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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 벌린다더니" 재계 압박하는 국회…'1조 농어촌기금' 사실상 강제모금


입력 2018.11.14 06:00 수정 2018.11.14 06:06        박영국·이홍석 기자

"대기업 서열별로 기금 갹출하던 과거 구태 반복"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납부로 고초 겪었는데 또..."

주요 대기업 사옥 전경. 왼쪽부터 삼성서초사옥, 현대차그룹 양재사옥, LG트윈타워, SK서린빌딩ⓒ각사 주요 대기업 사옥 전경. 왼쪽부터 삼성서초사옥, 현대차그룹 양재사옥, LG트윈타워, SK서린빌딩ⓒ각사

"대기업 서열별로 기금 갹출하던 과거 구태 반복"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납부로 고초 겪었는데 또..."


국회와 정부가 농어촌상생협력기금 관련 논의를 위해 대기업 사장단을 국회로 불러들여 원성을 사고 있다. 말이 좋아 논의지 사실상 강제모금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기업에 손 안 벌리겠다던 현 정부가 결국 정부 생색내기용 사업 비용 부담을 기업에 지우던 과거의 구태를 반복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15일 국회에서 국회 및 정부 인사들과 주요 대기업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농어촌상생협력기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이 자리에는 황주홍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을 비롯,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등 정부 관계부처 수장들도 자리한다. 대기업에서는 삼성·현대자동차·SK·LG그룹 등 15개사 사장급 인사들이 참석을 요구받았다.

재계는 사실상 대기업 사장들을 불러 기업 서열별로 일정 금액을 내놓도록 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를 전면에 내세우기는 했지만 이 자리에 관계부처 장관들이 줄줄이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대기업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라는 해석이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행사 일정이 통보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업인들을 참석하라는 이유가 기금 조성에 협조하라는 뜻으로 참여 독려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강제성이 있을수 밖에 없지 않겠나”며 우려를 표시했다.

정부 주도 사업에 기업들이 일정 금액 분담을 요구받는 것은 과거 정권에서도 늘 있는 일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주도해 만든 청년희망펀드의 경우 삼성이 250억원 출연을 발표하면 현대자동차그룹이 200억원을 내놓고 SK와 LG가 100억원씩 내놓는 식이었다.

재계 서열이 현재 지금과 같이 정리된 이후 서열별 분담 비율은 거의 엇비슷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 사례로 꼽히는 미르·K스포츠재단 납부액도 비슷한 비율을 따랐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하다못해 연말 불우이웃돕기나 재해구호성금 같은 경우도 기업 규모별로 일종의 분담 비율이 불문율로 존재한다”면서 “정부 주도 사업에 참여를 요구받으면 알아서 성의를 표시하는 게 아니라 분담 비율만큼을 강요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참여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분담 비율에 못 미치는 수준을 내놓더라도 정부 정책에 미온적인 기업으로 찍혀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는 식이었다”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이전 정권의 몰락을 기회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나마 대놓고 그런 식의 대기업 줄 세우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농어촌기금 조성 논의를 빌미로 대기업 사장들이 줄줄이 불려나가며 부질없는 기대였음이 증명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더니 결국 현 정부도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기업들을 힘들게 하는 정책은 잔뜩 쏟아내고 돈은 돈 대로 뜯어내는 게 공정경제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지난 8월 김동연 전 부총리의 삼성 방문 당시 청와대로부터 투자 종용이나 압박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이 김 전 부총리를 통해 밝혀졌었다. 삼성은 김 전 부총리 방문 당일인 8월 6일에는 투자발표를 하진 않았지만 결국 이틀 뒤 3년간 국내외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타이밍을 조절해 ‘구걸’이 아닌 것과 같은 모양새는 갖췄지만 결과적으로 ‘구걸’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번에 국회를 앞세운 ‘농어촌기금 줄 세우기’ 역시 같은 맥락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미르·K스포츠재단과 엮여 고초를 겪은 기업들에게 또 다시 기금 납부를 요구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전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납부한 기업들을 괴롭힌 현 정권에서 같은 기업들에게 다른 명목으로 기금을 갹출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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