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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용불패’ 임창용, 허무한 24년 현역 마감


입력 2019.03.11 14:50 수정 2019.03.11 15:24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지난 시즌 후 KIA서 방출, 새 소속팀 난항

KBO리그에서의 18년간 기록만으로도 대투수

임창용이 24년간 입었던 현역 유니폼을 벗는다. ⓒ 연합뉴스 임창용이 24년간 입었던 현역 유니폼을 벗는다. ⓒ 연합뉴스

지난 시즌 후 KIA 유니폼을 벗은 베테랑 투수 임창용(43)이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임창용의 에이전트인 스포츠인텔리전스그룹은 11일 임창용이 은퇴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임창용은 2018시즌 후 KIA에서 방출, 이후 새 보금자리를 물색했으나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임창용이라는 이름값을 감안하면 다소 허무한 은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 진흥고를 졸업한 임창용은 1995년 해태(현 KIA)에 입단, 2년차였던 1996년부터 1군 자리를 꿰찼다. 이후 임창용은 ‘전천후 투수’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보직을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펼쳤다.

해태에서 본격적으로 마무리 자리를 맡은 뒤 2년간은 엄청난 혹사에 시달렸다. 마무리 투수임에도 1997년 64경기 135이닝, 1998년 59경기 133.2이닝이라는 살인적 스케줄을 소화했고 각각 26세이브, 34세이브를 거두며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잡았다.

1999년 삼성으로 이적한 뒤에도 혹사는 이어졌고 아예 ‘애니콜’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다. 선발로 전환한 2001년부터 3년간 매해 두 자릿수 승수로 에이스급 대우를 받았고 마무리로 다시 돌아간 2004년에는 36세이브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던진 혹사의 후유증으로 2000년대 중반 부상에 시달린 임창용은 2008년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에 입단했고 전설의 2막을 써내려간다.

특히 임창용은 팔꿈치 수술의 재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며 오히려 구속이 증가했는데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세 번째로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던졌다. 여기에 테일링까지 추가된 변화부쌍한 직구를 놓고 팬들은 ‘뱀직구’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일본 무대를 평정했던 임창용. ⓒ 연합뉴스 일본 무대를 평정했던 임창용. ⓒ 연합뉴스

일본 무대를 평정한 임창용의 다음 도전은 메이저리그였다. 시카고 컵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은 임창용은 2년간 최고의 무대를 경험한 뒤 2014시즌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와 2년 연속 30세이브 고지를 밟으며 오승환의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흑역사도 있다. 2015년 불거진 불법해외원정도박 스캔들로 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서 제외됐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삼성은 임창용을 비롯한 윤성환, 안지만 등 핵심 전력의 구멍을 메우지 못하며 통합 5연패에 실패했다.

결국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된 임창용은 자신이 프로 생활을 처음 시작한 타이거즈로 돌아왔고 40대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지난까지 1군서 활약했다.

KBO리그 18년 통산 760경기에 출전했고 130승 86패 258세이브를 기록했으며 평균자책점은 3.45로 매우 훌륭한 성적표를 남겼다. 승수는 KBO리그 통산 7위에 해당하며 세이브 부문도 오승환, 손승락에 이은 역대 3위다. 일본과 미국서 활약한 6년의 공백을 감안하면 역대급 투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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