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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해결 나선 기업…버티는 노조, 수수방관 정부


입력 2019.01.15 08:58 수정 2019.01.15 09:23        박영국 기자

현대차, 최저임금 해법으로 임금체계 변경 추진…노조는 반대

정부 '최저임금 자율합의 6개월 유예'는 사실상 책임회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참석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현대차, 최저임금 해법으로 임금체계 변경 추진…노조는 반대
"정부 '최저임금 자율합의 6개월 유예'는 사실상 책임회피"


‘소득주도 성장’을 앞세운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졸지에 고임금을 지급하면서도 범법자로 몰리게 된 기업들이 임금체계 정상화에 나섰다.

하지만 버티기만 해도 임금인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노조는 ‘수용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고, 정부는 6개월 내에 알아서 합의하라며 ‘방관’하는 모습이다.

15일 현대차에 따르면 사측은 최근 노조에 2달에 한 번씩 기본급의 100%를 지급하던 상여금을 매달 50%씩 나누는 식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현대차는 현재 매년 기본급의 750%를 상여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격월로 100%를 지급하고 설과 추석 명절, 여름휴가 때 각 50%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중 격월 지급분 600%를 50%씩 매달 지급하겠다고 한 것이다.

현대차가 취업규칙 변경에 나선 것은 지난해 말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으로 올해부터 법정 주휴시간(유급으로 처리되는 휴무시간)이 최저임금 산정 기준 시간(분모)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재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같은 상황에 처한 다른 기업들도 취업규칙 변경을 통한 임금체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노사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에 현대차의 사례가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평균 연봉이 9000만원에 달하며, 신입사원 초봉도 5500만원 수준이지만 격월, 혹은 연 단위로 지급돼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상여금이 750%에 달하는데다, 산정 기준 시간에 주휴시간까지 포함되면서 일부 저호봉 직원들이 최저임금법에 걸린다.

상여금 등을 제외한 현대차 생산직 신입사원의 월급(기본급)은 법정 주휴수당을 포함해 160만원 정도로, 기준 시간을 월 174시간으로 하면 시급이 9195원이다. 그러나 기준 시간을 월 209시간으로 바꾸면 시급이 7655원으로 떨어져 올해 최저임금(8350원)을 위반하게 된다.

연간 5500만원의 최저임금을 지급하고도 최저임금법 위반에 걸리는 모순된 상황이다.

정부도 이런 모순을 모르는 게 아니다. 지난해 평균연봉 6000만원이 넘는 대기업인 현대모비스와 대우조선해양이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적발돼 큰 파장이 일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기업들의 최저임금 부담을 더욱 늘리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을 고집했다. 대신 자율합의로 임금체계를 개선하라며 6개월의 유예기간을 줬다.

현대차가 노조에 취업규칙 변경(임금체계 개선) 방침을 밝힌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취업규칙 변경은 사측 권한이지만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노사 단체협약이 우선 적용된다는 노동조합법에 따라 사측이 노조 반대를 무릅쓰고 변경을 강행해도 단협과 상충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조와 합의가 필요하지만, 애초에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사안이다. 노조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기업이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임금을 올려줄 텐데 임금체계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

이런 형편에 6개월 내에 자율합의로 임금체계를 개선하라는 정부의 태도는 ‘방관’을 넘어 ‘무책임’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다.

평균연봉 9000만원 이상의 현대차가 이럴 정도면 다른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노조와 단협을 통해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되는 기업은 전부 천문학적인 임금 인상을 감수하거나 범법자가 돼야 한다.

재계에서는 이번 현대차의 임금체계 개선 성공 여부를 정부의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 폐해의 정도를 파악하는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당장 강성노조와 협의에 나서야 하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노조가 임금체계 개선에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면서 “결국 6개월 유예기간은 책임회피용에 불과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가 6개월 내에 취업규칙 변경에 실패해 임금을 추가로 올려주거나 최저임금법에 걸린다면 강성노조가 있는 다른 기업들도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라며 “이는 정부의 최저임금법 개정이 현실 파악을 못한 탁상행정이거나 현 정권의 지지층인 대기업 강성노조 배불려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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