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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청와대’부터 이뤄내시지요


입력 2018.12.03 09:00 수정 2018.12.03 08:36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대 국민 사과 생략해버린 청와대

실천 불가능한 공약은 위험하다…동음이의어에 현혹되지 말아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대 국민 사과 생략해버린 청와대
실천 불가능한 공약은 위험하다…동음이의어에 현혹되지 말아야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1일, G20 개최지인 아르헨티나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뉴질랜드로 떠나기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짐과 소회의 글을 올렸다.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라는 제목의 글에서 문 대통령은 이렇게 밝혔다.

“이제 G20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떠납니다. 국내에서 많은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

대 국민 사과 생략해버린 청와대

대통령이 자리를 비운 동안 청와대에선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전원 교체라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감반 소속 김 모 수사관의 일탈행위에서 튄 불꽃이 특감반원 전원에게로 옮겨 붙은 것이다. 김 수사관이 감찰을 받던 중에 자신을 포함한 특감반원들이 외부인사와 골프를 쳤다고 폭로했고 이 바람에 특감반원 전원이 원 소속기관으로 돌아가야 하게 됐다고 언론들이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0일 청와대 경호처 5급 공무원이 술집에서 시민을 폭행한 사태가 벌어졌고, 23일에는 김종천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을 한 사실이 드러났었다. 임 실장이 26일 이 메일을 통해 청와대 모든 직원에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국민께 폐가 되고 대통령께 누가 될 수 있다”며 자성을 촉구했으나 다시 특감반 수사관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청와대 비서실‧정부‧지방정부의 관련 인사들을 감찰하는 민정수석실 소속 기관이다. 소속 공무원은 말하자면 암행어사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떤 이가 자신의 지인이 관련된 사건에 관심을 보였는가 하면, 특감반원들이 업무시간에 단체로 골프를 쳤다는 의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생각만으로도 으스스해지는 권력기관원들의 중대한 일탈행위라고 하겠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도 유분수지!

세상의 모든 정의를 독점한 양, 서슬 퍼렇게 ‘적폐’를 단죄해 오던 현 정권의 심장부 청와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황당하다. 조 수석이 사태의 중대성을 깨달아 전원교체를 임 실장에게 건의했을 것이고, 임 실장 또한 즉각 이를 수용해 29일 이들을 모두 원 소속기관으로 돌려보냈다고 본다.

대응은 신속했다. 그러나 그 처사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임 실장은 대통령에게 보고해 허락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곧바로 처리했겠는데, 자기들끼리의 조치였을 뿐 국민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조 수석은 우선 국민에게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그런데 임 실장에게 교체 건의만 했다. 임 실장도 국민 패싱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와대가 알아서 처리하면 될 일인데 국민이 알아야 할 필요가 뭐 있느냐는 생각이었을까?

문 대통령은 밑도 끝도 없이 믿어달라는 말만 했다. 국민의 염원인 ‘정의로운 나라’를 반드시 이뤄낼 테니까 믿어달라는 뜻일까? 문 대통령 역시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정의는 대통령이 필요로 할 때만 구현할 가치라는 것인가.

인간의 삶은 설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목표를 세울 수 있을 뿐이다. 한 개인을 두고도 그런데 인간집단 인간사회에 대해서야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며 허황한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정의로운 나라’ 같은 언어가 그 예다. 인간의 생존 조건과 양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니라면 인간성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없는 탓 아니겠는가.

실천 불가능한 공약은 위험하다

신이 아닌 인간의 지혜로 개인의 삶, 사회의 존립 발전을 설계한다? 그렇게 하면 영구평화의 세상이 열린다? 이야말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런 무모한 구상을 잔인하게 실험한 인간군(人間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볼셰비키혁명으로 성립된 공산체제의 두목들과 그 추종세력들이었다. 어떻게 인간세상을 자신들의 설계도에 가둬넣겠다는 망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어이없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그렇게 강조했다. 국가 단위에서는 결코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호기롭게 말했다. 평등, 공정, 정의라는 용어들 모두가 대단히 다의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국민 수만큼의 평등 공정 정의가 있을 수 있다. 무슨 재주로 그걸 이뤄내겠다는 것일까?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인간은 통합될 수 있는 존재일 수가 없다. 정치적 수사(修辭)로 한 말이겠지만 이야말로 대표적인 허사(虛辭)다. 정부마다 ‘국민통합’을 강조하는데 매력적이긴 하나 실천 가능성은 전무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인간의 정신‧욕구‧행복 같은 것은 한데 묶어질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다. 그걸 왜 통합한다는 것인가.

민주주의의 바탕은 개인의 독립성이다. 개인의 발견이 곧 민주의식의 단초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의식과 의견을 통합하겠다는 것은 반민주적 사고방식이다. ‘차이를 존중’하는 데서 민주주의는 성립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을 공약했기 때문에 그 약속은 지켜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기어이 공약을 달성하겠다고 고집하는데서 정치권력의 비대화와 권력 남‧오용의 현상이 빚어지고 만다. 그건 필연적 결과다. 평등 공정 정의의 다의성을 부정하려면 자신이나 자기 동아리가 내린 정의(定義)로 획일화할 수밖에 없다. 그건 의식과 언어의 획일화나 마찬가지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강제력 동원과 지속적인 획일성 관리가 요구된다. 그러노라면 자연스레 전체주의체제에 가 닿는다.
‘정의’의 그늘이 어두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정치권력의 독선‧독단화 위험성 때문이다. 자신만의 정의를 국가 차원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순간 정치권력의 민주성은 포기되고 만다. 자신의 정의관에 위배되는 어떤 행동이나 의식도 악으로 규정해야 한다. 정치적 반대자들은 모두 ‘악의 무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구악일소’ ‘적폐청산’ 등의 구호와 정적 징벌의 욕구가 분출한다.

동음이의어에 현혹되지 말아야

그 극단의 경우가 북한 김정은 체제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군주는 절대 무류(無謬)한 존재다. 그 전제 위에서만 북한 사이비 신정체제는 성립‧존속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구사하는 용어는 아주 달착지근하고, 매력적이며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리의 그것과는 동음이의어일 뿐이다. 문제는 그걸 우리의 진보좌파 쪽에서 동의어라고 믿고 우기는 데 있다.

우리의 정권 담당자들까지도 즐겨 인용하는 북한식 표현이 기실은 김정은 전체주의체제를 정당화하고 뒷받침하는 북한판 신어(新語)이다. 용어의 뜻과 쓰임새가 체제에 맞춰져 있다. 그걸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그대로 옮겨와 구사한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또는 부지불식간에 그 뜻과 쓰임새까지 이곳에 이식시킨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문 대통령 및 그 참모들이 꿈꾸는 이상사회가 김정은의 그것과는 판이함을 못 믿을 까닭은 없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19일 북한의 평양 5‧1경기장에서 연설할 때 15만 청중에 포함되었던 5~6세 어린 집단체조 참가자들이 관절염 방광염 등에 시달리고 있는 그런 체제를 지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인간부재의 사회를 문 대통령도 증오할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은을 돕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하루빨리 통일을 이뤄 북한 동포들을 독재자의 수중에서 구해내겠다는 일념이라고 믿고 싶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선한 뜻을 신뢰한다고 해도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의 유난히 잦은 외유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김정은 변호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이는 위험천만의 곡예다. 국제사회가 결국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어버릴 경우 어떤 상황이 북한, 나아가 한반도에서 전개될지는 명약관화하다. 독재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고 폭정은 저들 차지가 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우리 정부는 용어의 벽에 갇힌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주 감성적인 자신들의 용어가 북한 정권 측이 구사하는 것들과 같다는 사실에서 남북화해 평화정착 민족통일의 미풍을 느끼고 있는 동안 북한은 신어의 의미와 용례대로 한국 정부가 실천해주길 강요할 게 뻔하다.

그래서 말인데 북한과 상대할 때 관념적 용어, 추상적 표현 같은 것은 가능한 한 멀리해야 한다. 이곳에서 우리 국민을 상대로 설득의 효과를 낸 언어였다고 해서 북한에도 같은 기대를 하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분단 73년은 북한의 체제와 제도와 주민생활의 양태‧내용을 우리와 천양지차로 벌여놓기에 부족하지 않은 세월이었다. 모습이 닮았고, 마음이 통하는데다 용어까지 동일하다고 해서 그 차이를 잊어버리면 남북관계는 대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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