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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 되겠다는 결심 섰나요?


입력 2018.11.26 09:00 수정 2018.11.26 10:28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지지율 20%라고 무시합니까”

‘좌파연합정권’은 아니겠지만…‘국민의 대통령’ 인식 확고해야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지지율 20%라고 무시합니까”
‘좌파연합정권’은 아니겠지만…‘국민의 대통령’ 인식 확고해야


ⓒ데일리안 DB ⓒ데일리안 DB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도를 배경으로 호기롭게 독선‧독단적 리더십을 과시해 왔던 그로서는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될 법하다. 그래서 그런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주재하는 등 이른바 협치에 더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취임 직후부터 정치적 위기를 겪어야 했다. 취임 3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 “이러다가는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과 위기감이 든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이듬해 그는 국회의 탄핵소추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지만 오히려 그 반사이익으로 집권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의 위기는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했으나 이게 오히려 ‘나약함의 고백’이 되고 말았다.

“지지율 20%라고 무시합니까”

이후 대통령직의 위기는 상시화했다. 연정문제로 인한 여당의 불만과 불신이 정권기반 약화의 요인 가운데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2006년 8월 6일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문재인 전 민정수석비서관의 법무장관 기용을 거부하는 당내 기류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내가 20% 지지받는 대통령이라고 무시합니까? 나도 (언젠가는) 뜹니다.” 한 참석자가 다음날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흘렸다. “대통령 한 번 해보려고 대통령을 때려서 잘 된 사람은 하나도 못 봤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가 겨냥한 사람은 김근태 당시 당 의장이었다. “나에게 계급장 떼고 맞붙자고 했지요?” 그는 그렇게 쏘아붙였다. 낮은 여론 지지율이 그의 평정심을 무너뜨렸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인기라는 것은 연과 같은 것이다. 바람을 타고 기세 좋게 하늘로 치솟지만 언젠가는 낡아 해지고 끈까지 떨어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가게 마련이다. 노 대통령이 ‘다시 뜰’ 것에 마음 쓰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런 마음을 털어내면 투쟁할 일인들 남을 리 없다. 물론 멋있는 전직 대통령으로 뜨기를 욕심내는 것은 별개다.”(2006. 8. 9. 이진곤 칼럼 ‘다시 뜨기를 바라진 말고’)

문 대통령이 혹 여론 지지율 하락에 초조함을 갖게 되었을까봐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평정심이 그것 때문에 흔들리면 국정운영에 무리를 범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로부터 악순환은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은 그들(대통령들)이 신의 섭리로 탄생한 인물처럼 추앙받다가도, 내일은 마치 무너져버린 신상들처럼 저주를 받는다.”

후안 린츠 등이 『내각제와 대통령제』에서 인용한 기예르모 오도넬의 말이다. 후안린츠와 아르투로 바렌주엘라가 함께 쓴 이 책은 대통령제의 취약점과 불합리성을 설득력 있게 비판한다.
“대통령 선거가 갖는 국민신임투표(plebiscitary)적 성격, 양극화와 그에 따른 감정의 고조, 정당차원을 벗어나 유권자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 그리고 실현불가능한 공약제시 등에 의해 신임 대통령은 선거 직후 대단히 높은 지지율을 얻는 경우가 흔히 있다. 심지어는 70내지 80%의 유권자 지지도를 기록하기도 한다.

‘좌파연합정권’은 아니겠지만

(중략) 대통령제에서는 설사 여당이 일정한 지지율을 유지한다고 해도 대통령의 개인적 인기가 추락하는 것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며, 따라서―정당의 완충작용이 결여된―대통령의 지지도는 패배직전의 내각제 총리들에 대한 지지 수준보다 더 낮게 떨어진다. 대통령의 인기도는 이렇게 진폭이 크다.”

한국의 대통령제를 그대로 묘사해놓은 느낌을 이 대목에서 받는다. 그렇다고 대통령제보다 의원내각제가 더 낫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특히 귀 기울여 들어야할 충고임에는 틀림없다. 1948년 이래 9개월 정도의 내각제 기간을 제외한 그 오래 동안 대통령제를 했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제자리걸음만 할 수 있었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대통령의 국정실패가 정부뿐만 아니라 집권당까지 몰락시키는 상황을 우리 모두가 목격하고 경험했다. 현직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고 형사소추를 당해 1, 2심에서 사실상의 종신형을 선고받는 일 자체는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유사한 사태는 건국 이래 지금까지 거듭됐었다. 문 대통령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촛불집회를 ‘혁명’으로 미화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제도보다는 힘에 이끌린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한국 대통령제의 취약성은 대통령 한 사람의 리더십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참모들의 정치의식이나 행태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기도 한다. 예컨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물론 일부의 경우였지만) 말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두 마디 세 마디 거든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말을 하고 싶어들 했다. 참모들이 한술 더 뜨며 가세한 것이 참여정부의 상시적 불안정을 초래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기억된다.

이에 반해 박근혜 대통령과 참모들은 말에 너무 인색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심리상태까지 국민에게 알리고자 애썼지만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이 알고자 하는 일에 대한 설명조차 꺼렸다. 그리고 참모들도 무슨 비밀결사의 요원들인 양 침묵으로 일관했다. ‘문고리 인방’이니 ‘십상시’니 하는 아주 모욕적인 별칭이 그래서 생겼겠지만 그에 대한 해명이나 답변에서도 화법은 언제나 ‘건조체’였다.

위험도로 보면 박 전 대통령 청와대가 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치를 경박하게 만든 쪽은 노 전 대통령 청와대다. 참모들이 너무 많은 말을 너무 거창하게 하면 누가 대통령인지 누가 참모인지 구분이 모호해지고 만다. 노 전 대통령의 수더분한 성격과 스타일이 ‘대통령과 맞담배질하는 청와대 참모’들을 만들어 낸 것은 또 그렇다하고 대통령직의 권위까지 허물 정도에는 이르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문 대통령 정부는 어떨까? 청와대 참모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리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소수의 참모들이 정치적 권위를 대통령과 나눠 갖고 있는 듯한 분위기는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청와대보다 더해 보인다. 문 대통령의 위상이 노 전 대통령에 비해 처진 것 같은 대신 일부 참모들의 위상은 훨씬 높아진 느낌을 풍긴다. 문 대통령의 ‘A4용지’가 주는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대통령이 홀로 우뚝한 구조는 아닌 것 같다. 규정할 수는 없지만 ‘좌파 연합정권’의 이미지가 없지 않다.

‘국민의 대통령’ 인식 확고해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만의 정부도, 참여연대만의 정부도, 또한 민변만의 정부도 아니다”라는 글을 올렸다는 뉴스를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쓰는 칼럼이다. 적어도 조 수석의 인식으로는 ‘좌파연대정부’도 ‘좌파연합정부’도 아닌 모양인데 민노총 등의 ‘청구서’ 내미는 품은 드세기만 하다. 왜 배당을 제대로 하지 않느냐는 항의일 터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의 국민’이란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고 썼던 기억이 있다. ‘국민의 대통령’이지 ‘대통령의 국민’일 수는 없다는 뜻에서였다. 기본 인식에서부터 문제점을 노정했지만 지금 그걸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철저히 ‘내편’ ‘우리 편’만을 챙겼다. 심지어 북한 김정은과 과하게 포옹하면서도 국내의 정적들과는 결코 화해하지 못하겠다는 결기를 내비칠 정도였다.

그러다가 ‘우리 편’의 공격에 직면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봉건왕조의 제후나 영주들은 승전 혹은 개국의 공로로 엄청난 봉토를 하사‧배당받아 자기만의 왕국을 세웠다. 연합정권이라면 참여자들은 그에 버금갈 몫을 기대했을 게 뻔하다. 그런데 정권 성립 1년 반이 지나도록 화끈한 갚음이 없었다. 그래서 들고 일어난 게 아닐까?

그들만의 국가, 그들만의 정부이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NO’라고 하기는 어렵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하기 싫어할 게 뻔하다. 그래서 조 수석이 이른바 ‘총대’를 맨 게 아닌가 여겨진다.

노 전 대통 집권기보다는 좀 늦춰졌지만 노동계를 필두로 수많은 사회단체들에다 종교단체들까지 청구서를 흔들며 광화문에 모여들 개연성이 높다. 조 수석이 ‘NO라고 할 수 있는 청와대’의 ‘용기’를 슬쩍 비쳤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러다보면 노 전 대통령의 토로를 문 대통령이 따라 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마는 게 아닐까?

그걸 피하는 길이 있다. 정권은 누구의 신세나 빚 위에 세워지는 게 아니다. 국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로서의 선택 결과로 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청구서에 응해야 할 까닭이 없다. 오직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증진을 위해 헌신하는 것만이 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사명이고 의무다. 모든 국민을 내편으로 할 때 특정세력이 과도한 몫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주장하고 요구하지는 못한다.

거창한 과업을 이루는 대통령이기를 요구할 생각은 없다. 상식에 충실한 선량한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기를 소망한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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