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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오지 않는다


입력 2018.12.24 09:00 수정 2019.02.26 08:36        이상준 기자 (bm2112@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냄새만 풍기고 돈 내라는 북한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핵무장…지키지 못하면 빼앗기고 만다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냄새만 풍기고 돈 내라는 북한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핵무장…지키지 못하면 빼앗기고 만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서울 방문 결사반대 긴급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김정은 서울 방문 결사반대 긴급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김정은은 오지 않는다. 청와대는 지난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 발표 후 금방이라도 그가 서울에 올 것처럼 마음 바빠하는 분위기를 보였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연내 답방’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좀 늦어지긴 하겠지만 연내엔 반드시 온다며 국민의 기대감을 붙들어놓기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연내에 그가 오기는 틀렸다. 청와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릴 사람들이 아니다. 올해는 오지 않지만 내년에는 서둘러 올 것처럼 또 국민의 기대감을 충동질한다. 당장 남북 사이의 분단선을 허물어버릴 수 있을 듯이 들떴던 평양회담 직후에도 이뤄지지 않았던 답방이다.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내년에 오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냄새만 풍기고 돈 내라는 북한

한반도 안팎 정세가 그의 기대를 채워주는 쪽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김정은이 바라는 것은 ‘선 제재완화 후 비핵화 논의’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일련의 퍼포먼스에 응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완화되기를 기대했을 법하다. 자신들은 시늉만 하고 상대는 실천해야 한다고 을러댄다. 그 상투적 수법이 그간에는 통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더 이상 순진하지도 급하지도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학습효과다. 북한 측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느 욕심쟁이 부자가 고기 굽는 냄새를 따라 몰려든 이웃의 가난뱅이들에게 그 값을 치르라고 윽박질렀다. 그러자 누군가 나서서 그 부자의 귓전에 대고 동전 주머니를 흔들었다. 냄새를 맡은 값으로 돈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북한은 냄새 맡은 값을 요구하는 중이고, 이제 닳을 대로 닳은 미국은 달러 세는 소리만 들려주는 중이다. 새중간에 낀 한국정부는 아직도 중재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의도는 처음부터 뻔했다. 핵무장을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뜻을 한국 정부가 어떻게 전했는지 미국은 ‘핵 포기’로 들었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껏 여유를 보이며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모습으로 김정은을 만났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로써 미국의 대북제재가 당장에라도 풀릴 것처럼 대북 지원 대책을 쏟아냈다.

북한의 속내는 곧 드러났고 머쓱해진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의 실책을 만회할 방법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김정은의 변호인‧보증인 역을 자임하듯 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별로 신뢰하는 눈치가 아니다. 2차 미‧북정상회담을 할듯말듯하면서 직접 김정은 길들이기에 나설 기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이 쉽게 굴복할 리 없다. 이른바 ‘벼랑끝 전술’은 그쪽의 특기다. 더욱이 지금은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흰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는 것이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평을 냈다. 이 글은 미·북 비핵화 협상이 교착에 빠진 것을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그릇된 인식’ 탓으로 몰았다. 이런 주장도 눈에 띈다. “6·12 조·미 공동성명에는 분명 ‘조선반도 비핵화’라고 명시돼 있지 ‘북 비핵화’라는 문구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미국은 조선반도 비핵화를 ‘북 비핵화’로 어물쩍 간판을 바꿔놓음으로써 세인의 시각에 착각을 일으켰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주변으로부터의 모든 핵위협 요인을 제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되돌릴 수 없는 북한의 핵무장

애초에 ‘한반도 비핵화’운운할 때부터 북한의 잔꾀는 충분히 예상됐었다. 다만 한국 정부만이 그게 곧 ‘북한 비핵화’와 동의어인 것처럼 견강부회했을 뿐이다. 어쩌면 미국에 대해서도 그렇게 강조했을 것 같다. 한국에 있던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는 이미 1991년에 완전히 철수해 갔으니 ‘한반도 비핵화’란 곧 ‘북한 비핵화’가 아니겠느냐고 설득했을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훨씬 교활하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제공 정책 또한 비핵화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의도가 뻔하다. 핵보유국끼리 군축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애초에 북한만의 일방적 핵 폐기는 생각도 안했다는 투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시간을 벌어줬고, 북한의 핵보유야말로 불가역적인 현실로 등장했다.

북한의 이 같은 의도를 한국 정부는 몰랐을까?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비핵화 프로세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금년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원년이었다고 평가한다.”

“(올해) 우리 정부 외교안보 분야의 가장 큰 업적은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없앴다는 점이다.” “이제는 북한도 이 (비핵화) 과정을 되돌릴 수 없다고 저희는 보고 싶다.” 이런 말들도 했다. 미사여구가 가득한 언급들이었지만 북한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아전인수격 말의 성찬이다.

북한은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 프로세스에 들어서기 전에 미국이 ‘비핵화’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정 실장은 ‘비핵화’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정에 접어든 듯이 말했다. 비핵화가 불가역적 상황에 이른 만큼 미국은 대북제재 완화를 거부할 명분도 까닭도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는 “지난해 북한이 핵실험 포함해서 총 16회 전략적 도발을 감행했는데 올해는 16이 0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평화프로세스의 원년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북한이 올해 다시 핵실험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정말로 평화를 희구해서 핵실험을 포기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우려해서 ‘평화 팔이’에 나섰다면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게 저들의 생리다. 벌써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 제거’를 공공연히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지키지 못하면 빼앗기고 만다

대니스 와일더 전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조선중앙통신의 논평과 관련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에 거듭 전달했던 한국 정부는 북한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또 왜 이런 북한과 계속 (관계) 진전을 추진하는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에겐 정말 궁금한 바가 그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 참모들은 도대체 북한의 무엇을 믿고 미국과 북한간의 핵협상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는지, 북한의 어떤 점을 높이 사서 대북제재 완화를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다니는지 말해줘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북한의 의도를 모르고 오직 선의로만 그렇게 했는가? 알면서도 그랬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아니면 여전히 북한 김정은 집단을 믿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조선중앙통신이 그런 논평을 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금까지 국민 상당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대북 접근 및 친화 정책을 추진해온 주체가 문재인 정부이기 때문에 묻는 것이다. 북한 김정은 집단에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근본적 인식은 도대체 무엇인가.

김정은은 오지 않는다. 올해만 안 오는 게 아니라 내년에도 오지 않는다. 북한 비핵화를 의제에 올리지 않는다면 답방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답방이라면 우리가 추진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대대적 지원이 약속될 경우에도 답방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 단체들이 환영 시위를 벌이고 플레카드를 내걸었다고 해서 방문을 결심할 만큼 김정은과 북한 체제가 순진할 리도 없다. 그러므로 단언할 수 있다. 김정은은 오지 않는다.

정 실장은 이번 정부가 한반도의 전쟁 위협을 없앴다고 했는데 그 뜻이 애매모호하다. 북한의 공공연한 위협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주는 위협은 오히려 더 커졌다. 김정은은 핵무장 완성을 공언하고 있다. 이보다 더한 전쟁 위협이 달리 있겠는가.
휴전 이후 소강상태는 계속돼 왔다. 그 배경에는 막강한 한미동맹의 힘이 있었다. 지금의 정부는 ‘민족 자주, 민족 자결의 원칙’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이야말로 상상평화다. 현실은 가혹하다. 힘이 없으면 평화도 없다. 지켜내지 못하면 빼앗기고 만다. 이게 인간사회의 철칙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김정은은 오지 않는다. 올해도 안 오고 해가 바뀌어도 안 온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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