방편’일 뿐이었다는 뜻이겠다.

문 대통령만이 아니라 그 이전 진보정권 때도 ‘좌익 인사 구하기’는 공공연히 행해졌다. 대표적으로 2005년 3·1절을 계기로 여운형 등 좌익 독립운동가 54명에 대한 서훈이 이뤄졌다. 국민은 심하게 거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에 힘을 얻은 것이겠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아예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인사까지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나오기에 이르렀다.

단지 유관단체만이 그러는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이 이를 주도하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그는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된 사실을 강조한 후 이들이 ‘광복 후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기상천외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견강부회라 할 만하다.

대통령이 한 말이니까 무게를 실어준다고 하자, 그렇다고 김원봉이 48년 남북협상 대표단 일원으로 북한에 가서 거기 눌러앉았던 일, 거기서 국가검열상·노동상·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요직을 거친 전력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김일성의 6·25침략전쟁 수행에도 다대한 공을 세웠다. 하필이면 이런 사람을 칭송하고 훈장을 줘야 하겠다는 것인가.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아 서훈이 지지부진하니까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김원봉을 띄우고 관련단체들이 그에 호응해서 사회적 ‘서훈 압박’을 가하기로 한 것 같다.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오는 27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본격적 활동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8일 보도됐다. 한 언론은 정부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의열단 100주년 사업 자체는 ‘김원봉 사업’이 아니라 ‘의열단 사업’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충분히 기릴 만한 사업으로 인식하고, 또 공감하고 있다. 다만 관련 부처의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도울 길이 현재로서는 없다.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다.” 이미 정부 내에서는 논의가 무르익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인식부터 분명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여기는 대한민국이고 우리는 그 국민이다. 이 한반도에서 많은 나라가 흥망성쇠를 거듭한 끝에 지난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 선포됐다(사실은 그 이전 7월 17일 헌법 공포로 국가는 이미 성립했다). 우리의 이 대한민국은 김일성 집단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허락을 받아 저지른 민족 대학살극(6·25)으로 자칫 지도상에서 사라질 상황에까지 몰렸다가 유엔군의 참전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하는 우파

3년여의 전쟁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수많은 국군 및 외국군, 그리고 국민들이 생명을 빼앗겼고, 국토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딛고 우리는 다시 일어섰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세계의 경제강국 반열에 올랐다.

그 동안 북한은 전쟁 도발에 대한 사죄는커녕 끊임없이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핵무기와 미사일 등으로 무장하고, 우리를 인질삼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 북한 정권에 복무하거나 그 통치집단을 도운 인사들까지 핑계만 있다면 다른 훈장도 아니고 ‘건국훈장’을 줘야 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이런 식으로 정치적 반대자들, 보수우파 정치세력과 그 지지자들을 적폐청산으로, 친일청산으로, 역사청산으로 다 모욕주고 징벌하고 추방한 다음, 자신들의 사상적 동지들, 이념적 동반자들, 정치적 지지자들을 모아서 어떤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아 공포에 떨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국(현실적이든 정신적이든)에서 훈장을 받고 찬사를 받도록 하는 게 순리다. 우리는 민족국가가 아닌 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 이 땅에서 권리 의무를 다하면서 살고 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그 조건 하에서만 권한을 주장하고 행사하라. 그게 세계시민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의다. 정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하는 말인데, 이 상식을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문 대통령은 9일 부부동반으로 북유럽 3국, 그러니까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국빈방문길에 올랐다. 6박 8일 일정이라는데 아마 나라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순간순간 문 대통령은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준 분들을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설마 개인적 역량이나 연고로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생각이야 하겠는가.

관련해서 말하고자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6·25, 천안함, 연평해전 유족 등을 초청한 자리에서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자신과 김정은이 손을 맞잡아 올리거나 능라 경기장에서 군중의 환호에 온몸으로 답하는 사진들을 담은 책자를 내놨다고 한다. 유족이 뭘 어떻게 하길 바라서 이런 정신적 폭력을 가했다는 것인지 대답을 꼭 듣고 싶다. 5년 임기의 대통령이고 정부다. 이제 3년도 채 안 남기고 있다. 세상을 바꿔놓고 말겠다는 혁명가적 모험심을 과시할 게 아니라 잘못 든 길이면 돌아갈 줄도 아는 지혜를 발휘해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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