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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위세가 무한정 가지는 못할 텐데…


입력 2019.05.06 09:00 수정 2019.05.06 22:28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검찰 총장이 공수처법에 저항

선거법, 우리는 경우가 다르다충고 한마디 못한 전직 의장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검찰 총장이 공수처법에 저항
선거법, 우리는 경우가 다르다충고 한마디 못한 전직 의장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배제시키고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군소정당들과 연대해서 공수처 관련 3개 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는 전자 발의 수단까지 동원한 결과다. 정권 측의 대단한 재주부리기였다고 할 만하다.

민주당의 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분명하다. 선거법을 개정해서 군소정당들의 안정적 존속을 가능케 해주겠다는 유혹이 주효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민주당으로서는 공수처법 입법이 핵심과제다. 그걸 위해서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별로 나쁘지 않은 거래조건이라고 판단했을 법하다.

검찰 총장이 공수처법에 저항

문제는 만사가 강자의 뜻대로만 되어주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앞으로 논의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연횡(連衡)의 대오가 끝까지 유지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바른미래당은 법안발의 과정에서부터 심각한 내홍에 빠져들었고 상황은 악화일로다. 더 심각한 것은 정권 내부의 반발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1일 해외 출장 중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했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사법 통제를 약화시켜 지금보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을 가능성이 큰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그 말을 하고 닷새나 일정을 앞당겨 4일에 귀국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 한 것으로 미루어 입장을 바꿀 의사는 없어 보인다. 청와대가 예사롭지 않은 난관에 직면한 셈이다.

게다가 김태규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가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수처를 바라보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공수처 신설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고위직 경찰공무원, 검사, 법관이 신생조직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그는 문 총장의 ‘용기’에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국회법 개정안도 전도가 순탄하기는 틀렸다는 느낌이다. 자유한국당은 4개 법안 패스트트랙 지정에 저항하는 장외집회를 계속해나갈 기세다. 군중의 힘으로 정권을 차지한 집권세력으로서는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당 내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관련해서다. 군소정당에는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겠지만 민주당에는 오히려 손해만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다. 지역구 28곳을 폐지하게 되면 그 충격은 우선 의석수가 많은 민주당부터 받지 않겠는가.

(물론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이야기들이 여당 내에서 나온다고 들린다. 서로 몫 다툼을 하다가,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니까 그 비용을 국민에게 떠넘기자는 것이다. 패스트트팩 4당이 어쩌면 이 교활한 계산에 합의할 것 같기도 하다.)

이해득실에 따른 비판만 나오는 게 아니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노웅래 의원의 경우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의 룰’인 선거법은 제1야당과 합의 없이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다만 패스트트랙 지정을 백지화하겠다는 말은 아닌 듯하고, 자유한국당을 특위 논의의 장으로 유인하려는 말 선심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쨌건 여당이 명분 없는 일을 벌였음을 당 소속 중견 의원이 확인해 준 것은 사실이다.

상식을 다시 강조하자. 대의민주정치는 수(數)의 정치가 아니라 대화와 설득과 타협의 정치다. 진지한 숙고와 이성적 대화, 진정어린 설득, 합리적 타협이야말로 대의민주정치의 진면목이다. 과반수로는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어렵다고 해서 ‘5분의 3’ 가중 다수결로 국회법을 바꾼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가. 물론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진지한 노력을 지레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선거법, 우리는 경우가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촛불혁명’을 역설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부는 그 혁명에 바탕을 두고 성립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 뜻이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사법적 징벌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것인가. 자신의 정권이 국민의 혁명에 의해 태어났으므로 정당성 적법성 정통성에 전혀 하자가 없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인가. 아니면 혁명정부의 비상한 조치들에 대해 야당들은 물론 국민까지도 순응해야 한다는 통첩인가.

문 대통령은 유권자의 41%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현 정부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바로 그 점을 말해야 한다. ‘혁명’에 정치적 레토릭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혁명적 조치’의 당위성을 주장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공수처 설치는 비상한 조치다. 상설특검제도와 특별감찰관 제도가 이미 있다. 사안에 따라 그 때 그 때 특검법을 만들기도 한다. 검찰과 경찰도 건재하다. 탄핵제도 또한 시퍼렇게 살아 있다. 따라서 공수처라는 별도의 기관이 꼭 있어야 할 까닭이 없다. 현실의 법과 기관이 기대만큼 작동되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항생제의 단위를 계속 높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대응책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만이 선거제도 선진화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거나 그에 근접해야 하며, 득표율과 의석수의 불비례성이 심한 선거결과는 옳지 못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면서 주로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모범적 사례로 제시된다. 우리나라는 불비례성이 가장 높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만큼 사표가 많고 국민들의 의사는 국회의석에 왜곡 반영된다는 주장이 따라 붙는다.

그러나 의원내각제 국가와 대통령제 국가의 차이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독일이나 뉴질랜드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권력구조는 의원내각제다. 통치권이 의회에 있는 만큼 득표율과 의석수의 일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체제다. 통치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는 견제와 균형의 관계다. 정당이 난립한 국회로서는 행정부의 독주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없다. 근대 대통령제의 종가인 미국에는 아예 비례대표제라는 제도 자체가 없다. 이원집정제의 구조를 가진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가장 오랜 의원내각제 역사를 가진 영국도 다른 내각제 국가들과는 달리 비례대표제를 채택하지 않았다.

충고 한마디 못한 전직 의장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명부 작성 방식의 문제도 지적돼야 한다. 정당이 일방적으로 명부를 작성한다. 유권자들은 그걸 참고는 하겠지만 그 때문에 지지정당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절차의 공정성 여하 간에 명부작성은 정당의 지도부가 주도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자리를 정당의 유력자들이 사유화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제도를 독일식으로 한다고 그 나라 정치수준에 이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에 책임을 떠넘기며 비난하는 것을 능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까 행동으로 거부하고, 그것도 역부족이 되니까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패스트트랙 소동을 종식시키고 의정을 정상궤도로 복귀시키려면 관련법안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옳다. 의정 복원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힘을 과시한 측이 결자해지는 하는 게 순리다.

책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문희상 국회의장도 책임을 면할 입장이 못 된다. 오히려 논란의 중심에 그가 있다고 봐야 한다. 민주의정의 최후보루가 되어야 할 국회의장이 특정 정당과 그 연대정당들의 입법독주를 저지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는가.

국회법 제48조 6항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1항부터 제4항까지에 따라 위원을 개선할 때 임시회의 경우에는 회기 중에 개선될 수 없고, 정기회의 경우에는 선임 또는 개선 후 30일 이내에는 개선될 수 없다. 다만,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국민 모두가 알았던 것처럼 임시회기 중이었다. 개선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권은희 두 의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에게 허가를 요청한 바도 없다. 교섭단체 대표가 일방적으로 사보임을 신청했고 문 의장이 병상에서 기어이 결재했다. 국회의 상규와 상례를 심대하게 어겼다. 그랬으면 부끄러운 줄이라도 알아야 할 텐데, 문 의장은 오히려 당당하다.

4일엔 서울 한남동 의장 공관에 전직 국회의장 5명을 초청해 만찬 간담회를 가졌다. 조언을 구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하는데, 언론보도로는 이렇다 할 조언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선배 의장들은 기껏 청와대와 의장단과의 만남 등 다양한 대화 채널 가동을 제안했다고 한다. 법안처리 지연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개탄했다던가. 개탄은 그럴 때 하는 것이 아니다. 충고를 했는데도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면 또 모르겠거니와, 국회법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사보임 병상 결재를 강행한 문 의장의 정권 편향적 권한행사를 크게 나무랄 일이었다.

문 의장도 그렇고, 정부 여당 또한 길을 잘못 들었음을 뻔히 보면서도 고집 때문에, 아니면 정권적 이해타산 때문에 직진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다. 입법 강행의 부담을 언젠가는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정권의 위세가 언제까지나 계속되어주지는 않는다. 늦기 전에 정상궤도로 회귀하는 것이 상생의 길일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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