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의 민족이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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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누구의 민족이라는 것인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는 망상
    남북간 합의는 코뚜레가 된다…이쪽선 뺨맞고 저쪽선 차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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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04-15 08:30
    이진곤 언론인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는 망상
    남북간 합의는 코뚜레가 된다…이쪽선 뺨맞고 저쪽선 차이고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1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전체회의에서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이날 더할 수 없는 충성과 찬양의 언어를 총동원해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하는 연설을 했다.

    종전엔 김영남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 명목상 국가원수의 지위를 가졌었다. 그런데 이날 최는 상임위원장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을 함께 받았다. 그는 김정은을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로 호칭했다. 김정은이 국가원수로서의 국무위원장임을 선포함으로써 명(名)과 실(實)을 일치시킨 셈이다. 김일성 세습 전제 체제가 비로소 아귀를 다 맞췄다고 하겠다.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는 망상

    최가 이날 연설에서 “평화수호의 위력한 보검을 갖춘 세계적인 군사강국으로 전변시켜” 운운한 데서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는 헛되고 헛된 희망이라는 것이 새삼 확인되었다. ‘세계적 군사강국으로의 전변’이 ‘불멸의 공적’이라는 조건 하에서 국무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은이 핵무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 지위와 존재 자체의 부인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다음날 김정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조선당국은 추세를 보아가며 좌고우면하고 분주다사한 행각을 재촉하며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고만장!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 영락없이 김정은의 부하가 될 판이다. 블룸버그통신이 ‘한국의 문,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되다’는 제목의 기사를 쓰고, 그걸 읽은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런 말 안 듣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해서 ‘검은머리 기자’ ‘탄핵’ 운운하며 펄쩍뛰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들이 어떻게 ‘오지랍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 ‘제정신 가지고’라는 따위의 모욕적인 언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남북 당국자들이 걸핏하면 ‘민족’을 거론하는데 누구의 어떤, 어느 민족을 말하는 건가. 우선 북한 내에서조차 김정은의 민족은 그의 일족과 맹목적 충성분자들밖에 없다. 북한 2500만 주민을 자신들과 같은 민족으로 여겼더라면 북한이 굶주림과 처형이 상시화된 거대한 수용소가 돼 있을 리 없잖겠는가. 전제군주가 그의 신민을 민족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대우한 예는 인류사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이 사실을 굳이 외면하려는 사람들의 인식 배경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 북한의 김정은이 ‘민족’이라고 부르는 한국인은 누구일까? 북쪽 주민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민족’의 반열에 올려놓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특별한 인사 몇몇인가? 어쨌든 앞으로 저들의 입에서 우리를 향해 ‘민족’이라느니, ‘민족공조’라느니 하는 말 제발 안 들었으면 좋겠다.

    “지금 온 민족은 력사적인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이 철저히 이행되어 조선반도의 평화적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북남관계가 끊임없이 개선되어나가기를 절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남북간 합의는 코뚜레가 된다

    그러나 남조선의 보수세력들은 민족의 지향과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기대 앞에 너무나 부실한 언동으로 화답하고 있으며 북남관계를 판문점선언 발표 이전 시기로 되돌려보려고 모지름을 쓰고 있습니다.”

    이게 북한식의 협상술이다. 일단 선언이든 합의든 형식을 갖춘 문건이 만들어지면 그들에게는 고삐가 되고 우리에겐 코뚜레가 된다. 자세히 뜯어보면 그 문건들에 반영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북한 체제 측의 이익이다. 물론 ‘민족’ ‘평화’ ‘통일’ 따위의 추상적인 용어들이 포함돼 있지만 그건 북측의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이익을 명문화하기 위한 장식품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9‧19남북군사합의’ 등 ‘불가역성’의 약속들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김정은은 채권자인 양 온갖 요구와 위협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어떤 난관과 장애가 가로놓여도 민족의 총의가 집약된 북남선언들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철저히 이행해나가려는 입장과 자세부터 바로 가져야 합니다. (중략)

    나는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개선과 평화와 통일을 바란다면 판문점상봉과 9월 평양상봉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와 북남선언의 성실한 이행으로 민족 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김정은이 생각하는 한국의 효용성이다. “무사하려면 약속을 지켜라. 사대적 근성과 외세의존 정책을 버려라. 선언에 명기된 책임을 다하라.” 이건 상급자의 하급자에 대한 지시나 명령이다. 진보좌파 정권이 필요이상으로 북한 역대 군주들을 역성든 것이 북한의 상국(上國) 행세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아닌가?

    김정은은 이렇게도 말했다.

    “지금 미국이 제3차 조미수뇌회담개최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하노이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수뇌회담이 재현되는 데 대하여서는 반갑지도 않고 할 의욕도 없습니다. (중략)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 앞으로 조미쌍방의 리해관계에 다 같이 부응하고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공정한 내용이 지면에 씌어져야 나는 주저 없이 그 합의문에 수표할 것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어떤 자세에서 어떤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중략) 모두 다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당과 공화국 정부의 두리에 굳게 뭉쳐 사회주의강국 건설 위업을 빛나게 실현하기 위하여 총진격해 나아갑시다.”

    이는 한국정부에 대한 경고, 미국에 대한 반발, 북한 주민에 대한 허장성세다. 그만큼 위기감이 크다는 반증이지만 결사항전 의지의 천명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아래 인용문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쪽선 뺨맞고 저쪽선 차이고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한평생 최대의 심혈과 로고를 기울이신 조국통일 위업을 기어이 실현할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북남관계개선과 조선반도평화보장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연속 취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조국통일은 김일성이 전쟁을 통해서라도 이루고자 했던 ‘국토완정’의 다른 표현이다. 그 기반을 조성하는데 한국도 협력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 체제에 의한 통일의 길을 한국 측이 같이 닦으라는 지시를 그는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김정은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여지가 있다고 아직도 믿는 사람이 있는가? 김정은의 저 오만은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걸 포기하는 순간 김정은은 권좌에서 끌려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 김정은이 협상으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졌으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북한의 비핵화를 가능하게 하는 길은 한미동맹의 역량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양국의 강력한 결속과 신뢰야 말로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장을 포기하게 하는 최대의 압박력‧응징력이 된다. 김정은에게 구애될 필요는 없다. 언제까지나 김정은을 상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문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면 물러나야 하는 것처럼 김정은도 권좌에서 내려가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김정은만을 바라보고, 그의 협박에 겁을 먹어야 하는 협상 자세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이른바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고집하지 않는 게 옳다. 유난히 ‘민주’를 강조해 온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미국에 대해 그 같은 협상방식을 주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통치권자들끼리 결정하면 아랫사람들의 문서화 작업을 거쳐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게 이른바 톱다운 방식이다. 김정은에게는 그게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중요한 외교안보 정책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민주국가라는 것 아니겠는가.

    하노의 회담에서 트럼프가 행동으로 김정은에게 확인시켜준 바가 그것이다. 강조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지만, 외교는 정부 정치권 국민의 지지와 신뢰 속에서 행해져야 힘을 갖는다. 문 대통령의 외교라고 다를 바 없다. 대통령은 물론 외교안보 참모들 모두 생각을 달리하지 않으면 북한문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일이다.

    그래서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문 대통령은 어떤 배경에서 무엇을 위해 그처럼 급급히 1박3일의 부부동반 미국방문을 강행했는가. 사전에 정부 당국자들 간 의제조율도 없이 대통령이 막무가내로 비행기에 올랐다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이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망신시켰다는 것인가.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옆에 멀거니 앉아 있다가 ‘상호 이견’만 확인하고 돌아온 것이 문재인식 정상외교의 정형화된 스타일이라는 것인가? (작년 5월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리고 거듭 말하고자 한다. 북한 김정은 집단은 우리의 민족 구성원이 아니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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