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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누명 옥살이 누가 보상하나


입력 2019.03.07 08:00 수정 2019.03.07 08:00        데스크 (desk@dailian.co.kr)

<하재근의 이슈분석> 억울한 피해자 만들어선 안돼…그 고통 누가 보상?

<하재근의 이슈분석> 억울한 피해자 만들어선 안돼…그 고통 누가 보상?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성폭행 혐의로 옥살이를 했던 남성의 부인이 성폭행 피해자의 고모와 담당 경찰의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린 사건이다.

그 남성은 2015년 사업차 홀로 간 전남의 한 마을 빌라 1층에서 거주하던 중, 2층에 살던 지적장애 2급 18세 여성에게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당했다. 남성은 부인했지만 2016년 11월 1심에서 징역 6년이 선고돼 10개월 정도 옥살이를 하다 보석 석방된 후, 올 초 항소심 무죄판결로 무려 4년여 만에 누명을 벗었다고 한다.

남성의 부인은 경찰 수사가 엉터리였다고 한다. 피해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는 장소를 수차례 번복했고, 그 장소들 중의 하나인 모텔은 사건 당시 공사중이었다고 한다. 여러 인물의 사진 중에서 가해자의 사진을 고르는 조사를 실시할 때도 1주일 전에 피해자에게 알려줘서 가해자로 지목한 남성의 얼굴을 학습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다. 남성은 피해 여성과 만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미리 알려주지 않았으면 피해자가 사진을 지목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찰이 모텔의 CCTV 영상을 확보했으면 피해 여성의 허위주장을 감지했을 텐데, 모텔 주인이 전화로 영상이 없다고 말한 것만 듣고 방문 확인을 안 했다고 한다. 사실은 그때 영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피해여성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믿으면서 그것의 진위를 밝히려는 노력을 부족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피해 여성이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가출한 피해 여성이 성폭행 진범은 자신의 고모부라고 폭로한 것이다.

빌라 2층은 피해 여성의 고모 집이었다. 이 여성은 십대 초반부터 고모 집에서 얹혀살며 학대당하고 노동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14살 때부터 고모부에게 성폭행을 당하기 시작했고 고모의 학대가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고모가 성폭행 무고를 시켰다는 것이다.

성폭행당한 것 자체는 사실인데, 그것을 경찰에 진술하면서 가해자만 바꿨다는 얘기다. 빌라 1층에 사는 남성을 지목하기 전에도, 과거에 이웃을 성폭행범으로 지목한 적이 있었고 진술 내용이 이 사건과 비슷했는데 무혐의가 나왔다고 한다. 경찰은 이런 전력을 조사하지 않은 걸까?

피해 여성은 고모의 협박으로 고모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성폭행범으로 지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학대를 견디다 못해 고모 집을 가출했고 그때서야 진범이 고모부임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감옥에 갇힌 남성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고모는 무고 교사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고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선 차후 진상을 밝혀야 하겠지만 어쨌든 남성이 무고를 당했다는 것 자체는 인정이 돼서 항소심 무죄가 나왔다. 그리고 진범이라는 고모부가 2년6개월 징역에 처해졌다. 애초에 무고를 당한 남성이 징역 6년을 받았는데 진범이 2년6개월인 점이 의아하다. 진범이 무고당한 사람보다 더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게 맞는 걸까?

이 사건은 남성의 부인과 딸이 직접 모텔 CCTV 화면을 입수하는 등 3년간 추적해서 억울한 정황을 밝혀내고 결국 성폭행 당한 여성으로부터 진실을 듣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스스로 무죄를 입증해낸 것이다. 남성의 부인은 “무고의 대상이 되면 남성은 증거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증거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다.

요즘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의 주장을 과거보다 폭 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이건 바람직한 일인데 그렇다고 사실관계 자체를 부실하게 확인한다면 문제가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의 말과 행동의 모순점을 따지면 2차가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공격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 일각에서 나타난다.

옥살이한 남성의 부인이 말한 것처럼 지목당한 남성이 스스로 증거를 제시해야 풀려한다면 이것도 문제다. 유죄는 처벌을 가하려는 쪽에서 증명해야 하는 것인데, ‘일단 지목당한 이상 무죄증거를 제시할 때까지 유죄로 간주한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최근엔 일부 경찰이나 검찰이, 여성의 피해 주장을 배척했다가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공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애매한 정황인데도 일단 송치하거나 기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온다.

물론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자의 증언이 중요하고, 여성들의 피해가 그동안 억압됐기 때문에 피해 여성의 말에 더 귀 기울여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선 안 된다. 이번 사건만 해도 남성의 가족이 끈질기게 매달리지 않고, 성폭행당한 여성이 가출하지 않았다면 남성은 영원히 성폭행범으로 낙인 찍혔을 수 있다. 그 고통을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성범죄 사건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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