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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별에서 오셨는지 궁금하네요


입력 2019.03.04 09:00 수정 2019.03.05 15:27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보리밥풀로 잉어를 낚겠다니

더욱 바빠질 중재자 문 대통령…꿈은 좋지만 백일몽은 안 된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보리밥풀로 잉어를 낚겠다니
더욱 바빠질 중재자 문 대통령…꿈은 좋지만 백일몽은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앞세워 입장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앞세워 입장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니다.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를 만들어 20여만 명의 주민을 가둔 채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는 폭력집단이 통치권을 행사하는 곳을 ‘국가’로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회주의 국가라면서 3대째 세습을 강행하고, 그 체제에 대해 위협이 되거나 충성심이 결여됐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을 자행하는 집단을 정부라 부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 폭정의 주역이 사흘낮밤을 달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려 한 까닭이 북한 주민의 안전과 번영에 있었겠는가. 3대 세습왕조의 안전과 전제적 통치체제의 강화 때문이었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보리밥풀로 잉어를 낚겠다니

그런데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이나 김정은과 마주 앉았고, 그 덕에 김정은은 정상국가의 통치자 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겼을까.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그는 턱도 없는 욕심을 부렸다, 이참에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대 기만극을 벌여보기로 한 것이다. 보리밥풀 하나로 잉어를 낚겠다는 욕심 없이 그 먼 길을 갔겠는가.

김정은은 그간, 작년 6월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허풍쟁이 키다리 아저씨’를 다룰 비책 마련에 골몰했을 것이다(순전히 추측일 뿐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경험담과 조언을 들었을 수도 있겠다). 트럼프는 자화자찬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찬사에 약하다. 잘 포장된 큰 상자에 선물이라는 걸 넣어서 전하면 트럼프가 엄지를 세워들면서 만족해 할 것이라고 계산했을 법하다.

그러나 ‘영변핵시설 폐기’는 이미 한 번 써먹은 트릭이다. 2008년 6월 27일 냉각탑을 폭파하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그 반대급부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받아냈다. 이게 사기극이었음은 그들에 의해 금방 밝혀졌다. 2013년 4월 2일 북한의 원자력총국 대변인은 “우라늄 농축 공장을 비롯한 영변의 모든 핵시설과 함께 5MW 흑연감속로(원자로)를 재정비, 재가동하는 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했다. 어차피 교체해야 할 시설을 가지고 쇼를 벌인 것인데, ‘전쟁광’으로 불리기까지 했던 무시무시한 조지 W. 부시가 넘어가고 만 것이다.

김정은이 트럼프 미 대통령을 상대로 다시 ‘영변핵시설 폐기’와 ‘경제제재 해제’를 맞바꾸자고 제의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회담 결렬 후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다섯 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었다”며 책임을 미국 측에 돌렸다.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왜 미국이 이런 거래 방식을 취하는지, 거래 계산법에 대해서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고 계시고, 생각이 좀 달라지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미국에 압박을 가했다.

‘영변’을 미국 정부에 던지는 효과적 미끼로 생각했다면 한심한 오산이다. 설령 북한의 핵 시설이 영변에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 폐기는 이제부터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 과제이고 제재 해제는 당장의 조치인데 어떻게 등가 교환이 성립되겠는가.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해제해달라고 했다는 주장 또한 트릭이기는 마찬가지다. 북한이 요구한 5개 결의안, 그러니까 2016년부터 17년까지 나온 결의안의 해제는 사실상의 전면 해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더욱 바빠질 중재자 문 대통령

게다가 영변의 핵시설은 이제 효용이 다했다. 저들은 이미 평양 인근의 강선 등지에 훨씬 효율이 높은 우라늄농축시설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이 사실을 말하자 북한 측이 깜짝 놀랐다지만 미국이 아는 게 이뿐이겠는가. 이런 미국을 꾀어 영변 핵시설 폐기와 경제제재 해제를 맞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거부당하는 것은 예정된 결과다.

트럼프로서는 어차피 북한의 핵 폐기가 단기에 해결될 과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국내 정치적 입지를 생각하더라도 협상을 서두를 일은 아니었다. 그는 회담 후 트윗에서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고 했다. 걸핏하면 하는 말이지만, 어쨌든 느긋하다. 합의를 서둘렀다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기보다는 협상을 이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경제제재를 견딜 여력이 있다면 모르겠거니와 그게 아니라면 북한은 트럼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더 소망스러워진다. 이는 문 대통령 또한 반기는 일이어서 앞으로 종횡무진, 그의 발걸음은 더 바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벌써 마음이 앞서가고 있는 인상이다. 회담이 결렬됐다는데도 그는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두 정상 사이에 연락 사무소의 설치까지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성과였다”는 분석까지 내놨다. 전제 조건이 성립되지 않아 무산됐는데 ‘중요한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하다니! 이런 게 궤변 아닌가?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우리 정부는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하여 양국 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도 말했다. 북한 핵은 우리 문제가 아니라는 투다. 남의 잇속 다툼을 해결하는 중재자가 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듣노라면 뜨악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별에서 오셨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그는 미‧북회담 전부터 내세우던 ‘신한반도체제’를 기념사에서 다시 거론했다. “신한반도 체제는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라고 그는 규정했다. 그러면서 “국민과 함께, 남북이 함께, 새로운 평화협력의 질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기념사 많은 부분을 신한반도의 꿈으로 채웠다. 수사는 화려했다. 그러나 그저 마음껏 그려보는 상상화였을 뿐이다. 무엇이 문 대통령의 마음을 이처럼 바쁘게 만드는 지 도무지 짐작이 안 된다. ‘통일 대통령’이 되고 싶은 것일까?

그게 아니면 ‘평화의 화신’으로 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일까? 성급한 평화 혹은 평화통일의 욕구가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온 역사적 사례에는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항간에 가능성이 점쳐지던 ‘노벨평화상’을 잊지 못하는 때문은 아닐까? 그러리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닐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꿈은 좋지만 백일몽은 안 된다

‘꿈이 있는 대통령’은 멋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백일몽이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장래에 대해 무지갯빛 비전을 갖는 것은 좋은데 일단은 자신의 발로 이 땅을 굳건히 딛는 게 중요하다. 김정은 체제가 지속되는 한 그의 신한반도체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 체제는 변하지 않는다.

“100년 전 오늘, 남과 북도 없었습니다. 서울과 평양, 진남포와 안주, 선천과 의주, 원산까지 같은 날 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전국 곳곳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서울 말고는 모두가 북한 쪽의 지역들이다. 우연히 이렇게 원고가 작성됐을까? 아니면 의도가 있었을까? 그의 이 부분만을 듣고 있자면 독립만세는 북한에서 주로 행해졌다는 말이 된다. 남북 분단 상황이 이에 이르게 된 연유에서도 북한 김일성 집단의 죄과는 간과되었다. 왜 그러는지를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원고 작성자의 의도를 우리가 깨닫게 될 때가 올 것이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그는 강조해 마지않았다.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는 말도 했다. 구소련이 3‧8선 이북에 김일성을 앞세워 전위 정권을 세운 것도, 그 정권이 전면적 남침을 저질러 수많은 겨레의 목숨을 앗은 일도 다 괜찮고 오직 일제와 그들이 획책한 좌우대립이 문제였다는 논리다. 이렇게 뒤섞어 버리면 일본의 죄과가 되레 모호해지고 만다는 생각은 안한다는 것일까.

‘빨갱이’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라는 희한한 역사관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이곳의 국민으로 살아온 지가 66년을 넘었다. 우리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면서, 또 북한의 어떤 도발을 감당해가면서까지 오늘에 이르렀는지 보고 느끼고 경험하기에 그리 부족하지 않았던 세월이다. 그에 비해 김정은을 알았던 세월은 길어야 1년여다. 그런데 그의 연설문에서 우리 국민이 함께 걸어온 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경험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을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놀라울 만큼 깊다. 도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그걸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

앞으로 남은 3년여의 집권기간 동안 신한반도 체제를 성립시키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음이 급한 것인가. 김정은 집단이 어떤 집단인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우의는 절대로 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급히 너무 멀리 갔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쯤에서 조국의 앞날에 대해 좀 더 냉철히 고민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대한민국과 그 국민들의 안전과 번영을 위하여.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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