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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병사의 결연한 눈빛과 예비역 장교의 눈물


입력 2018.11.27 06:00 수정 2018.11.26 17:37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종근의 명명백백> 군은 흔들림 없이 전선을 지키는데

정치가 흔들어놓는다면 언제까지 갈까

<이종근의 명명백백> 군은 흔들림 없이 전선을 지키는데
정치가 흔들어놓는다면 언제까지 갈까

남북이 9.19 군사합의 등에 따라 내년 4월 본격 공동유해 발굴에 들어가기 앞서 강원도 철원 부근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 전술도로 개설 작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22일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부대 지휘관들과 함께 군사 분계선(MDL)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 9.19 군사합의 등에 따라 내년 4월 본격 공동유해 발굴에 들어가기 앞서 강원도 철원 부근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에 전술도로 개설 작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22일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부대 지휘관들과 함께 군사 분계선(MDL)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며칠전 동부전선에 다녀왔다. 동부전선 중에서도 병사들이 가장 힘들어한다는 최전방 XX사단.

군 발전을 위한 모위원회의 위원 자격으로 현재 전방부대의 군사업무 수행 상황을 알아보러 간 자리였다.

군에서 이동수단에 대해 특별히 배려했음에도 GP까지 가는데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출발할 때의 서울 기온은 포근했지만 백두대간의 민통선 안쪽은 체감온도가 영하였다. 북측의 초소에 나부끼는 붉은 깃발이 육안으로 보이는 남북 대치 현장에서 묵묵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군 간부들과 병사들을 만났다.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남북 군사합의서 내용대로라면 최전방 작전 수행에 구멍이 뚫리는게 아닌지 GP 폭파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은 아닌지 평화무드 속에서 주적 개념조차 없어지는 마당에 일선부대의 군기가 해이해지는 것은 아닌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달라진’ 판결을 최전방에서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는 병사들이 억울하게 느끼진 않는지…

최첨단 관측 시스템으로 몰라보게 달라진 최전방 초소의 생활관. 그곳에서 병사들을 만났다. 활기찬 모습과 밝은 표정에 뭉클했다. 그래도 일부러들 그러나 싶어 한 병사에게 살짝 다가가 말을 건넸다. 우문을 던졌으나 돌아온 대답은 “제가 근무하는 이 곳을 사수하고 나가는 것이 저의 군생활의 시작과 끝입니다.” 간결하지만 명확했다.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이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남북군사합의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객석엔 400여명의 옛 장성들이 자리를 메웠고 로비에도 홀에도 기념관 밖에도 많은 사람들로 촘촘이 빼곡했다. 이 자리에서 토론자들은 “우리는 지금 ‘국가안보 참사’라는 국가적인 대재앙을 맞고 있다”면서 “현 정부의 안보 정책과 대북 정책은 지난 70여년간 피땀 흘려 구축해 놓은 우리의 안보 역량을 급속도로 붕괴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를 객석에서 지켜보고 나오는 상황에서 만난 김모 예비역 대령은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제대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념적으로 보수도 진보도 아닌 평범한 시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런 내가 여기 참석한 이유는 단 하나 우리 가족이 살아야할 이 땅의 앞날이 불안해서”라고 말했다.

행사장 앞에 ‘9.19 군사합의는 새 평화시대를 여는 가교’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좌파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소속 시위대를 보면서 “부친이 월남한 이북 사람인데 내가 왜 통일을 바라지 않겠느냐. 그런데 나라가 위태로운걸 걱정하는 것을 두고 반통일세력이라 몰아붙이니 너무 화가 난다”고 말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실질적인 종전선언이라는 군사합의서는 그 어떤 협정보다 더 면밀히 검토하고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금줄이라도 두른 듯 일사천리로 몰아붙였다. 군사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신뢰구축 없는 위장 평화협정 체결로 인해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을 예로 들며 철저한 검증과 대비가 필요하다고 외쳐도 ‘대답없는 메아리’다.

이런 분위기에서 찾아간 동부전선. 일행을 맞은 군간부들은 쏟아지는 질문에 자신들이 응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가장 최선의 답을 찾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군사합의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 실제 그 사단이 소속된 군단이 맡고 있는 관할 지역 내에서 작전수행의 축소는 어디까지인지 MDL 1km 이내 GP 철수 합의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유리하고 불리한지 답변에 나선 군 고위간부는 주저함 없이 소신있게 브리핑했다.

워딩 그대로 살려서 지면에 올리지 못하지만 답변의 핵심 중 하나는 군사합의서 중 DMZ 내 GP 철수 항목과 관련해 북한군이 불리한 부분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전협정을 상대적으로 철저하게 준수하는 우리 군과 달리 북측은 DMZ 안으로 밀고 들어온 부대들이 이번 군사협정으로 철수해야한다는 것. 물론 그것을 얼마만큼 지키느냐도 철저하게 검증해야겠지만 육안이 아닌 관측 카메라로 북측의 동태를 24시간 감시하는 시스템을 우리측 GP에서 직접 시찰해보니 그 답변의 의미를 되새김질할 수 있었다.

군 간부부터 GP 생활관에서 만난 병사들까지 동부전선을 지키는 그들은 다행히 흔들림 없어 보였다. 상급자들은 확고한 국가관과 사명감을 갖고 있었으며 일반 병들은 그들이 있는 곳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그래서 각자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깊이 숙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군의 정치 개입에 대한 과거의 예를 ‘적폐’삼아 정치의 군 개입이 도를 넘고 있다.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정치가 군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침을 하달하면서 정치논리로 휘두르게 되면 결과는 유사시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군대로 전락하게 된다.

문민통제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빈번하게 군사안보를 해친다. 민간집단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군사력의 감축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군사력을 감소시킴으로써 전쟁의 위협을 최소화하고자 시도한 민간집단은 그들이 회피하고자하는 바로 그것 즉 전쟁을 유도하게 됨을 세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군사력의 가치는 실제로 군사적 행동을 하는데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를 회피하고자하는데서 발휘된다.”

헌팅턴의 경고와 셸링의 정의를 깊이 새기지 않는다면, 예비역 장교의 눈에 맺힌 눈물의 의미를 외면한다면, 최전방을 지키는 병사의 결연한 눈빛을 계속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글/이종근 언론인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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