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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사태 기획논란 일파만파-상] 이현령비현령 회계원칙, 혼란 키웠다


입력 2018.12.06 06:00 수정 2018.12.06 06:10        부광우 기자

금융당국 분식회계 판단 두고 논란 계속…삼성 승계 표적 의혹

'기업자율 우선' IFRS 원칙 흔들…회계 처리 둘러싼 혼선 자초

금융당국 분식회계 판단 두고 논란 계속…삼성 승계 표적 의혹
'기업자율 우선' IFRS 원칙 흔들…회계 처리 둘러싼 혼선 자초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증권선물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금융위원회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증권선물위원회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금융위원회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를 둘러싼 분식회계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의 회계부정 여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 문제와 연결된 사회적 이슈라는 측면에 주목해 표적으로 삼으면서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국제회계기준(IFRS)의 기조마저 뒤엎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욱이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IFRS 도입을 강행한 당사자가 금융당국이라는 점에서 회계 원칙을 바닥부터 흔들고 있다는 비판과 동시에 이로 인해 다른 기업들까지 혼란을 겪게 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바이오의 회계부정 판단의 핵심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변경이 정당했는지 여부다.

당시 삼성바이오는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기준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 가치가 올라가면서 설립 파트너인 바이오젠이 추가적인 지분 확보 권리를 행사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2012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공동 설립한 미국 바이오젠은 향후 '50%-1주'까지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콜옵션을 받은 상태였다.

이렇게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하면서 관련 규정에 따라 이 회사의 지분 가치는 장부가액에서 시장가액으로 바뀌게 됐다. 이에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 가치가 크게 뛰면서 만년 적자였던 삼성바이오의 실적은 흑자로 전환됐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를 회계처리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변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원칙에 맞지 않게 관련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면서 고의로 회계기준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답 정해져 있었나…증선위 결정에 의구심 여전

이 같은 증선위의 결정에 일각에서는 그 배경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애초 시민단체에서 시작된 삼성바이오 사태의 불씨가 정치권에 이어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로까지 옮겨 붙으며 거대 쟁점으로 부각되자 이른바 표적 수사에 나섰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즉, 어차피 예고된 결과가 아니냐는 얘기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논란을 촉발시킨 곳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다. 참여연대는 삼성바이오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뒤 2016년 11월부터 줄곧 분식회계 의혹을 주장해 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에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참여연대는 같은 해 12월 금융감독원에 삼성바이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처리 문제에 대해 질의했고, 다음 달 금감원은 이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했다.

그런데 지난해 2월 참여연대가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함께 삼성바이오 특혜 상장에 대한 공동 기자 회견을 열고 특별감리를 요청하면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 4월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금융감독원장에 전격 임명되면서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사태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승계를 지원하는 수단으로 삼성바이오가 동원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금융당국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참여연대 등은 과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제일모직의 주식만 보유하고 있던 이 부회장이 합병 법인의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삼성바이오가 계획적으로 회계부정을 저지른 것이라고 역설했다.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띄우면 모회사인 제일모직의 가치도 올라간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서 삼성바이오 문제를 바라보는 금융당국의 시선도 크게 달라졌던 것 같다"며 "사실상 원하는 답을 정해두고 사안을 바라본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IFRS 도입 때부터 예견된 우려 현실로

이 같은 판단 배경에 대한 의심을 제외하고 봐도 증선위의 결정에 대한 비판은 상당하다. 회계업계에서는 금지된 사항만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무엇이든 허용하겠다는 IFRS의 기본 틀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판단을 내놓은 것이란 염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IFRS는 이른바 원칙중심 회계기준이다. 이름 그대로 기본 원칙만 두고, 기업은 이에 기초해 자신들의 경제적 실질을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회계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면 된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IFRS 하에서 회계 처리는 통상 재무제표 작성자의 판단이 존중된다. 삼성바이오가 과거의 회계 처리에 대해 IFRS의 기준에 따른 것이고, 주요 회계법인의 권고를 받아 처리한 사항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지금도 고수하며 법정 공방에 나선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사는 "IFRS를 들여 온 것은 금융당국이 회계 처리에 있어 기업과 회계법인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성격"이라며 "그런데 이번 삼성바이오에 대한 회계부정 판단은 스스로 이 같은 원칙을 깨고, 재무제표 작성자에 대한 의심을 기반으로 한 감독자의 마인드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이 같은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커지는 배경은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IFRS를 우리나라에 들여 온 당사자가 금융당국이라는데 있다. 원칙중심 회계기준을 따라야 한다며 이를 도입한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에 대해서는 남다른 잣대를 들이댄 모양새라는 비판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2011년 국내 기업회계기준으로 사용되던 한국 회계기준(K-GAAP)을 버리고 유럽연합에서 사용되고 있는 IFRS를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계기는 2002년에 터진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의 대규모 분식회계 파산 사건이었다. 엔론의 분식회계는 미국 회계기준(GAAP)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었는데, K-GAAP 역시 GAAP에 기반하고 있어 비슷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보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IFRS를 써야한다는 논리였다.

이번 삼성바이오 사태는 사실 이때부터 예견된 사고로도 볼 수 있다. IFRS가 도입되면 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사항이었다. IFRS가 기업에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는 원칙중심 회계기준인 만큼 금융당국이 회계기준 위반이라는 판정을 내놓을 경우 기업이 반발하는 소송이 크게 증가할 염려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의 삼성바이오에 대한 판단으로 이런 걱정이 현실화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책임을 이유로 안진회계법인에 내렸던 징계에 대해서도 최근 법원이 1심 재판을 통해 회계법인의 손을 들어주면서 금융당국의 공신력에 손상이 간 상황"이라며 "증선위가 계속해 IFRS에서 벗어난 판단을 내린다면 기업들이 너도나도 소송을 제기하고 보는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회계기준 변경이 기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IFRS는 도입 당시부터 수많은 논란거리를 낳았던 사안"이라며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이를 강행한 주체인 만큼 그에 걸 맞는 명확한 기조를 보여줘야 하는데 삼성바이오에 대해서는 IFRS의 성격과 어긋날 수 있는 판정을 내놓으면서 향후 다른 기업들도 회계 처리 시 혼선을 빚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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