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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르노삼성 노조, 설마 '大勞不死'를 믿는 건가


입력 2019.05.22 13:00 수정 2019.05.23 05:50        박영국 기자

임단협 줄다리기, 구조조정 바람 속 르노 철수 부추기는 '자해행위'

대우조선·한국GM 사태와 같은 혈세지원 기대해선 안돼

임단협 줄다리기, 구조조정 바람 속 르노 철수 부추기는 '자해행위'
대우조선·한국GM 사태와 같은 혈세지원 기대해선 안돼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전경. ⓒ르노삼성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전경. ⓒ르노삼성자동차

기업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근로자들의 형편도 어려워진다. 기업이 망하면 일자리는 사라진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경영진 뿐 아니라 근로자들까지 똘똘 뭉쳐 위기 극복에 나서는 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당연한 이치가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지난 21일 임금·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부결시켰다. 올해도 아니고 작년치 임단협을 11개월간 끌다가 힘들게 도출한 잠정합의안이었다.

르노삼성의 실적 하향곡선은 지난해 한국GM 사태에 이어 ‘자동차 산업 위기론’을 촉발시킨 지표 역할을 했다. 내수판매 부진에,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로부터의 수출물량 배정까지 끊길 처지에 놓이며 어느 때보다도 임직원들의 자구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세계 자동차업계에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광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1만4000명의 감원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폭스바겐이 직원 7000명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20일에는 미국 2위 자동차업체 포드가 70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하며 구조조정 흐름에 동참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의 중심이동은 필연적으로 가솔린·디젤차와 같은 전통적인 내연기관 차량 관련 인력 수요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해외 사업장은 구조조정 최우선 순위에 오르기 마련이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면 산하 해외 사업장들은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르노삼성이 속한 르노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고임금 저효율에 툭하면 파업으로 생산차질을 빚는 해외 사업장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해 말부터 수없이 파업을 벌여 왔다. 르노의 철수를 부추기는 ‘자해행위’로 느껴질 정도로 현실과 괴리된 모습이다.

회사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들은 물론, 지역 및 국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국민들도 르노삼성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이번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결과를 보면 정작 ‘내부자’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 박영국 데일리안 산업부 차장.
르노삼성 근로자들의 이같은 ‘위기의식 결여’는 그동안 정부가 대규모 인력 고용 사업장의 위기 때마다 전전긍긍하던 모습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한국GM 사태를 거치며 ‘대규모 인력 고용 사업장이 위기를 맞으면 수천억원,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해서라도 살려낸다’는 일종의 ‘학습효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바둑용어인 대마불사(大馬不死)가 ‘큰 기업은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경제용어로 자리 잡았듯 ‘대노불사(大勞不死)’가 노동계의 강성화를 촉진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르노삼성 근로자들이 ‘대노불사’를 믿고 회사 경영정상화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라면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은 이미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한국GM 사태를 겪으며 피로감이 절정에 달한 상황이다. ‘나도 먹고 살기 힘든데, 나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왜 내가 낸 세금을 지원해야 하나’라는 의문에 누구도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긴 힘들다.

더구나 앞선 사례들은 국책은행의 채권과 지분이 걸려 있었지만, 르노삼성은 그렇지도 않다. 노조의 폭주로 회사가 흔들리고, 르노가 철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랏돈으로 지원할 근거도 없다.

르노삼성은 고용과 경제효과가 큰 자동차 기업이다. 이 회사가 무너진다면 4000여명의 임직원과 수만 명의 협력사 임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될 뿐 아니라 전체 자동차 산업 생태계와 국내 경제까지도 흔들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노불사’의 법칙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아서는 안된다. 영세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르노삼성 같은 대기업이건, 자신의 일터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은 7년 전인 2012년에도 지금과 같은 위기를 맞은 바 있다. 당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물량 지원과 르노삼성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었기에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지금의 위기 역시 스스로의 노력 외에는 벗어날 방법이 없다. ‘대노불사’만 믿고 있다가는 일터가 폐허가 될 수도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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