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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 왜 하필 지금 김원봉인가?


입력 2019.06.10 08:30 수정 2019.06.10 08:35        데스크 (desk@dailian.co.kr)

[김우석의 이인삼각-역사전쟁] ‘역사 뒤집으려 하는 것’…‘국가전복’ 이상 의미

조만간 ‘독립운동가 김일성’을 우리나라 국부로 추앙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

[김우석의 이인삼각-역사전쟁] ‘역사 뒤집으려 하는 것’…‘국가전복’ 이상 의미
조만간 ‘독립운동가 김일성’을 우리나라 국부로 추앙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독재적 발상의 전형이 ‘역사 손보기’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그렇고,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그렇다. 대법원을 ‘최종심’이라 부른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사법절차가 끝난 후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고 말한다. 진정한 최종심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뒤집으려 하는 것’은 ‘국가전복’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권력투쟁의 최종목표는 ‘역사해석의 장악과 독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력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졌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대제국을 세웠던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 역사를 독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제국도 유래없이 단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의 '공적'을 거론한 이후, 온 나라가 양분돼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은 느닷없는 포성에 놀라며 당황하고 있다. 무엇이 쟁점인지도 모르는 채 분주히 떠들고만 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의 혼란상을 거시적으로 조망해 봐야할 시점이 됐다고 느꼈다.

현 정부는 ‘권력투쟁’을 통해 집권했다. 그런데, 임기는 단 5년뿐이다. 이에 여당에서 ‘30년 집권론’이 나왔고, 야당은 ‘독재를 꾀한다’고 공격한다. 여권은 ‘이념투쟁’을 넘어, ‘종교전쟁’으로 전장을 넓히고 있다. 이정도 되면 타협·협치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최후의 전투인 <역사전쟁>에 들어서고 있다. 이 전투는 현 여권이 보수정권 야당시절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박근혜정부때 ‘100년 전쟁’을 선포했다.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사이비 역사연구소가 앞장섰다. 그들은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이승만과 산업화를 견인한 지도자 박정희에 대해 극도의 증오를 표출했다. 객관적 역사평가는 무시됐고, 비상식적인 공격이 난무했다. 왜곡과 폄훼로 민심을 들쑤셔 놓았다. 이런 것이 쌓여서 보수정권의 자책골을 유도했다.

문재인정부 집권 후, 그들의 시나리오는 더욱 정교해졌다. 그들은 김구선생을 민족지도자로 내세워 ‘임시정부 100년, 건국 100년’을 주창했다. 올해 2019년을 건국 100주년으로 삼겠다는 그랜드디자인이었다. (“문재인정권이 ‘새로운 100년’의 초대정부”라는 상징성을 차지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였다) 이를 위해 1948년 정부수립은 평가절하(平價切下)했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해, 그 창시자인 이승만 상처주기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임시정부 100년을 기념하여 광화문 정부청사에 걸어 놓았던 임정 주요인물 현수막에 임시정부 초대대통령인 이승만을 의도적으로 제외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임시정부수립을 ‘건국절’로 삼겠다”는 현 정부의 생각은 북한 김정은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흐지부지 됐다. 그러나 ‘이승만 상처주기’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박정희의 업적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빛을 잃었다. 이렇게 자유 대한민국의 건립자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불쏘시개였던 김구선생도 폐기수순을 밟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 김구선생을 입에 달고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김원봉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임시정부는 세 종류의 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초대대통령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이다. 둘째는 민족주의세력이다. 이들은 ‘남북 단일정부’를 추구했으나 공산주의자들을 믿지 않았던 김구선생계열을 포함한다. 이 두 세력이 힘을 합해 대한민국을 세운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가 사회주의 계열이다. 이들은 또 둘로 나뉜다. 한쪽은 남한 공산화를 꾀하며 김일성과 대치했던 무정부주의자와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이다. 다른 한쪽은 북한 김일성에 동조해 연대를 꾀하거나 그 휘하에 들어갔던 세력이다. 전자인 여운영 등 반(反)김일성 좌파인사들은 노무현정부 때 복권됐다. 문재인정부 초기에 서훈과 포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친(親)북성향의 다른 한 쪽은 ‘서훈관련 규정’과 ‘국민의 공감대’에 근거해 아직까지 복권, 서훈이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거부하고, 해방 후 북한정권설립에 직접 기여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이들에 대한 복권과 서훈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 첫 단계가 ‘친일파 대 빨갱이’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국가위기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반일감정’을 정치적으로 집요하게 이용한 것도 이런 구도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적폐청산’의 약발이 떨어진 올 초부터, 이런 흑백논리에 근거한 정적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됐다. 문재인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느닷없이 “‘빨갱이’는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후 ‘5. 18 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제1야당을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공격했다. 여기에 친북인사에 대한 야당의 공세를 ‘색깔론’으로 무력화시키는 ‘역색깔론’은 기본이다. 이는 임시정부 사회주의계열 분류기준에서 ‘친북여부’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큰 담론에서의 단순한 이분법은 세부적인 구분을 무력화시킨다. 정말 잘 고안된 교묘한 전략이다.

이제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다음단계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김원봉 서훈’이다. 김원봉은 임시정부 해체를 꾀했던 분열주의자였다. 임시정부 정통성을 지켰던 김구선생은 김원봉을 "임시정부를 눈엣가시로 여긴 사람"이라고 했고, 광복군의 주축이었고 해방 후 언론인·정치가로 활약했던 장준하선생은 그를 "판에 박힌 공산분자"라고 평했다. 실지로 그는 해방 후 월북해 북한의 최고위직에 올랐고 훈장까지 받았다. 여권은 ‘김원봉이 김일성에게 숙청됐으니 달리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숙청은 북한내부 권력투쟁의 결과였으므로, 대한민국을 적대한 전과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 될 수는 없다. 문대통령은 나아가 그를 ‘광복군의 주력’이고 ‘좌우통합의 상징’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대한민국 군대의 뿌리요, ‘한미동맹’을 이끈 공로자라고 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어거지 주장’이다. 이런 엉터리 논리가 국민들을 현혹시킬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 <암살> 덕이 컸다. 그 전에 보통 사람들은 김원봉을 잘 몰랐다. 이 영화의 성공이후 그의 육성연설이 공중파를 타는 등 재조명 노력이 시작됐다. 한 쪽은 공들여 준비했고 상대 쪽은 준비없이 무방비로 분위기에 휩쓸렸다.

문대통령의 발언 후, 좌파진영 독립운동단체들이 "4대 도시에서 '김원봉 서훈' 서명운동"을 벌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원봉을 “역사가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우진 보훈처장이 ‘김원봉류(流)를 위해 서훈규칙을 고치기 위한 의견수렴 중’이라는 발언을 한지도 꽤 됐다. 이런 분위기면 ‘김원봉 서훈’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김원봉을 시작으로 해방전후 친북죄파 인사들을 대부분 복권될 것이다. 이는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친북좌파에 대한 면죄부로 활용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조만간 ‘독립운동가 김일성’을 우리나라 국부로 추앙해야 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러워 진다. 만약 그렇게 되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는 사라져 버린다. 우리 국민은 나라와 함께 자유와 경제적 풍요도 잃게 된다. 이제 ‘선택의 기로’가 멀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풍요로운 미래인가? 아니면, 5년짜리 한시적인 정부인가?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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