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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근간 지켜질까


입력 2019.02.11 07:00 수정 2019.02.11 05:54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포퓰리즘 아웃사이더의 등장

미‧북 정상회담의 불가예측성…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자인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포퓰리즘 아웃사이더의 등장
미‧북 정상회담의 불가예측성…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자인가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2019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닉슨은 또한 외국의 적대 세력으로부터 국가를 구하기 위해 대통령직에 부여된 비상 대권을 그가 적이라고 불렀던 국내의 정치적 반대자에게 행사함으로써 대통령직을 황제처럼 만드는데 성공했다. 국가 안보를 대통령의 범법 행위에 대해 만병통치약과 같은 정당화 수단으로 내세우면서…(후략)” (아서 M. 슐레진저 2세, 미국역사의 순환, 정상준‧황혜성 역).

슐레진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리더십 행태와 그 전개과정에서 대통령직을 황제의 권좌로 만들어가는 양상을 기술하면서 ‘황제와 같은 대통령직(The Imperial Presidency)’을 저술해 출간(1973년)했다. 이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번역되어 정치권의 유행어가 됐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현 정부‧여당 주요 인사들은 이 용어가 마치 보수 대통령 리더십의 속성인양 과하게 공격했다.

포퓰리즘 아웃사이더의 등장

슐레진저의 ‘황제’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박세연 역)에서는 ‘독재자’로 등장한다. 저자들에게 연구 및 저술 동기를 부여한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다.

저자들은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경고신호를 개발했다. ①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고, ②경쟁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③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고, ④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충족시키는 정치인이라면 잠재독재자로서의 혐의가 짙다. 그렇다면 이 ‘전제주의 리트머스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어떤 정치인들인가. 주로 포퓰리즘 아웃사이더들이다.

대의민주정에 대한 신조가 확고하지 못하고, 민주적 정당정치에 동화되지 못한 채 언제나 혁명을 꿈꾸는 야심가들, 항상 대중의 환호를 갈구하는 포퓰리스트라면 그는 ‘포퓰리즘 아웃사이더’의 조건을 제대로 갖췄다고 하겠다. 그런 인물로 레비츠키 등이 대표적으로 꼽은 사람이 바로 현재의 미국 대통령 트럼프다. 그는 대선운동 기간 중 네 가지 경고신호에 해당하는 행태를 모두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일찍이 어떤 후보도 시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방식의 선거운동으로 대통령직을 차지했다. 대통령으로서 그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들이 가졌던 이미지를 그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 한 예는 가끔 있었지만 사적 지위 및 권력으로서 그걸 즐기며 누리고자 한 경우라면 아마도 그가 유일할 것이다.

그는 ‘마음대로 리더십’ 스타일을 과시하고 있다. 자신의 방침에 반대하는 상대를 거침없이 비난하고, 독선 독주의 행태를 고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사상 최장인 셧다운을 겪었으면서도 자신의 국경 장벽 예산을 고집하는 게 전형적 사례다. 물론 아무리 트럼프라도 미국 내정에서 끝까지 독재자로 군림할 수는 없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한적이다. 삼권분립의 정치체제에 적합화된 의회 및 정당들의 존재가 대통령에 대한 견제력을 (아직은)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대통령들의 전제군주적 행태는 주로 외정(外政)에서 목격된다. 특히 전쟁과 관련해서 대통령은 재량권을 활용해 의회를 건너뛰곤 한다.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그의 태도가 그렇다. 그는 역대 대통령들의 방식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자기류를 고집해 왔다. 궤도를 이탈한 것은 또 그렇다하고 자신의 스타일 자체가 심한 불안정 궤도를 그리고 있다. 갑자기 핵심 전략자산 모두를 한반도 주변에 전개하면서 북한을 금방이라도 궤멸시킬 듯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김정은에 대한 ‘친애’의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식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꺼렸던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과감하게 수용했다가 북한 외교관의 말 한마디에 회담 무산을 선언하는가 하면 또 금방 만나겠다고 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결정을 거듭했다.

미‧북 정상회담의 불가예측성

2차 미‧북 정상회담 결정과정도 예측을 허용하지 않았다. 뭔가 잘 안돌아가는 것 같은 분위기를 보였는데 갑자기 일사천리로 날짜와 장소가 정해졌다. 27~28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김정은과 만난다는 것인데, 아직 어떤 목표를 가지고 무엇을 논의하게 될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정말 해결 가능성을 확인하고 만나겠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세리머니가 필요해서 그러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는, 남들이 보기엔 ‘기분 내키는 대로’ 이 문제를 가지고 공깃돌 놀이를 하고 있다. 그가 대한민국과 그 국민들의 처지에 대해 특별한 고려를 하고 있을까? 전통적 한‧미동맹관계의 맥락에서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가 되지만 트럼프의 협상전략에서 그걸 기대하긴 어렵다. 협상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한국의 안보 취약성은 남‧북한 사이에서 풀어야 할 문제로 넘겨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변칙의 명수 트럼프의 다음 행보를 누가 알겠는가.

하긴 문 대통령의 협상력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문 대통령에 대해 친근감‧동맹의식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문제다. 트럼프가 정말로 의리를 지키겠다고 결심한 외국 원수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그의 장사꾼 기질과 스타의식은 다른 나라 정상과의 우의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 대통령 또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심정적으로는 북한에 경도돼 있지만 그렇다고 한‧미동맹을 깨 버릴 용기를 가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위험한 줄타기 곡예를 벌이는 중인데 장사꾼 트럼프가 그 속내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는 트럼프에게는 꽃놀이패다.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주든 안 해주든 그에겐 부담이 안 된다. 어느 쪽이건 문 대통령 핑계를 대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잠재적 독재자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국의 문 대통령은 어느 쪽일까? 신뢰할만한 민주주의자인지, 아니면 그걸 붕괴시킬 가능성을 가진 극단주의자인지 따져봐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는 사실상의 민주당 대선 후보 때이던 2016년 12월 “헌재가 탄핵 기각 결정을 내리면 그 다음은 혁명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광화문에서는 촛불집회가 갈수록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군중혁명’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음은 불문가지다.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안을 인용해 파면시켰음에도 문 대통령은 당선 후 오히려 공공연하게 ‘촛불혁명’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당선이 갖는 정치사적 의미를 부풀리고 미화하려는 표현인 것 같지만 정말로 그렇게 믿어서 한 말일 수도 있다. 그가 비서실장으로 모셨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그도 혁명에 매료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는 과연 민주주의자인가.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자인가

문 대통령은 취임직후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4대강 6개보 개방, △고리원전 1호기 영구 폐쇄 및 신고리 5, 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공무원 등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을 급하게 지시했다. 국회 및 여야 정당과 진지하게 논의하려는 시도도 없이 지시만으로 밀어붙였다. 야당들은 신정권의 위세에 주눅 들었고, 여당은 박수치기에 바빴으며 국회는 구경꾼 노릇이나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의 ‘적폐청산’ 작업은 여전히 산천초목까지 떨게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 아웃사이더에 의해 타격을 받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게 레비츠키 등의 진단이다. 그 아웃사이더는 대중 선동을 통해 집권하고, 대중의 심리를 움직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 간다. 대중은 자신이 주권자인 것으로 착각하는 동안 선동 정치인들의 조종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이익에 봉사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욱이 국민 혹은 유권자가 극단적으로 분열돼 첨예한 진영간 대립상을 보이고 있다. 이 또한 선동가들에 추동됐을 수 있다. 정당들이 이 경향에 편승한다. 그렇게 되면 레비츠키 등이 말하는바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은 무력화하고 만다. 정당이 잠재적 독재자의 진입을 막는 문지기로서, 또 민주대의정치의 버팀목‧인도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해야 할 때 민주정치는 무너진다.

10일 오후 김태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의 특별감찰반원이 두 번째 기자회견을 했다. 드루킹 사건 특검 수사관련 사항을 파악하라는 특감반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흑산도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당시)의 사표를 받아야 한다며 감찰 보고서를 작성하고 민간위원들의 명단을 알아내도록 지시 받았다고도 했다. 유재수 부산광역시 경제부시장이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재임 시절 저지른 비위사건을 청와대가 무마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일 말고도 문 대통령 혹은 청와대와 관련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었지만 제대로 해명을 들은 기억은 별로 없다. 대개의 의혹은 묵살되는 인상을 주었다. 문 대통령은 가족 관련 의혹에 대해서조차 일언반구 말이 없다. 이 때문에 어느 정부보다 더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더욱 두려운 의문이 생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건재한가.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은 앞으로도 지켜질까. 어떤 정치세력도 국체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으리라고 믿어도 될 것인가. 아무래도 정부 여당 측이 대답해줘야 할 질문인 것 같은데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기대해도 좋을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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