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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서 대출 받고 싶다”는 차주 하소연...서민금융 존재 이유 알렸다


입력 2018.11.11 06:00 수정 2018.11.11 07:17        배근미 기자

“정책서민금융? 저신용자엔 아무 소용없더라” 반박에 머쓱해진 당국자들

당국 정책에 문턱 높인 ‘2금융’ 저신용자 되려 궁지로…“서민정책 재정립”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서민금융 박람회'에 참석해 금융상담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이대훈 NH농협은행장이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서민금융 박람회'에 참석해 금융상담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대출 급증세를 막겠다며 시중은행과 2금융권 등 제도권 금융기관들의 대출 강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 돈줄이 말라버린 취약차주들의 어려움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생계를 위해 당장 돈이 필요하지만 제도권 문턱은 높고 서민금융지원제도 역시 그림의 떡인 현실에서 이들은 고금리대출이라도 감사하다는 항변으로 진정한 서민금융 존재의 필요성을 알리고 있었다.

“정책서민금융? 저신용자엔 아무 소용없더라” 반박에 머쓱해진 당국자들

지난 8일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 등 25개 금융회사·유관기관과 함께 개최한 ‘2018 서민금융박람회’에서 직접 일일상담사로 나선 윤석헌 금감원장과 민병두 정무위원장, 이대훈 NH농협은행장 앞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중년의 한 여성이 상담을 자청했다.

서민금융 상담을 위해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는 A씨는 “살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보증을 섰다 채무를 떠안은 경험과 생계형 대출금을 연체한 기록으로 인해 제도권 대출이 불가능한 A씨는 생계수단인 식당 운영을 위해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 결국 지금은 법정최고금리를 넘어서는 고금리의 사금융을 이용 중이다. 그는 “충분히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제도권) 대출이 되지 않더라”며 “2금융 이용도 어려워 대부업을 쓰는데 그래도 돈을 빌려주기라도 하니 고마웠다”고 토로했다.

금감원장은 이같은 A씨에게 ‘사회안전망대출’을, 정무위원장은 ‘미소금융’을 각각 제안했지만 ‘전부 거절당했다’는 답변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서민금융제도를 몰라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라며 “장사를 하다보면 인건비나 임대료 등 돈이 절실할 때가 있는데 서민금융상품 역시 신용도가 낮으면 대출이 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A씨는 “채권 탕감도 필요 없고 (제도권) 대출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 달라. 그 높은 일수 이자도 꼬박꼬박 갚는데 은행 이자를 못 갚겠나”라며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카드대금으로 들어올 돈이 있지만 (제도권에서는) 이 역시도 담보가 되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결국 그는 이 자리에서도 상황을 타개할 만한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한 채 자리를 떠났다.

당국 정책에 문턱 높인 ‘2금융권’ 저신용자 되려 궁지로…“서민금융정책 재정립”

이번 행사에 앞서 윤석헌 원장은 "금융당국이 서민금융상품의 양적 확대에 치중해 취약계층의 사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배려가 부족했다“며 ”새희망홀씨대출 등 서민금융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채무조정제도를 보강해 연체자들이 정상적인 금융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서민금융 상담기능 강화를 통해 고금리 및 과다채무 피해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현재 금융당국의 대출 기조는 윤 원장의 희망과 달리 전방위에 걸친 가계대출 옥죄기를 바탕으로 취약차주들을 더욱 궁지에 몰고 있다. 당국은 은행권에 이어 2금융권에 대해서도 모든 부채를 소득과 연계해 대출을 규제하도록 하는 총체적 상환능력비율(DSR)제도를 도입하고 20% 이상 대출에 대해서는 ‘약탈적 금융’으로 규정해 관리·감독하고 있다. 또 금리인상기 속 법정최고금리 인하와 금리 자동인하제 등을 통해 지속적인 금리인하 압박에 나서고 있다.

당국의 이같은 움직임에 저축은행 등 2금융권 금리 평균은 9월 말 기준 18% 수준으로 눈에 띄게 내려가고 있지만 자금 융통이 쉽지 않은 7등급 이하 저신용 차주들에게는 되려 독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서민금융기관들이 금리를 낮추는 대신 리스크 절감을 위해 차주에 대한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2금융권 내에서도 저신용자 비중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저신용자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정책 서민금융상품’ 역시 민간 금융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된 바대로 미소금융 등 4대 정책금융상품을 이용 중인 8등급 이하 차주 비중은 평균 9.2%에 불과했다. 결국 돈이 간절한 저신용차주들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없이 대부업을 넘어 불법사금융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요즘 대부업체들의 대출 승인율은 10%대에 불과하다. 돈을 빌리겠다고 찾아온 차주 10명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1명에게만 대부 대출을 해주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부업에서도 밀린 차주들은 제도권 대출시장에서 탈락해 사채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차주들이 누구보다 높은 금리로 더욱 벼랑 끝에 내몰리는 악순환의 반복이지만 사금융 특성 상 수치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결국 2금융권의 최고금리를 무조건 낮추고 정책금융상품 공급 확대를 통해 취약차주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당국 기조를 처음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중소서민금융연구실장은 "민간 서민금융은 정책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정책에 따라 대출이 위축되고, 중신용자 시장 내 경쟁이 심해져 대출 수요가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정책 서민금융의 양적 확대가 민간 금융회사들의 서민금융 역할을 축소시킬 여지도 존재한다”며 “민간회사와 정책서민금융상품 간의 조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근미 기자 (athena350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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