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잖아 다시 천도론 제기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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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잖아 다시 천도론 제기되는 것 아닐까요?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하려면 못할 게 없는 대통령의 힘
    무산 선언된 광화문 대통령 시대…문 대통령의 기념비적 과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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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9-01-07 09:00
    이진곤 언론인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하려면 못할 게 없는 대통령의 힘
    무산 선언된 광화문 대통령 시대…문 대통령의 기념비적 과업은?


    ▲ ⓒ데일리안 DB

    문재인 대통령의 ‘광화문 집무실’ 공약이 지켜질 수 없는 것으로 밝혀지기 무섭게 ‘세종시 집무실’ 구상이 제시됐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대전시당 위원장이 6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광화문 집무실 대신에 세종 집무실 추진을 생각해 본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대통령 세종집무실’ 나아가 ‘세종 제2청와대’ 설치안을 제시했다. 국회가 이미 ‘세종의사당’(국회분원) 건립을 위한 설계비를 2019년 본예산에 반영한 사실을 적시하기도 했다.

    하려면 못할 게 없는 대통령의 힘

    신행정수도 건설은 2002년 9월 30일,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었다. 자신의 표현처럼 노 후보는 이 공약으로 ‘재미를 본’ 덕분에 당선됐다. 그는 취임하기 바쁘게 수도이전 작업을 서둘렀다. 03년 10월 정부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제안했고 그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는 이 법안을 투표 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다음해 10월 21일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집요하게 사실상의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했다. 그 결과 ‘연기·공주 지역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 국회, 대법원과 일부 정부부처만 서울에 남고 나머지 대부분의 정부부처들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이전하게 됐다. 이 법에 의해 탄생한 것이 오늘날의 세종특별자치시이다.

    애초엔 표를 더 얻기 위해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했었겠지만 당선 후 노 전 대통령의 구상은 더 원대해졌다. 그는 04년 1월 29일 대전에서 열린 ‘지방화시대 선포식’에서 “천도(遷都)는 한 시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화, 남북평화 등은 전직 대통령이 다 해버려 그 정도론 역사책에 빛이 안 날 것 같아 지방화만큼은 내가 간판을 붙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대통령 당선이 ‘시민혁명’의 결과라는 인식을 피력하곤 했다. 왕조시대의 역성혁명에 버금가는 사건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그렇다면 ‘천도’는 당연한 순서였다.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념비 하나는 꼭 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지방화 간판 걸기’ 언급이 바로 그 욕구의 표현 아니었을까?

    천도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그렇지만 행정중심도시 건설은 그의 사후에도 착실히 진전되고 있다. 이 추세라면 언젠가는 세종시가 실질적인 수도 구실을 하게 된다. 좌파정권이 길어지면 개헌을 통한 천도가 다시 시도될지 모른다. 이미 국회분원 건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제2청와대 건설인들 왜 시도되지 않겠는가. 조승래 의원의 ‘세종시 집무실’ 언급은 씨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권 내에서 반향을 불러 올 테고 결국 정부‧여당이 정색을 하고 ‘논의’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장래의 수도 ‘세종시’는 어떤 의미에서는 ‘노무현 기념도시’일 수도 있다. 이것이 대통령직의 위력이다. 그가 굳이 하고자 하면 못할 것이 없다. 세종시가 그 산 증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엔 상상도 못했던, 이른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강행할 수 있는 배경 또한 다르지 않다. 그게 곧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가 보여주는 ‘대통령의 힘’이다.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고 관저까지 광화문 인근에 마련하겠다고 한 그의 공약 또한 대통령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산 선언된 광화문 대통령 시대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이던 지난 17년 4월 24일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했다. 그는 이날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역사문화벨트조성 공약기획위원회와 광화문 대통령 공약 기획위원회의 출범을 선언하면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안을 밝혔다. 그는 집무실 및 관저 이전과 관련 “불통의 시대를 끝내고 국민과 소통하고 함께하는 민주주의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라며 “참모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언제나 소통하는 동시에 상처받은 국민을 치유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때 역사문화벨트 위원회의 총괄위원장에 임명됐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이번엔 광화문 대통령 시대 위원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4일 이 사업이 무산됐음을 선언했다.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해명은 기실 당초에 예정된 것이었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안에 대통령의 집무실을 두고, 그 인근에 관저를 마련한다는 게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당시의 문 후보는 거창한 행사를 열면서까지 공약했다.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 정도는 그래도 국민이 이해해주기만 하면 그만일 일이다. ‘한반도 운전자’ ‘미북 중재자’ 역할에 대한 욕심은 자칫 온 국민을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너무 자신의 역사적 역할에 집착해서 김정은의 잔꾀에 넘어갈 소지가 없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다짐했다.

    “안보위기도 서둘러 해결하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그 공약을 실천하겠다며 말 그대로 ‘동분서주’한 건 사실이지만 과도하게 북한편향적인 족적을 남겨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정은의 비위를 맞춰주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하고, 머지않아 한반도에 평화구조가 구축될 것이라고 믿어서일까? 김정은이 변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그가 정말 김정은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면 이야말로 문제다.

    대통령은 국가안보 구조의 변경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취임 1년 8개월 동안 온 국민과 세계인들이 목격해 왔다. 그의 대북친화정책에는 거침이 없다. 만에 하나 그가 역사상 위대한 평화주의자로 기록되고 싶다는 욕구에 휘둘린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는 한미동맹의 균열을 불사하는 듯한 태도를 지속적으로 미국에 보여 왔다. 우리의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를 예사로 취하고 있다. 확고한 대안이 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다. 줄이고 허문다는 방침만 신문 지면을 매우고 있다.

    문 대통령의 기념비적 과업은?

    문 대통령은 자주 ‘촛불혁명’을 강조한다.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세계를 돌면서 ‘촛불혁명’을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 자신의 집권이 혁명의 결과임을 역설하기도 잊지 않는다. 그는 혁명정부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적폐청산과 남북화해’야말로 제1의 혁명과업이라고 여기는 인상이다. 시민혁명의 아들 노 전 대통령이 천도를 추진했던 것이라면 촛불혁명의 아들인 문 대통령은 자신의 기념비적 과업으로서 무엇을 추진하는 것일까? 그게 ‘연방제 통일의 기반 조성’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노 전 대통령 집권이 1년 10개월을 며칠 넘겼을 때 썼던 칼럼의 한 부분을 다시 읽는 기분이 묘하다.

    “‘개명(改名)은 혁명의 정률(定律)’이라고 크레인 브린튼은 지적한다(혁명의 해부, 차기벽 역). 그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 혁명력이다. 두 얼굴의 신 야누스를 상기시키는 1월(January), 압제자 줄리어스 시저의 이름을 딴 7월(July) 따위를, 고결한 혁명가들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것들을 추방해버리고 대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름들을 달았다. 제르미날(germinal, 초목이 싹트는 달), 프룩티도르(fructidor, 열매가 익는 달)라고 하는 식이었다.

    대혁명 후의 프랑스는 물론 혁명 러시아에서도, 독립 미국에서도 이름 바꾸기는 성행했다. 사람 이름도 바꾸고 도시의 이름도 바꾸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력이 단명했던 것처럼, 또 레닌그라드가 러시아 민주화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옛 지명을 되찾은 예가 보여주듯 이름 바꾸기 혹은 추방은 혁명의 역사성이나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수프는 만들 때 몹시 뜨겁지만 그렇게 뜨거운 채로 먹는 일은 없다’는 독일 속담을 인용해서 브린튼은 이렇게 말한다. ‘혁명의 위기 시대에는 수프를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억지로 마시게 하려 한다. 사람들은 오래 견딜 수가 없다. 요리인은 이를 깨닫고 수프를 약간 식히게 되지만, 그러나 그렇게 되는 것은 혁명의 열이 내려 회복기에 들어선 때이다.’

    현 정권은 곧 집권 3년째로 접어든다. 이제 초기의 열기는 걷어내는 게 좋지 않을까. 마음을 진정시켜야 민생이 보인다. 개혁이란 국민의 생활을 더 윤택하게 해주고 이 나라의 국민 된 자부심을 북돋는 방편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개혁 그 자체를 위한 개혁을 국민이 늘 바라지는 않을 것 같은데, 글쎄….”

    2004년 12월 28일자 칼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당시의 정치 분위기에 대해 쓴 글이다. 그의 길을 지금 문 대통령이 그대로 걷고 있다는 느낌을 털어내기 어렵다. 다만 문 대통령 쪽이 훨씬 과격하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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