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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권·조명균, 서희의 협상… '협상 태도'가 '협상 내용' 결정


입력 2018.10.31 10:07 수정 2018.10.31 10:23        데스크 (desk@dailian.co.kr)

<서정욱의 전복후계> '북한의 당당한 모습' vs '우리의 굴종적 모습'

자유 대한민국의 국격 훼손하고, 국민의 자존심 여지없이 짓밟아

<서정욱의 전복후계> '북한의 당당한 모습' vs '우리의 굴종적 모습'
자유 대한민국의 국격 훼손하고, 국민의 자존심 여지없이 짓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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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의 '무례'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굴종'이 자랑스러운 자유 대한민국의 국격을 훼손하고, 국민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고 있다.

첫째, 지난달 19일 평양공동선언 발표 직후 옥류관 오찬장으로 가보자.

당시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재계 인사들이 리선권과 함께 냉면을 먹고 있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이다.

이때 리선권이 우리 측 기업인들에게 대뜸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정색하고 일갈했다. 북한과 우리의 경제력은 약 47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이런 곳의 대표가 우리의 기업 총수들에게 훈계하는 언행을 서슴치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조명균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이선권의 행동을 문제삼기보다 오히려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불쑥 온 건 아니고 그 자리에 있었다"라며 "북측에서 남북관계에 전체적으로 속도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 같다"고 답해 옹호했다.

둘째, 이번달에 열린 10·4 선언 11주년 기념 행사 장소인 고려호텔로 가보자.

조명균 장관이 2~3분 늦게 나타나자 리선권은 “단장부터 앞장서야지 말이야”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후 조 장관과 회담장에 들어서며 “조평통 위원장이 복도에서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야. 일이 잘될 수가 없어”라고 핀잔을 놓았다.

조 장관이 “제 시계가 잘못됐다”고 하자, 리선권은 “자동차가 자기 운전수 닮는 것처럼 시계도 관념이 없으면 주인 닮아서 저렇게...”라고 면박을 줬다.

실제 조 장관의 시계는 '30분' 정도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는 그의 옆에 앉은 정재숙 문화재청장을 통해 확인됐다. '30분' 늦은 시계로 '2~3분' 늦은 것이다.
 
셋째, 이번달 15일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장으로 가보자.

위 회담 당시 통일부는 갑자기 탈북민 출신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를 불허했다. 전날 오후 갑자기 취재 기자 교체를 요구하더니 당일 아침 취재단 4명에서 김 기자만 일방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북측 요구는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회담이 열리는데 김 기자가 활발한 활동으로 알려졌으니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다."

통일부가 설명한 불허 이유다.

이러한 조명균 장관의 모습과 빼어난 외교술로 고려를 위기에서 구한 우리 역사상 가장 유능한 외교관이자 협상의 귀재 서희의 모습과 비교해보기 위해 993년(성종 12)으로 가보자.

“우리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였다. 아직 우리에게 귀순치 않는 나라는 기어코 소탕할 것이니 속히 투항하라. 너희 나라가 백성을 돌보지 않으므로 이제 천벌을 주러 온 것이다. 만일 화의를 구하려거든 빨리 와서 항복하라.”

고려는 당시 거란의 80만 대군(?) 침입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고려의 조정은 거란의 요구대로 항복을 하자는 '투항론'과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게 주고 화의를 청하자는 '할지론(割地論)'으로 나뉘게 되었다.

“지금 거란의 병세만을 보고 경솔하게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삼각산 이북 또한 모두 고구려의 옛 강토인데, 그들이 한없는 욕심으로 끝없이 강요한다면 다 내어주어야 하겠습니까? 국토를 떼어 적에게 준다는 것은 만세의 치욕입니다. 바라건대 저희들로 하여금 적과 일전을 겨루게 한 뒤 그때 가서 다시 화친을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서희는 당시 송과의 대치로 고려와의 전면전이 불가능한 거란의 입장을 정확히 간파하여, '선항전 후협상'을 강력히 주장하는데, 이는 결국 그의 국제정세를 읽는 뛰어난 안목과 철저한 사전 정보수집 능력, 결단력 있는 행동력의 산물이었다.

결국 두 나라는 협상의 테이블에 앉게 되는데, 거란 장수 소손녕과 그는 씨름에서 선수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신경전과 함께 많은 힘을 쏟아 붓는 샅바 싸움을 하듯 치열한 사전 기싸움을 벌였다.

“나는 대국의 귀인이니 그대가 나에게 뜰에서 절을 해야 한다.”

소손녕은 그의 기를 꺾기 위해 위와 같이 무례한 요구를 하나,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이 침착하게 답했다.

“신하가 임금에게 대할 때는 절하는 것이 예법이나, 양국의 대신들이 대면하는 자리에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소손녕이 계속 고집을 부리자 그는 노한 기색을 보이며 숙소로 돌아와 두문불출했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 나라의 운명이 달린 자리였으나 그는 한 나라의 대신으로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는데, 이는 결국 그가 거란이 전면전보다 화의를 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였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던 것이었다.

결국 소손녕이 서로 대등하게 만나는 예식 절차를 수락하면서 첫 번째 기싸움은 그의 승리로 돌아갔고, 최종 승리도 그에게 돌아갔다. 바로 세치 혀로 강동6주를 획득하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이룬 것이다.

만약 그가 지금 우리의 남북 협상 모습을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행여나 '북한의 당당한 모습'과 '우리의 굴종적 모습'이 북한의 세치 혀에 속아 NLL 등 우리 영토를 스스로 내어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글/서정욱 변호사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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