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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정상’을 연상시키는 문재인정부의 ‘정의’


입력 2018.12.03 08:25 수정 2018.12.03 08:23        데스크 (desk@dailian.co.kr)

<김우석의 이인삼각> 박대통령 ‘비정상의 정상화’…일반인 ‘정상’과 거리

문대통령 ‘정의’를 정권이 독점하려 하니 문제가 생겨

<김우석의 이인삼각> 박대통령 ‘비정상의 정상화’…일반인 ‘정상’과 거리
문대통령 ‘정의’를 정권이 독점하려 하니 문제가 생겨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주말 공식 페이스북에 "믿어주길 바란다.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 꼭 이뤄내겠다"는 글을 게재했다. 최근 불거진 청와대 인사들의 잇단 비리를 겨냥한 발언이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글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문 대통령을 ‘수도사가 됐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착하지만 현실정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리라. 그의 발언들은 대부분 옳은 말이지만, 현실과 상당한 괴리를 이룬다. ‘현실과 괴리’는 ‘무능’으로 나타나다. 정치지도자의 무능함이 사악함 보다 더 국민을 괴롭히는 경우는 많다. 게다가 그것이 보이지 않는 이념과 가치 때문일 때 더욱 그렇다. 그런 지도자를 이용해 ‘사익(私益)’을 취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숭고한 가치’를 추구했으나 엄청난 피해와 해악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무너져 버린 사례는 희귀하지 않다. ‘십자군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성전(聖戰)’이라고 했으나 전장은 복마전이 됐다. 죄없는 아이들을 숭고한 말로 꼬여 노예로 팔아먹는 기회로 삼기까지 했다. 이 ‘성전’은 현대까지 해악을 끼쳐, 세계를 떨게 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의 원인이 됐다. 결국 역사는 십자군전쟁을 ‘성전’이라기 보다 오만과 탐욕으로 점철된 ‘자기파괴적 전쟁’이라고 평가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정의’, ‘공정’, ‘평등’ 같은 숭고한 가치의 말들을 많이 쓴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좋은 얘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 가치를 실현시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위치에 있다. 그 책무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통합된 지지가 필수다. 그러나, 그는 ‘국민통합’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지당하신 말’에 열광했던 국민들도 있었지만,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많았다. 사회는 수많은 날줄과 씨줄로 연결된 거대한 직조물과 같다. 그런데 일부의 실에 하자가 있다고, 수십년 동안 전 국민의 노고로 완성시킨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품질의) 직조물 전체를 끊어내면 그 국가는 존립할 수 있겠는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려를 표하는 사람은 늘어났고 분노하는 목소리를 커지고 있다. 처음에 문재인정부가 제시한 가치에 열광했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자기 몫의 직조물이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상황을 목도했고, 어떤 이는 자신이 ‘하자가 있는 날줄 씨줄(적폐)’이 되가는 상황을 발견했다.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 당연한 귀결이다.

문 대통령은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믿어달라고 읍소했다. ‘믿어달라’는 말에는 ‘물태우’란 애칭(?)을 받은 노태우 전대통령이 생각난다. “나 이사람 보통사람 믿어주세요”. 그러나 그는 국민의 믿음을 저버려 심판받았고,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또 그가 말한 ‘정의’는 박근혜 전대통령의 ‘정상’을 떠올리게 한다. 박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믿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행태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 진행되는 재판의 결과와 별개로 실패한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스스로는 ‘사적으로 한 푼도 받지 않았다’며 법적 책임을 부인하지만, 탄핵 후 수년동안 이어지고 있는 국가적 혼란은 그의 실정 때문임을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실지로 그의 통치술은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 칩거와 소통단절이 대표적이다. 비서실장도 얼굴보기 힘든 상황이었고, 극소수 비서를 통해서만 서류로 보고받고 지시를 하달했다. 구중궁궐(九重宮闕)에서 항상 있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친 측면이 크다.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만들어 국민통합을 강조했지만, 스스로는 ‘통합의 길’로 가지 못했다. 정치권 전체와의 불화는 고사하고, 개인적 아집을 현실정치에 구현하기 위해 집권여당과 반목했다. 그 결과 질 수 없는 선거에 패했다. 국회권력을 그렇게 허무하게 빼앗기지 않았다면 탄핵까지 가지 않았을지 모른다. 행정수반으로 국가운영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건’의 처리는 너무 한심했다. 그의 첫 조치가 ‘해경 해체’였다. 일단 시원했지만, 임시방편 대책을 위해 국가기간조직을 없앤 것이다. 세월호희생자 유족이 탄핵집회의 선두에 섰고, 국가조직은 방조했다.

박근혜정부의 비정상을 ‘이게 나라냐’ 공격하며 들어선 문재인정부는 이제 ‘정상사회’을 넘어 ‘정의로운 국가’를 약속한다. 정상보다 더 모호하고 거대한 담론이다. 현실적용이 더욱 힘들어졌고 괴리가 심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약속을 지키기 더 어려워진 것이다.

국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히트를 기록한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을 문대통령도 읽었을 것이다. 책에서는 딜레마 상황을 예시로 들며 ‘정의’란 얼마나 복잡하고 결론을 내기 힘든 개념인지 설명하고 있다.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세계적 석학들도 “‘정의’를 정의하는 것”이 그렇듯 힘든 것이다. 노자가 ‘도(道)를 말하는 순간 도가 아니다’고 했듯, ‘정의’를 정권이 주장하는 순간 ‘정의’가 아닐 수 있다. ‘정의’는 독점될 수 없는 근본적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정의’를 정권이 독점하려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박근혜정부에 ‘이게 (정상적인) 나라냐’ 따졌듯이, 사람들은 현 정부의 모든 정책에 ‘그게 정의냐’며 따질 것이다. 지금의 국민에게 ‘나의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공정’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사회다. 모든 정책에는 필연적으로 불이익을 보는 국민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위기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위기에서 누군가는 양보해 다른 사람을 먼저 위를 올려주고 위에 오른 사람이 남겨진 사람을 끌어 올려주는 사회가 정의로운 정상사회다. 비정상사회의 ‘불신’은 위기상황에서 공멸(共滅)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국민의 불신을 키우고 욕구발산을 조장하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정권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지금 손해를 참지 못하고 ‘정의’와 ‘공정’만을 주장하면 사회는 ‘아노미(anomie) 상태’가 된다.

문재인대통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북핵협상’과 ‘저조한 경제성적표’를 원인으로 든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정권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과연 이런 위기상황에서 현 정부가 제시하는 해법을 믿을 수 있는가? 그 정부가 믿음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잘 돌아가고 있는가? 그 정부를 움직이는 작동원리와 이념이 정당한가?

이제 문재인정부는 ‘믿어달라고’만 하기보다, 믿음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잘못된 지향이 있었다면 고백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잘못된 가치가 정책의 전제됐다면 실용적인 측면에서 수정해야 한다. 대통령의 구체적인 조치는 ‘인사(人事)’다. 믿음을 얻으려면 귀국 후 믿음을 줄 수 있는 인사조치가 있어야 한다. 청와대인사는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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