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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안팎에도 적폐는 널려있다


입력 2019.04.01 08:30 수정 2019.04.01 08:21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대통령의 턱밑에서 투기라니

청문 대상 후보자의 기고만장…정권 스스로 쳐놓은 올무 3개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대통령의 턱밑에서 투기라니
청문 대상 후보자의 기고만장…정권 스스로 쳐놓은 올무 3개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문재인 정부가 출범 2년이 가깝도록 집요하게 매달리는 과제가 있다. 이른바 ‘적폐청산’이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포함, 수많은 전 정권 요인들을 줄줄이 감옥에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다. 그 기세로 보건대 앞으로도 계속 ‘적폐 관련 죄인 발굴 사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더 찾아낼 죄인이 없으면 대상 기간을 과거로 연장하면 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널리고 널린 게 적폐이고 흔하고 흔한 게 탐관(貪官) 혹리(酷吏) 오리(汚吏)일 터이다.

문제는 현 정권 쪽 인재들이 어느 먼 별 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곳에서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거의 온갖 풍진(風塵)을 깨끗이 털어내고 닦아내는 ‘비리‧부도덕 청정기’를 통과한 사람들 같지도 않다. 문 대통령의 고민이 거기에 있지 않을까?

대통령의 턱밑에서 투기라니

당장 대통령의 입노릇을 하던 청와대 대변인부터, 아무래도 적폐 같기만 한 행태로 인해 사퇴해야 했다. 마치 시대정신의 구현자, 그러니까 정의의 사도쯤으로 보이고자 애쓰는 것 같던 그는 부동산 투기 의혹의 소용돌이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했다. 하루건너 31일에는 일곱 명의 장관 후보자 가운데 두 명이 각각 지명철회, 자진사퇴로 출세의 꿈을 접어야 했다. 도대체 청와대는 뭘 검증했느냐고 기자들이 따지니까 청와대 김의겸 당시 대변인이 지난 18일 “사전에 체크된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및 여론 청문회에서 드러난 의혹들은 장관 자질로서 별로 흠결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국민은 어이없어 하는데 청와대는 ‘그만 일로 뭘 그러느냐’는 투였다. 그러다 궁지에 몰리니까 철회하거나 사퇴시켰으니 된 것 아니냐고 맞서는 모양새다.

어차피 견뎌내지 못할 두 사람을 선제적으로 희생시키면서 나머지 다섯 명은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쪽으로 결심이 선듯하다. 하긴 이런 것이 문 대통령의 인사스타일로 굳어진지는 오래다.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장을 준 것 정도는 약과다. 아예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은 장관급 인사도 등장했다. 대통령의 인사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을 공공연히 내보인 것이다.

청문회장에서 과시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기고만장은 목불인견이었다.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만 하면 될 것을, 말싸움으로 위세를 과지했다. 그 자신 국회의원으로서 그간 40회의 인사청문 경험이 있다고 자랑한 터였다. 국민들도 그가 청문회 때 보여준 표정, 들려준 말투를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그때의 깨달음으로 싸움닭 전술을 구사했다는 것일까?

특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끌고 들어간 것은 안하무인격 오만이라 할 수밖에 없다. 물으니 대답했다고 하겠지만 어쩐지 각본에 따른 질문과 답변이라는 인상을 떨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아니면 과거 야당의원 시절의 공격 본능이 자신도 모르게 되살아나서 청문 대상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렸던 것일까? 김학의 전 법무차관 관련 CD를 당시의 황 장관에게 보여줬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면서도 미안해하는 빛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오찬을 하고서는 황 장관과 했다고, 정치자금 수입‧지출 보고서에 기재한 것과 관련해서도 납득할 만한 해명 한마디 안 내놨다.

청문 대상 후보자의 기고만장

이런 후보자가 27일 청문회 때, 그리고 청문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31일에도 “향나무는 도끼에 찍히더라도 향을 남긴다”는 말을 거듭했다. 이번 청문회 과정이나 과거 그의 정치 역정을 돌아보건대 ‘향’이 무얼 뜻하는지 짐작이 안 된다. 그가 인격적으로 ‘향’을 가졌는지 아닌지는 관심을 둘 바 아니다. 그렇지만 그의 정치행태와 정치언어를 두고 말하자면, ‘향’은 아무래도 거북하다.

문 대통령이 그를 장관으로 임명할 공산이 크다. 두 사람을 이미 희생시키고 나서 또 낙마자를 만들겠는가. 조, 최 두 후보자까지도 ‘문제없음’으로 검증 게이트를 통과시킨 청와대다. 박 후보자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고 싶을 리 없다. 오히려 그의 전투력을 높이 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과 당당히 맞짱뜨는 장관을 기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인들 낙마하겠는가. SNS 등을 통해 치기만만한 험구악구(險口惡口) 자랑을 한껏 했던 것이 드러나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했지만 자진사퇴할 생각은 전혀 없는듯하다. 자신의 정책소신과 학자적 판단을 뒤집어야 할 처지가 되면 차라리 사퇴 쪽을 택할 법한데도, 그의 집념(?)은 대단하다. “창피 정도는 일순에 지나간다. 임명장 받고 나면 더한 말로 갚아줄 수도 있다.” 설마 이렇게 까지 야 생각할까만 어쩐지 예감이 좋지는 않다.

“사람이 없다.” 조국 민정수석이 그렇게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핵심관계자’라는 사람이 청와대에 “왜 이런 사람을 후보자로 내놓았느냐”고 물으니까 조 수석의 말이라며 누군가 그렇게 전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 말을 했다면 이야말로 큰일이다. 인구 5천 2백만에 가까운 나라에서 장관감이 없어, 인성‧자질‧자격 가릴 겨를 없이 아무나 지명한다고 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말은 더 절창이다. 조 전 과기부 장관 후보자가 해외 부실 학회에 참석한 사실을 지명 철회의 결정적 이유로 꼽으면서(군색한 설명이지만 어쨌든) 후보자가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아 걸러낼 수 없었단다. 당사자가 입을 다물면 민정수석실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인가. 이미 작년 7월부터 일부 언론이 와셋, 오믹스 등 가짜해외학술단체를 이용한 국내 연구자들의 엉터리 실적 쌓기와 공적 연구비 오남용 문제를 보도해 왔다는데도?

실망스런 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무리한 인사를 강행해서 큰 물의를 빚고 또 빚으면서도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은 말이 없다. 이번에도 윤 수석이 대신 “송구하다”는 말을 매우 힘겹게 했다. 과거의 흔히들 하던 말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니까 구워먹든 삶아먹든 구경만 하라는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국정은 청와대가 전적으로 이끌고 있는데 어떤 사람을 장관으로 발탁하든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4‧3재보선이 없다면 김 대변인, 조 후보자, 최 후보자 모두 건재했을지 모른다. 재보선에 패배하면 문 대통령은 바로 급격한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야당 측 공격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면서 오히려 역공세를 취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 자유한국당 황 대표를 희생양 삼아서….

정권 스스로 쳐놓은 올무 3개

문 대통령의 이른바 ‘촛불혁명’ 정부가 인사에서부터 위기상황을 드러내는 까닭을 추측하긴 어렵잖아 보인다. 우선 대통령도 그의 측근 참모들도 국가경영의 비전과 로드맵을 갖지 않았다. 오직 ‘보수정권 타도’만을 외치고 추구했던 사람들의 연대였을 뿐이다(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조타실을 점거하고 키를 잡긴 했는데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항로와 목적지를 아는 사람이 없다.

거함을 이끌고 가려면 노련한 선원들이 있어야 하는데 내편 아닌 사람 배제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떼어내고 한 바람에 인재풀이 아주 좁아졌다. 게다가 남은 사람들은 주로 민주화 투쟁, 이념 투쟁, 노동운동의 ‘투사’들이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귀하다. 국가경영에 최우선되어야 할 것이 ‘인재를 천하에서 구하는’ 자세인데 좌파운동권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포용력이 모자란다. 그러니 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코드인사뿐이다.

이념투쟁을 하면서 나름으로 국가경영 포부가 있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그림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그리고 디테일보다는 전체 모양에 신경을 쓴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라는 발상이 바로 비전과 로드맵의 추상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좌파들은 원래부터 ‘영원한 낙원’을 꿈꾼다. 거기에 이르는 길을 닦고 안내할 사람들은 ‘혁명의 열정과 의지’가 차고 넘치는 자신들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책임의식으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정치를 선악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선(善)의 군단으로 자리매김한다면 상대는 악(惡)의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일이 잘 되면 그것은 자신들의 업적이 되고, 잘못되면 악마들의 방해 탓이 된다. 교묘한 언설로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악마사냥을 끈질기게 벌인다. 악마를 다 몰아내고 나면 사람이 주인이 되는 인간중심의 영원한 낙원이 열린다고, 그들은 확신하고 있을까?

자신들이 분노하면서 끝없이 잡아넣는 ‘적폐’들이, 알고 봤더니 정권안팎에도 차고 넘친다는 게 이번 일련의 소동에서도 드러났다. 가식이 걷힌 ‘내편’ 인사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면서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의 정적 사냥을 계속할 것인가.

현 정권 앞에는 스스로 쳐놓은 3개의 올무가 있다. ‘적폐청산’이 그 하나이고 ‘소득주도성장’이 그 둘이다. 이들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민족자주‧민족공조’다. 이미 이 올무들이 정권을 죄어들고 있다. 이 정권의 비극은 의지와 정책의 수정을 거부하는 직진본능이다. 앞에 올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그쪽으로 질주한다. 이념의 절대성을 신봉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닌가?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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