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대회 흑인석권과 한선교 ‘예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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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대회 흑인석권과 한선교 ‘예쁜’ 발언
    <하재근의 이슈분석> 미국 역동적으로 변화…한국의 변화 속도는 더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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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05-09 07:26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미국 역동적으로 변화…한국의 변화 속도는 더뎌

    ▲ (왼쪽부터) ‘2019 미스 아메리카’ 니아 프랭클린, ‘2019 미스 USA’ 첼시 크리스트, ‘2019 미스 틴 USA’ 칼리그 개리스@AP연합뉴스, 미스유니버스조직위원회

    작년 9월 '2019 미스 아메리카'에 이어 올 4월 '2019 미스 틴 USA'와 이 달에 열린 '2019 미스 USA'에서 모두 흑인이 1위를 차지했다. 1921년 미스 아메리카가 시작된 이래 거의 100년 가까운 세월 만에 처음으로 흑인이 세 대회를 동시에 석권한 사건이다.

    미스 아메리카에는 ‘백인 여성만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고 이에 반발한 흑인들이 1968년에 미스 블랙 아메리카 선발대회를 열기도 했다. 1970년이 돼서야 흑인 여성이 미스 아메리카 출전자 명단에 올랐다. 1983년에 처음으로 흑인 우승자가 등장했고, 미스 USA와 미스 틴 USA에서는 각각 1990년과 1991년에 흑인 우승자가 나왔다. 하지만 그 후로도 흑인의 우승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흑인이 세 대회를 동시에 석권한 것이다. 그동안은 대부분 백인이 세 대회를 모두 휩쓸어왔다. 올해 미스 틴 USA인 캐일리 개리스와 미스 USA인 체슬리 크리스트의 머리모양도 인상 깊다.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떠올리게 하는 머리모양이었다. 그동안 흑인 여성들은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피고 활동할 때가 많았다. 이번엔 흑인의 정체성을 당당히 내세우고 대회 측이 그것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에선 최근 여성, 소수자, 타자를 재조명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다보니 유색인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각 인종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소수 인종들도 과거엔 주류 백인 문화를 추종하는 경향이 일부 있었다면 요즘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추세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뜨겁게 환영받는 것에도 이런 흐름이 일부 반영됐다. 이번에 흑인들이 미인대회에서 곱슬머리를 내세우고 그것이 우승으로 이어진 배경에도 이런 흐름이 있을 것이다.

    미의 기준 자체가 다변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엔 전형적인 백인상을 기준으로 미인 수상자를 가렸다면 지금은 다른 인종의 특징도 폭 넓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미의 기준’이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안 되고, 1등을 뽑는 미인대회의 속성상 획일적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기준이 다양하면 1등을 가릴 수 없을 테니까. 이런 근본적 한계는 있지만, 어쨌든 그런 속성의 미인대회조차도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만큼 미국사회의 변화가 크다는 뜻이다.

    페미니즘의 영향도 있다. 미스 아메리카인 니아 프랭클린은 비영리봉사 단체에서 활동 중이고,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 주목 받았다고 한다. 미스 USA인 체슬리 크리스트는 MBA이자 법학박사 변호사에 재소자들을 위한 무료 변론 활동을 하고 있고, 전형적인 미인대회 입상자들에 비해 나이도 많다.(만 28세) 어리고 예쁜 외모만을 평가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여성의 능력, 사회공헌활동 등을 중시한 것이다. 외모로 상을 주는 미인대회마저도 여성을 외모만으로 평가하지 않게 된 것이 바로 페미니즘의 영향이다.

    2018년에 미스 아메리카가 출범 97년 만에 수영복 심사를 폐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이 대회 조직위원장은 “우리는 대회 참가자를 외모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수영복 심사 대신에 심사위원과 묻고 답하는 대화를 통해 지성을 드러낼 기회를 더 강화했다. 당시 조직위는 ‘바이바이 비키니(#byebyebikini)’라는 해시태그를 홍보했다.

    미국이 이렇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데에 비해 우리의 변화 속도는 더디다. 잠시 폐지됐던 미스코리아 수영복 심사가 2012년에 부활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존치 자체가 논란이지만, 특히 수영복 심사를 유지하는 건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다.

    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은 얼마 전 장외집회에서 배현진 당협위원장을 일컬어 ‘늘 예쁜 아나운서였는데’, ‘예쁜 우리 배현진’이라며 공식석상에서 예쁘다는 외모 평가를 두 번이나 했다. 여성을 외모중심으로 본다는 말이 나왔다. 배현진 위원장은 자신이 그 말에 기분 나쁘지 않았다며 문제 지적이 ‘오지랖’이라고 했다. 한국사회 여성관의 문제를 논하는 사회적 사안인데, 자신이 기분 나쁘지 않으면 괜찮은 사적인 문제라고 본 듯하다. 이런 일들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서 터지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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