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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에 군침 흘리는 엘리엇…집중투표제 도입으로 무장해제?


입력 2018.11.14 11:09 수정 2018.11.14 15:12        박영국 기자

엘리엇 요구사항, '칼 아이칸 KT&G 먹튀'사례와 유사

상법개정안 밀어붙이는 정부…국내 기업 방어수단 사라져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전경.ⓒ현대자동차그룹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전경.ⓒ현대자동차그룹

엘리엇 요구사항, '칼 아이칸 KT&G 먹튀'사례와 유사
상법개정안 밀어붙이는 정부…국내 기업 방어수단 사라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초과자본금의 주주환원과 계열사별 사외이사 추가 선임, 비핵심 자산 처분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기업 경영권 방어에 치명적인 상법개정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튀’ 공세가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엘리엇이 지난 13일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이사회에 서신을 통해 요구한 내용은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기업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단기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압력을 넣은 뒤 막대한 이익을 빼먹고 철수하는 ‘먹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비슷한 케이스가 미국계 헤지펀드 칼 아이칸이 KT&G의 지분을 매입하고 되파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둔 일이다. 칼 아이칸은 지난 2006년 KT&G 주식 5.69%를 매입한 뒤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진출시켰고, 경영진에 보유 부동산 매각을 통해 배당을 확대하라고 요구했다.

KT&G는 당시 부동산 매각은 하지 않았지만 2조8000억원을 배당금으로 써야 했다. 칼 아이칸은 1500억원의 차익을 거두고 그해 12월 KT&G 지분을 매각했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들에 요구한 ‘사외이사 추가 선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해 엘리엇 및 다른 주주들과 협업’, ‘모든 비핵심 자산에 대한 전략적 검토’, ‘초과자본금 환원’ 등은 과거 칼 아이칸이 KT&G에 요구했던 것들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당시 KT&G가 칼 이이칸의 공격에 취약했던 배경으로는 KT&G 정관에 포함된 ‘집중투표제’가 지목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테면 주총에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할 때 후보자가 4명 나왔다면 주주들은 4명의 후보자들 중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자에게 4표를 몰아줄 수 있게 된다.

이는 명목상으로 소액주주 보호를 목적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 소액주주보다는 2~3대 주주, 투기펀드 등이 대주주의 경영권을 공격하는 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기 위해 표를 규합하는 게 어려운 반면, 일정 지분을 확보한 외국계 헤지펀드들은 표를 몰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데 충실한 인물을 경영진에 투입시킬 수 있게 된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단기적으로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정책 결정에 압력을 넣은 뒤 막대한 이익을 빼먹고 지분을 매각하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제도다.

그 전형적인 예가 칼 아이칸-KT&G의 사례였고, 엘리엇도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에 대해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다.

현 시점에서는 그나마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아낼 수단이 있다. 현행 법안은 주주제안으로 집중투표를 청구하더라도 정관으로 집중투표 배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방어 수단을 제거하고 무장해제하는 법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6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노르웨이 국부펀드 관계자들간 진행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간담회’ 당시 제시된 의견을 바탕으로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한 국회 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박 장관은 9일 열린 ‘공정경제전략회의’에서도 상법개정안 통과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상법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주주제안으로 집중투표를 청구할 경우 기업이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헤지펀드의 공세 방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대한 공세를 예고한 상태에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될 경우 방어수단을 빼앗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배당 확대는 다른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지만, 투자와 배당의 적절한 배분 없이 배당에 집중할 경우 기업의 중장기적인 성장 전략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면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이 단기수익을 노린 외국계 헤지펀드의 공격에 노출될 경우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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