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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회색코뿔소가 온다-상] '저축·100세 만기' 발목 잡는 과거


입력 2019.02.20 06:00 수정 2019.02.20 11:05        부광우 기자

회계 변경에 재무 부담 커지는데…자본 여력 역행

'옛 영업의 그림자' 보험사들 어깨 짓누르는 업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오히려 그로 인해 간과하는 위험을 가리키는 회색코뿔소. 미셸 부커 세계정책연구소장이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소개한 이 개념은 이후 글로벌 경제를 사로잡는 단어가 됐다. 그가 쓴 회색코뿔소는 중국의 불어나는 빚을 경고하는 표현이었지만, 최근 보험업계에도 남다른 시사점을 안기고 있다. 보험사의 보험금 관련 부채 부담을 두 배까지 늘릴 회계기준 변경이 다가오고 있어서다. 피할 수 없는 태풍에 대비하는 보험업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진단해 봤다.

회계 변경에 재무 부담 커지는데…자본 여력 역행
'옛 영업의 그림자' 보험사들 어깨 짓누르는 업보


보험사들의 재무 부담을 키우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 시행이 다가오는 와중 국내 보험업계가 과거 영업 경쟁 과정에서 경쟁적으로 판매에 나섰던 상품들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보험사들의 재무 부담을 키우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 시행이 다가오는 와중 국내 보험업계가 과거 영업 경쟁 과정에서 경쟁적으로 판매에 나섰던 상품들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보험사들의 재무 부담을 키우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본격 시행이 다가오는 와중 국내 보험업계의 자본 건전성은 도리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들 모두 저마다 과거 영업 경쟁 과정에서 경쟁적으로 판매에 나섰던 상품들에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특히 생보업계는 저축보험이, 손해보험사는 100세 만기 보험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39개 일반 생·손보사들의 지급여력(RBC)비율은 평균 254.8%로 전년 동기(259.5%) 대비 4.8%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RBC비율은 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있는지를 수치화 한 것으로, 보험사의 자본 여력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염려가 새나오는 이유는 2022년 도입 예정인 IFRS17에 있다. IFRS17이 실시되면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은 지금보다 악화될 공산이 커서다. 큰 폭의 RBC비율 하락은 아니지만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IFRS17이 시행되면 보험금 부채 평가 기준은 기존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게 된다. 저금리 상태에서도 고금리로 판매된 상품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이자가 많은데 IFRS17은 이 차이를 모두 부채로 계산한다. 그 만큼 보험사들은 보험금에 대한 적립금을 상당히 더 쌓아야 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의 RBC비율은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보험사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우선 생보업계는 저축성 상품 다이어트에 골몰하고 있다. 예전부터 자산 규모 경쟁을 벌이며 판매했던 높은 이율의 저축성 보험이 IFRS17 적용 시 보험사의 부채 리스크를 키우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대신 생보사들은 보장성 보험 영업에 주력하고 있다. 높은 금리를 강조해야 하는 저축성 보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자 부담이 적어 재무적 압박을 완화해 수 있어서다. 더욱이 현 회계 기준에서는 판매 첫해 손해가 발생하지만, IFRS17이 도입되면 오히려 처음부터 이익이 나게 된다는 장점도 보장성 보험에 생보업계가 주목하는 측면이다.

문제는 이에 따라 생보사들의 저축성 보험 판매는 크게 축소됐지만, 정작 바라던 보장성 상품 확대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생보사들이 저축성 상품에서 거둔 초회보험료는 지난해 1~3분기 3조3286억원으로 전년 동기(5조2495억원) 대비 36.6%(1조9209억원) 줄었다. 그리고 같은 기간 보장성 보험에서의 초회보험료도 1조1588억원에서 9067억원으로 21.8%(2521억원) 감소했다. 초회보험료는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고 처음 납입하는 보험료로 생보업계의 대표적인 성장성 지표다.

손보업계도 주름이 패이긴 마찬가지다. IFRS17 도입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손보사들은 생보사들만큼 위험을 겪지는 않은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루는 상품의 특성 상 생보사들처럼 최저보증이율을 앞세운 저축성 보험을 많이 판매하지 않아 와서다.

하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니 IFRS17에 따른 손보사들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보사들의 재무 상태가 생보사들보다 크게 떨어지는 현실 때문이다. 손보사들의 지난해 3분기 말 RBC비율은 245.9%로 손보사들(260.3%)에 비해 14.4%포인트 낮았다.

생보사들에 비해 덜하긴 했지만 손보사들도 최저보증이율 조건이 붙은 상품들을 많이 팔아온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손보업계의 경우 최근 몇 년간 영업에 열을 올렸던 만기 100세 이상의 상품들이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IFRS17 아래서 보장 기간이 긴 상품일수록 준비금을 더 쌓아야 해서다. 2013년 이전까지만 해도 손보사들이 취급한 상품들의 만기는 80세가 대다수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초 IFRS17은 생보업계의 주요 이슈로 여겨졌지만 시행 시점이 다가오면서 손보업계도 무풍지대일 수 없다는 평이 나온다"며 "새로운 자금 수혈 통로를 찾으려는 보험사들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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