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난민 5년-하]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나…소비자 편의 '실종'

실시간 뉴스
    최종편집시간 : 2019년 05월 26일 10:36:58
    [통장난민 5년-하]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나…소비자 편의 '실종'
    한 은행서 계좌 만들면 타행서 한 달여 간 개설 금지 왜
    미확인 정보에 혼선…대포통장 근절 효과마저 '의문부호'
    기사본문
    등록 : 2019-03-15 06:00
    부광우 기자(boo0731@dailian.co.kr)
    새 통장을 만들기 위해 오랜만에 은행을 찾은 소비자들 대부분은 까다로워진 계좌 발급 조건에 당황스런 경험을 하게 된다. 신분증 하나로 통장을 받았던 기억만 갖고 은행을 찾았다가는 온갖 서류 요청에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이는 대포통장을 근절하겠다며 정부가 계좌 개설 요건을 높이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로 인해 서민들 사이에서는 통장 난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은 통장 규제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한 은행서 계좌 만들면 타행서 한 달여 간 개설 금지 왜
    미확인 정보에 혼선…대포통장 근절 효과마저 '의문부호'


    ▲ 정부가 대포통장을 잡겠다며 통장 개설을 어렵게 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그 현실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대포통장을 잡겠다며 통장 개설을 어렵게 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그 현실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서는 개설이 막히거나, 통장 개설이 가능한 점포가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퍼지는 등 불분명한 규제로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에 현장에서는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태우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실질적인 제도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20일 이내에 신규 통장을 발급 받은 이력이 있으면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첨부해도 계좌 개설이 제한된다. 여기서 20일은 주말을 제외한 영업일 기준이다. 즉, 특정 은행에서 새 통장을 만들었다면 한 달여 가량 다른 은행에 가도 또 다른 계좌를 틀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어 자금을 분산하려는 고객의 경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특히 예금자 보호 한도인 5000만원에 맞춰 목돈을 나눠 담아두려는 금융소비자들의 경우 미리 준비해둔 통장들이 없다면 몇 달 간의 이자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단지 자신의 돈을 넣어두기 위해 통장을 개설하는데 이 같은 불편을 겪게 된 이유는 2015년부터 시행된 강화된 계좌 개설 제도에 있다. 타인 명의로 무분별하게 여러 대포통장을 만들어 각종 불법 자금의 유통 통로로 악용하는 행위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목적이다.

    해당 규제가 시행된 지도 어느덧 5년차를 맞고 있지만, 이를 두고 현장에서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라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의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 너무나 많은 선량한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게 되는 구조여서다.

    분란을 키우는 또 다른 요소는 현장에서 규제의 일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온라인에는 주부나 학생에게도 비교적 쉽게 통장 발급을 해주는 은행 점포가 있다는 정보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소비자들로서는 혼란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는 2015년 관련 규제가 시행될 때부터 이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애초에 금융당국이 구체적인 통장 개설 기준을 지시하지 않은 탓이 크다. 금융당국은 금융 거래 목적만 확인된다면 은행들이 신규 계좌를 얼마든지 발급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결국 자신들은 통장 개설을 막은 적이 없는데, 은행들이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항변이다.

    하지만 은행들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알아서 잘 하라는 식의 방침을 고수하는 이상 은행들로서는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경향이 생기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아울러 지난해 말 미국의 이란 제재를 둘러싸고 세컨더리 보이콧을 피하기 위해 은행들이 통장 개설은 더욱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와중 규제에 큰 틀만 있고 세세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 않아, 은행에 따라 혹은 때에 따라 다르게 규정이 적용되면서 고객들이 혼선을 빚을 수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통장 발급 제한 조치가 제대로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지를 두고도 날이 갈수록 의문부호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포통장이 은행에서 제 2금융권으로 넘어가는 풍선효과가 관측되고 있어서다. 만약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불편과 혼란을 겪게 됐음에도, 새로운 규제를 통해 달성하려 했던 대포통장 줄이기에 끝내 실패한다면 비난 여론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통장 개설 문턱이 높아지기 시작한 2015년 4만4400건이었던 은행 대포통장 발생 건수는 2017년 3만995건으로 8.0%(2677건) 줄었다. 대신 같은 기간 상호금융기관에서는 6815건에서 7132건으로, 새마을금고에서는 3383건에서 4000건으로, 우체국에서는 2518건에서 3172건으로 각각 3.3%(225건), 25.9%(824건), 15.0%(413건)씩 대포통장이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규 계좌 제한 조치가 대포통장 차단에 얼마나 효과를 거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면서도 "고객들의 불만을 불식시킬 만큼 확실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계좌 발급 관련 규제는 분명 대포통장 방지에 효과를 거두고 있어 제도 개편에 나서기엔 아직 어려운 시점"이라며 "다만 소비자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 계속 주력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데일리안 = 부광우 기자]
    ⓒ (주)데일리안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