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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김정은이 문 대통령 갖고 논 건 아니겠지요


입력 2018.12.31 09:00 수정 2018.12.30 21:44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꿈같던 구상이 이뤄졌다?

핵 대량생산체제 갖춘 북한…‘사람중심’의 사람은 누구인가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꿈같던 구상이 이뤄졌다?
핵 대량생산체제 갖춘 북한…‘사람중심’의 사람은 누구인가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지난 9월 20일 삼지연초대소에서 오찬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이 김정은에 악용 당한다? 테드 포 하원 외교위 테러‧비확산‧무역 소위원장은 최근 의회에 제출한 발언문에서 “미국과 유럽 동맹국 사이의 단합을 깨려는 문 대통령의 시도는 김정은이 순진해 빠진 문 대통령을 악용하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한 것으로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28일 전했다.

이런 포 의원의 언급을 문 대통령은 어떻게 들을까? 아주 모욕적으로 여길 법하다. 나이가 70에 가까운 사람, 더욱이 일국의 대통령을 보고 ‘순진해 빠진’이라고 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는가. 그러나 정작 문 대통령이 불쾌해 했을 표현은 ‘악용’일 것 같다. “어떻게 김정은을 그렇게 모를 수 있느냐. 이건 거의 모함 수준이다.” 이런 감정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꿈같던 구상이 이뤄졌다?

그는 지난 28일 국무회의 구성원들과 송년 만찬을 갖고 대북정책에 대해 자화자찬성 평가를 했다. “올해는 남북관계에 있어 대결의 역사에서 평화, 협력의 시대로 대전환하는 한 해였다. 평창올림픽, 3번의 남북회담, 북미회담, 남북철도 착공식, 화살머리고지까지 작년의 꿈같던 구상들이 실현됐다.”

이 말만 들으면 우리 국민, 남북 동포의 염원이 이뤄져 모두가 전쟁의 걱정이 없고, 오직 평화의 기운만이 넘실대는 통일전야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할 법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북한의 통치체제는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도 김정은이 건재한 동안엔 달라질 체제가 아니다. ‘공포의 동토’, 거기가 한반도의 반쪽, 2500만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북한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 참모들은 김정은의 이미지를 미화하는데 열정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 국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은 그의 이념적‧정치적 선대(先代)에 이어 북한의 변호인으로 동분서주했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고, 특히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밝히기 무섭게 문 대통령은 행동으로 화답했다. 정부는 미국을 설득해서 평창올림픽과 관련된 남‧북간 인적 물적 교류에 대해 ‘제재 예외’를 인정받았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전이 아니라 북한선수단, 문 대통령을 비롯한 남북당국자들의 잔치 한마당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그 이래 문 대통령의 김정은 편향 행보는 갈수록 도를 더해갔다. 김정은이 북한 핵 폐기 용의가 있는 것처럼 인식시켜 사상 첫 미‧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스스로 김정은과 세 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장 내일에라도 통일의 길을 열고 ‘한민족연방공화국’을 성립시킬 것처럼 서둘렀다. 물론 달라진 것은 없다. 그의 송년회 자평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무기 및 미사일 위협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는 여전하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잘못 알았거나 자신의 북한 친화적 마인드에 너무 매몰된 탓에 심리적 신기루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김정은은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조한 바로 그 신년사에서도 군사적 위협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에 우리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핵무력완성의 력사적대업을 성취한것입니다.” 분명한 어조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지난해에 우리는 각종 핵운반수단과 함께 초강력열핵무기시험도 단행함으로써 우리의 총적지향과 전략적목표를 성과적으로, 성공적으로 달성하였으며 우리 공화국은 마침내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억제력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그의 육성으로 들려온 신년사 내용이다.

핵 대량생산체제 갖춘 북한

이렇게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이 문 대통령을 언제 봤다고 핵 폐기 가능성을 언급했겠는가. 했다면 ‘조선반도 비핵화’였을 것이다. 그걸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핵 폐기 용의’로 재해석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게 아닐까? 트럼프는 자신의 무력시위와 경제제재가 마침내 김정은의 항복을 받아낼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 흔쾌히 미‧북 정상회담에 응했을 듯하다. 확인을 못했으니 개연성으로 하는 추측이다.

문 대통령은 ‘꿈같던 구상들’이 실현됐다고 감격스러운 듯 말했다. 그거야 개인적 감정 상태의 표현인 만큼 남이 이러쿵저러쿵 할 일은 아니겠다. 다만 그간에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구조 구축에 어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진전이었는지는 말해줘야 한다. 가만히 뜯어보면 모두가 문 대통령 자신이 급급히 추진하고 실행한 일이다. 물론 돈 드는 사업은 거의 전적으로 우리의 부담 몫이 된다. 문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것 같지는 않은데 특히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는 북한의 정찰‧경계비용을 엄청나게 경감시켜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구축해 놓은 체계의 상당부분을 무용화시키는 위험한 거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 또한 우리가 북한을 위해 일방적으로 과시한 선심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을 철석같이 믿고 싶겠지만 상대방은 자기 계산에 몰두하고 있는 독재자다. 미국 NBC 방송은 지난 27일 “위성사진 등에 따르면 북한은 계속 핵분열 물질을 생산하고 있고, 북한 전역에서 미사일 기지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리트워크 우드로윌슨센터 수석 부소장은 “북한은 2020년까지 약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으며, 이는 영국 보유분의 거의 절반 수준”이라고 추정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를 20~60기로 추정하는데, 2년 내 획기적인 핵 무력 증강이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조선닷컴이 전했다.

더 심각히 귀 기울여야 할 것은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크리스티나 배리얼 연구원의 언급이다. 조선닷컴이 전하기로 “북한 김정은은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지금은 북한이 연구와 개발에서 대량생산으로 옮아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게 김정은 식의 한국 및 미국을 다루는 방식이다. 새로운 전략전술이 아니다. 그의 선대들이 변함없이 써먹었던 수법과 전혀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만 몰랐던 것일까? 기실은 수많은 사람이 그 같은 북측의 계략을 거듭해서 지적하고 경계해 왔다. 당연히 문 대통령과 그의 대북참모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예견했을 일이다. 그렇다고 믿기가 고통스러웠던 게 아닐까? 김정은을 불신하면 자신들이 꿈꾸어 온 구상의 실현이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가능한쪽으로 믿으려 안간힘을 써 왔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사람중심’의 사람은 누구인가

이미 한국과 미국은 김정은에게 큰 선물을 안겼다. 핵무장 완성에 이어 대량생산 체제 단계에 이를 시간을 벌어준 셈 아닌가. 미국이 군사옵션을 택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김정은에 휘둘리며 지루한 줄다리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미국을 향해 핵군축협상을 하자고 덤빌 게 뻔하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와 세계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가 기정사실화되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왕 문 대통령의 자화자찬성 자평을 거론하던 중이니까 말인데 “사람중심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한 해였다”는 말도 듣기에 아주 거북하다. 경제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면 무엇일 수 있을까? 말을 너무 교묘하게 꾸며서 하면 신뢰성이 떨어진다.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 하지 않는가.

사람중심! 아주 서민의 감성에 착 감기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3조에 그대로 명시돼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 제8조에도 나온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제도는 근로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것이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람중심의 사회제도이다.(후략)”

북한의 일반 주민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다. 김일성 왕조 구성원과 그 주변세력만이 ‘사람’으로 분류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사람중심 사상은 김정은의 그것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의 용어를 빌려와서 국정의 지표처럼 사용한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데 저소득층 저임근로자 영세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처지는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보육비, 통신비, 의료비를 낮추었고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했다”고 문 대통령은 강조했지만, 이 말은 곧 앞으로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국민의 돈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보다 조심스러워야 하고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돈은 국민과 기업의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생색은 자신들이 내는 것은 염치없는 노릇 아닌가.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 “전망은 더 어둡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잘 돼 가고 있다고 우기면 어쩌자는 것인가. 문 대통령의 분류기준으로 ‘사람’축에 드는 국민만 형편이 나아지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이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귀를 막고 입만 열거나, 아예 다른 곳에 눈길을 주고 있으면 국민은 극심한 소외감에 빠지고 만다. 그게 깊어지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철회로 나타난다. 이미 그런 현상이 추세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문 대통령이 직면한 현실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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