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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입력 2018.10.29 09:00 수정 2018.10.29 08:42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주민 고통 위에 신전을 세우다

북 지원 대못박기 정도껏 해야…침략의 야욕 감춘 평화 당의정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주민 고통 위에 신전을 세우다
북 지원 대못박기 정도껏 해야…침략의 야욕 감춘 평화 당의정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이틀째인 지난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집단체조와 '빛나는 조국' 공연을 관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이틀째인 지난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집단체조와 '빛나는 조국' 공연을 관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그해 6학년의 수학여행은 없었다. 한 학년 전체 아동 수가 쉰 서너 명 쯤 되는 시골학교였다. 서울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6년간 별러온 여행은 취소됐다. 게다가 교원노조 활동을 했다고 우리가 좋아하던 담임 선생님께서 붙잡혀 가시고 말았다. 5‧16에 대한 인상이 좋을 리 있었겠는가.

결혼한 지 6개월이 좀 더 지난 10월 26일이었다. 셋집엔 TV도 라디오도 전화도 없었다. 출근을 위해 시내버스를 탔는데 “서거하셨습니다”는 아나운서의 말이 귀를 울렸다. 순간적으로 혼란을 느끼는데 아나운서의 말이 이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했다는 뉴스였다. “억!”하는 외마디 소리가 생각보다 먼저 튀어 나왔다.

주민 고통 위에 신전을 세우다

군사쿠데타로부터 궁정동 사태 때까지 18년 5개월여의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통치자는 박정희였다. 그러니까 한 소년이 자라서 취직하고 당시로서는 약간 늦은 장가를 든 그 세월 동안 박정희 혼자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는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이 여럿이라는 사실이 부럽던 시절이었다.

10‧26 궁정동의 비극으로부터 39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방 이후 73년, 휴전 뒤로는 65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그 사이에 남북 양쪽의 국력은 역전되었을 뿐 아니라 그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 국내총생산(GDP)이 북한의 45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북한의 경제력은 우리의 2% 수준이다.

애초에 양측 주민들의 능력에는 차이가 없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결정적 요인은 정치‧경제 제도와 정치리더십이다. 제도란 정치리더십에 좌우되게 마련(적어도 과거에는)이라는 점에서 결국 정치리더십의 차이가 경제력의 차이를 초래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일성가(家) 3대가 우상에서 나아가 신의 지위까지 넘보게 된 세월 동안 우리는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치의 경쟁체제를 확립했다.

북한의 신(神)들은 주민들 고통 위에 자신들의 신전을 지었다. 반면에 우리의 리더들, 그 중에서도 박정희는 자신의 희생으로 국민들의 번영을 일구어 냈다. 그가 자기 권력의 영속만을 추구했다면 국민빈곤화를 획책했을 것이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다는 것을 그라고 몰랐을 리 없다.

정치리더십 외에 중요 변수가 또 하나 있었다. 후견국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보호와 지원 하에, 그리고 북한 체제는 구소련의 주도로 성립됐다. 구소련의 공산화 의도가 김일성 독재체제를 초래했고, 북한을 인권의 영구동토지대로 만들고 말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5‧16은 쿠데타로 시작되었으나 혁명으로 진화했다. 특히 경제면에서 한국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경험했다.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반세기만에 10위권의 경제 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5‧16과 박정희의 리더십, 그리고 미국의 지원 덕분이었다. 물론 국민이 함께 이룬 성공이다. 그렇지만 국민의 저력을 이끌어내 동력화할 수 있었던 공은 그 때의 정치리더십에 돌려야 한다. 그 이전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국가를 세운 이승만의 공적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도 스스로를 ‘혁명정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엔 ‘촛불집회’로 부르더니 어느새 ‘촛불혁명’을 운위하고 이젠 ‘혁명 대통령’을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5‧16 주체세력은 처음부터 혁명의 기치를 내걸었다. ‘혁명공약’이 끊임없이 방송된 바람에 국민 대다수가 저절로 외웠을 정도다. 이와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에게는 준비된 혁명이 아니었다. 노동계, 시민단체 등의 반정부 촛불집회에 편승해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 때부터 ‘혁명의 아들’로 자리매김 되려는 욕구에 추동되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북 지원 대못박기 정도껏 해야

혁명 대통령, 혁명 정부의 간판을 내걸기는 했지만 준비된 혁명공약이 없었다. 그건 혁명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41%에 그친 득표율을 가지고 혁명이라고 우겼다. 혁명과업으로는 ‘적폐청산’ ‘소득주도성장’ ‘남북관계개선’ 등이 제시됐다. 우파정권을 징벌하고 그들의 정책을 전면적으로 뒤엎는 작업이 될 것이었다.

득표율은 낮았지만 집권 후 여론 지지도는 역대 어느 대통령도 누려보지 못한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그 기세라면 ‘혁명’의 상황으로 국가를 이끌어가도 무리가 없으리라는 판단이 섰을 법하다. 문 대통령의 지시정치가 호기롭게 전개됐다. 적법절차나 관행 같은 것은 아랑곳없는 듯했다. 대통령은 지시를 했고, 그것은 곧 법이 됐다. 이제는 사법부까지도 대통령의 관할 하에 들어간 것 같은 분위기다.

다만 입법부만은 아직도 버티고 있다. 물론 야당의 안간힘 덕분이다. 그렇다고 협치의 정신을 살려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려 애쓸 정부가 아니다. 야당이 4‧27 판문점 선언 비준에 동의하지 않자 평양선언과 남북군사분야합의서에 대해, 국무회의 의결만을 거쳐 바로 비준해 버렸다. 대통령 임기가 5년뿐임을 잊어버린 것일까. 하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년 집권’을 공언했다. 그러니 훗날 우파 정권이 들어서 문 대통령에게 위헌‧위법을 따질 것이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적폐청산에 저항이 생기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혁명의 동력이 소진되면 저항력은 급속히 부풀어 오른다. 그 조짐이 여론지지율 추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평양회담과 능라경기장 연설로 여론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힘이 오래 가지 못하고 꺾이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이 28일 북악산 산행을 하던 중 “국정의 초점을 어디에 두고 올해를 정리하고 싶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평화프로세스가 결코 실패되지 않게, 기회 살려내도록 할 일이 많다”고 대답한 것으로 보도됐다. 김정은과의 관계를 돈독히 이어가는 일이 우선과제라는 뜻이겠다.

혹시라도 여론이 지지를 철회할 날이 빨리 올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는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와 미국 측의 잇따른 주의환기에도 불구하고 북한 측과의 경협과 군사적 경계태세 이완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서두르고 있다. 세상 모두를 못 믿어도 김정은의 진심만은 믿는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여겨질 정도다.

너무 서두르면 실수가 나오고 허점이 생긴다. 평양선언과 부속문서인 군사분야합의서를 국회 동의 없이 비준해 놓고 위헌논란이 일자 내놓은 해명이 그 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비준 다음날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건 사실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침략의 야욕 감춘 평화 당의정

동일한 국토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할 수 없으니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김 대변인의 말을 그냥 넘기겠는가. 그게 마음에 걸려 다음날 다시 “북한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약속한 여러 가지 경제 및 군사분야 협력 사업을 성사시키고자 앞으로도 추진력을 최대한 높이려 할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대못박기’다. 기정사실화 해버리면 미국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좌파정권으로서 그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지켜가려면 북한과의 관계 개선만은 만난을 무릅쓰고라도 해내야 한다는 결의에 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김정은을 잘 모르거나 모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정치리더십은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우선 김씨 일가의 신적 지위다. 김정은이 인간선언을 할 경우 그 즉시 그는 권좌에서 축출되고 말 것이다. 그의 지위를 받쳐 주는 것은 공포정치다. 공포가 사라질 경우 북한 주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불문가지다. 또 한 가지 버팀목은 대외적 허장성세다.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두려워하고 존경한다는 허구의 틀이 깨트려지면 북한 사이비 신정체제는 무너지고 만다. 주민들을 잘 살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위해 신의 지위를 포기할 리가 없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얼마나 신뢰하든 그건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우리의 안보태세가 심각히 이완되는 것은 용인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스스로 경계태세를 이완시키고 방어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적대세력의 침략의지를 꺾은 예는 없다. 침략의 의지는 평화라는 당의정 속에 감춰져 있게 마련이다. 6‧25남침을 준비하면서 김일성이 보여줬던 평화공세도 바로 그 당의정이었다.

미국과 척을 지더라도 북한‧중국과 잘 지내면 된다는 황당한 계산은 제발 멈출 일이다. 갈등과 전쟁은 멀리 있는 나라와 사이에서 생기는 게 아니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는 법이다. 중국과의 수천 년 관계가 어떠했는지 잊지 않았다면 친구를 버리고 적과 손잡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10‧26을 맞고 보내며 박 전 대통령 이래로 정말 국가발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리더가 있었던 것 같지 않아 감회가 더 새로워진다. 57년 전 시골 초등학생들의 수학여행을 방해했던 그 혁명가가 그때처럼 미워지지 않으니 별일이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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