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화폐개혁 득실 논란-2] 해외 사례 보니…성급함이 화 불렀다


입력 2019.04.12 06:00 수정 2019.04.12 06:03        부광우 기자

1960년 이후 전 세계 50여 차례 실시 대부분 실패

인도 현금부족 사태 충격, 충분한 사회적 합의 있어야

화폐개혁을 뜻하는 경제학 용어인 리디노미네이션. 이름은 어렵지만 내용은 단순하다. 현재 쓰고 있는 돈의 단위에서 0을 몇 개 덜어내고, 그 만큼 작아진 숫자로 새 화폐를 만들어 유통하자는 얘기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감춰져 있다. 국내에서 화폐개혁이 하필 왜 지금 다시 사회적 논쟁거리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속내가 숨어 있는지 들여다봤다.

1960년 이후 전 세계 50여 차례 실시 대부분 실패
인도 현금부족 사태 충격, 충분한 사회적 합의 있어야


화폐개혁을 시도한 나라는 많았지만 성공한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무리 화폐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성급함은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게티이미지뱅크 화폐개혁을 시도한 나라는 많았지만 성공한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아무리 화폐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성급함은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게티이미지뱅크

화폐개혁을 시도한 나라는 많았지만 성공한 나라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특히 갑작스런 시도는 사회적 혼란을 넘어 국가 경제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도 했다. 아무리 화폐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성급함은 화를 부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1960년 이후 최근까지 해외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이 단행된 사례는 총 50여건에 이른다. 과도한 물가 상승이나 대외적 위상 재고 등 다양한 이유에서 화폐개혁이 시행됐다.

이중 국내 대중들에게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케이스는 짐바브웨다. 짐바브웨는 2008년 2억3100만%라는 경이적인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체 인구의 극소수인 백인들이 농토의 상당수를 점유하고 있다며 2005년 무가베 정부가 백인 소유 토지를 몰수하는 특별법을 제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를 본 유럽이 원조를 중단했고 홍수와 가뭄까지 겹치면서 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에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유래 없는 물가 상승률만큼이나 극단적인 리디노미네이션에 나섰다. 2008년 8월 100억짐바브웨달러를 1짐바브웨달러로 변경하고, 1년도 지나지 않은 2009년 2월에 또 다시 1조대 1이라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이 같은 조치들에 화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지자 결국 짐바브웨 정부는 2015년 일시적 자국 통화 유통 금지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7경5000조짐바브웨달러를 미화 5달러로 교환해 주기로 했다.

최근 화폐개혁으로 홍역을 치른 국가로는 인도가 꼽힌다. 인도 정부는 2016년 11월 8일 기존에 사용 중이던 500루피와 1000루피 지폐 유통을 당일 자정부터 금지하고, 대신 구권을 대체할 500루피와 2000루피 신권을 10일부터 풀겠다고 선언했다. 단위를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 화폐를 바꾼다는 점에서 화폐개혁에 속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그리고 인도 정부는 이전 화폐를 교환할 수 있는 기간을 같은 해 말까지로 못박았다.

그러자 인도에서는 현금부족 사태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생활에서 쓰이는 필수품들부터 자동차와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거래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일각에서는 이런 화폐개혁으로 인해 2017년 인도 경제성장률이 0.4~3.3%포인트 가량 하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공적인 화폐개혁으로는 유로화가 꼽힌다. 가장 큰 차이는 속도였다. 유로화가 2002년 1월 1일부터 화폐로 통용되기 시작한 뒤 유럽연합(EU)의 개별 회원국들은 최소 10년 이상 또는 무기한으로 기존 화폐를 교환해 주기로 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실제로 유로화 화폐개혁에 따른 부작용은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화 도입 10주년을 맞은 2012년 유로화 정착으로 환전 비용이 절감됐고 물가 상승률도 낮았다고 평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 프랑스의 리디노메이션도 잘 된 화폐개혁으로 거론된다. 이 역시 시간이 관건이었다. 당시 드골 정부는 100프랑을 1프랑으로 교환하는 대신 교환 기간 종료일을 정하지 않았다. 강제 교환이나 사유재산 동결 등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신뢰를 더욱 높였다. 덕분에 프랑스는 2년 만인 1962년에 화폐 교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화폐개혁을 무리 없이 가져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통한 혼란 방지가 필수적"이라며 "충격 요법의 관점으로 접근했다간 기대한 효과 대신 부작용만 눈 덩이처럼 불어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