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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녹여 ‘영원의 등대’를 만들자


입력 2018.12.24 10:12 수정 2018.12.24 10:15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성대의 행간이설> 한(恨)을 되새기는 추모탑이 아닌 영혼들이 노는 꿈의 동산을!

<신성대의 행간이설> 한(恨)을 되새기는 추모탑이 아닌 영혼들이 노는 꿈의 동산을!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선 '화이트 마린'호가 지난 2017년 3월 31일 목포 신항에 도착해 접안 하고 있다. ⓒ목포=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선 '화이트 마린'호가 지난 2017년 3월 31일 목포 신항에 도착해 접안 하고 있다. ⓒ목포=사진공동취재단.

살다보면 이런 저런 재난과 고통을 겪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그 중 자식을 잃은 고통은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는다. 하여 살아남은 자는 살아서 그 마음의 상처를 지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엔 대충 세 가지 갈래가 있는 것 같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세월에 씻겨 망각되는 것. 다음으로 행운이 따라붙어 그 고통을 상쇄시키는 것. 마지막으로 더없이 잔혹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엄청난 고난이나 재난이 무자비하게 덮어씌우는 것이다.

그 가족은 물론 이 시대의 한국인이라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은 <세월호>참사에 대한 트라우마도 결국 세파에 씻겨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다. 아픈 기억을 계속 되새김질하기에는 작금의 불안한 나라 사정과 개개인들의 삶이 녹록하지 않음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어쨌든 <세월호> 선체 뒤처리 문제를 차분하게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녹슬지 않는 세월은 없다

한(恨)의 민족이라 그런지 한국인은 마음의 상처가 생기면 달래고 덮기보다는 서로 후비고 할퀴어 더욱 깊게 만드는 성향이 강하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치인, 연예인, 심지어 예술인들까지 가세를 하여 삿대질‧주먹질에 앞장선다. 예술가라면 상처를 빨리 아물게 덮어주는 게 도리이건만 그들도 한(恨)DNA를 가진 지라 오히려 그 고통을 감정이입해서 상처를 심화‧확산시키는 일에 앞장 설 때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 나라에선 예술가와 기자의 역할이 뒤바뀌는 일이 흔하다. 지나치게 공감을 강요하다보니 때로는 그것을 조롱하는 혐오증을 보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인재든 자연재해든 아무리 안타까운 일도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것이 인지상정이겠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4년이 훌쩍 지났다. 실종된 학생들의 유해를 찾겠다고 수천억 원을 들여 선체를 인양, 수없이 뒤지고 뒤져 몇 점의 조각을 찾은 다음 아직도 진상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며 붙잡아 두는 바람에 흉측한 몰골로 부둣가에서 비바람에 녹슬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이 상태로 세워두고 속죄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이 마음의 빚을 지고 가야 하는지 기약도 없다. 이제는 어떻게든 마무리지을 때가 된 것 같지만 감히 누구 한 사람 그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것도 그렇고, 뒷감당에 절절 매는 것도 그렇고… 무능‧무책임에다 비겁하기가 잔인할 정도로 끝이 없다.

해외승선생활로 20대를 온전히 바다와 배에서 보낸 필자에겐 <천안함>과 <세월호> 참사에 대한 놀람과 공감의 고통은 보통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렴 그렇다한들 유가족들의 심정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끊임없이 바다 속을 허우적거리는 비몽사몽간에 문득문득 모골이 솟기도 한다. <세월호>를 언제까지 네 탓, 내 탓 하며 저대로 둘 것인지? 그 속을 뒤지고 뒤지면서 한이 다 풀릴 때까지 진상조사를 벌일 것인지? 아무리 그래본들 그 아픔이 지워질까? 철판이 녹슬어 다 사그라진다 한들 그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이대로 무작정 끌어안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이 난감함을 어찌해야 하는가?

이제는 <세월호> 선체를 고철로 처분하든지, 아니면 도로 바다로 싣고나가 수장시켜 물고기들의 놀이터로 만들든지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못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것밖에 없는가? 필자의 소견으론 팽목항 바닷가 언덕 위에 이 세상에 다시없는 예쁜 등대를 세워 놀랜 영혼들을 달래주었으면 싶다. 오고가는 뭇 고깃배나 화물선 불빛을 따라 이 바다 저 바다, 이 항구 저 항구로, 이국만리 뿔뿔이 흩어져 외롭게 떠돌고 있을 어린 영혼들을 불러 모을 그런 등대 말이다. 선체 일부를 녹여 만든 새 철판으로 등대를 만들고, 프로펠러와 기관실 기계들에서 황동만 따로 뽑아 녹여서 등을 만들었으면! 정화란 그런 것이겠다. 그리고 등대 주변을 작은 에버랜드로 꾸며 친구들이 가져온 온갖 꽃씨를 뿌리고 꽃나무를 심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등대 작품은 국제공모를 통해 선정했으면 좋겠다. 순수한 예술작품으로 당연히 그 등대와 공원엔 <세월호>의 아픈 흔적 따위는 일체 남기지 말았으면, 오로지 소년 소녀들의 희망과 꿈만 가득한 그런 곳이었으면 한다. 재난을 기록하고 회한과 참상을 명시적으로 새겨 넣어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 아닌 아이들의 꿈동산,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친구들이 웃으며 만나는 곳, 모두의 아픔과 상처를 덮어주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기억의 장(場)이 아닌 승화의 장이 되었으면!

그리하여 날마다 또래의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놀아주고, 밤이면 그 영혼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그런 등대였으면 좋겠다. 수평선만 비추는 등대가 아닌 하늘나라까지 비추는 등대! 먼 행성과도 교신하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그런 등대 말이다. 세금으로 만들지 말자! 등대가 거북하게 클 이유도 없겠다. 남은 선체를 고철로 팔고 모자라는 비용은 시민들의 성금으로 능히 충당할 수 있으리라. 아픈 만큼 성숙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의 빚’을 모아 등대에 불을 밝히리라! 경제적 피해에다 다른 누구보다도 마음고생 많이 하며 묵묵히 참아준 팽목항 근처의 주민들에게도 작으나마 보답이 될 것이다. 품격 있는 치유란 이런 게 아니겠는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되던 날 팽목항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1000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썼던 문재인 대통령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고마운 오직 한 사람. 무엇이 그리 미안하고 고마운지 그 속내를 누가 모르랴만, 제발이지 이런 일에까지 정치적 고려나 흔적을 남기지 말았으면 한다. 그랬다간 시민들의 반대에 죽도 밥도 안 될 것이다. 그러니 화이트든 블랙이든 한풀이 분풀이 푸닥거리에 이골난 국내 참여 작품은 배제했으면 좋겠다. 자신 없으면 다음 정권으로 넘길 일이다. 대신 <세월호>는 하루빨리 녹여주길 바란다. 지도자라면 진즉에 처리했어야 마땅한 일이다. 내친 김에 <천안함>도 녹여 불사의 전함으로 만들길 바란다.

다시 강조하건대, 위령탑이나 재난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자는 그런 상투적 발상은 말기를! 노란 리본 한 개도 내걸지 않기를! 정치인들의 입김 따위는 얼씬도 않기를! 제발 그 등대엔 <세월호>의 ‘세’자는 물론 희생자 이름 한 자도 새겨넣지 말기를! 등대명도 예쁜 이름으로 공모했으면! 그저 이 동네 저 동네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놀아주며 조잘조잘 깔깔 웃음꽃을 피우는 꽃동산! 산타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선물하고픈 장난감이나 인형처럼 예쁘기만 한 등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빛나는 등대!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가고 없을 일억 팔천만 년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으면서 칠흑의 밤이나 폭풍우 몰아치는 날이면 공포에 떠는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도란도란 ‘어린 왕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등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는 영원의 등대가 되어라!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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