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왕조 출신 감독 잔혹사, 이강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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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태 왕조 출신 감독 잔혹사, 이강철이라면?
    김응용부터 선동열까지 실패 수순
    이강철 신임 감독은 다를지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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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10-26 11:00
    스포츠 = 케이비리포트팀
    김응용부터 선동열까지 최근 감독으로 실패한 해태 출신, 이강철은 다를지 주목

    ▲ kt 3대 감독으로 임명된 두산 이강철 수석코치 ⓒ 두산베어스

    kt 위즈의 3대 감독으로 두산 베어스 이강철 수석 코치가 결정됐다. kt는 준플레이오프가 진행 중인 지난 20일 보도 자료를 통해 이강철 코치가 한국시리즈 종료 후 사령탑으로 부임한다고 발표했다.

    이강철 신임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의 레전드로 유명하다. 1989년 프로에 데뷔해 2년간 삼성 라이온즈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2005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내내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입었다. 통산 성적은 602경기에 등판해 152승 112패 53세이브 33홀드 평균자책점 3.29였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코치로서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에 앞서 2012년까지 오랜 기간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활약했다.

    ▲ KIA 현역 선수 시절의 이강철 ⓒ 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는 KBO리그 사상 최고의 명문 팀이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6개 구단 중 일원으로 창단되어 2001년 KIA에 인수되기 전까지 9회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해태 출신 감독 및 선수는 KBO리그의 지도자로 한동안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해태 출신 지도자들은 하나둘씩 감독직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이 현실이다.

    해태를 상징하는 김응룡 감독은 1983년을 시작으로 해태의 9번의 우승의 영광을 일궈낸 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을 맡아 2002년 삼성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창출했다. 이후 삼성의 구단 사장으로 영전한 뒤 2013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의 지휘봉을 잡아 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치며 재계약에 실패해 현장을 떠났다.

    ▲ 한화 사령탑 시절의 김응룡 감독 ⓒ한화 이글스

    원년에 투타를 병행해 ‘원조 이도류’로 이름을 날린 김성한은 프로야구 초창기를 풍미한 강타자였다. 2001년 해태의 3대 감독으로 취임한 그는 KIA로의 인수 뒤에도 2004년까지 지휘봉을 잡았지만 우승과는 연을 맺지 못했다. 2002년에는 포수 김지영을 훈련 중에 폭행하는 불미스런 일을 저지르며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김응룡 감독의 한화 사령탑 부임 시 수석 코치를 맡았으나 다시는 감독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서정환은 삼성의 원년 멤버였으나 프로야구 역사상 1호 트레이드로 1982년 연말 해태로 이적해 198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다. 1989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1998년부터는 삼성, 2006년부터는 KIA에서 각각 2년씩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으나 우승에 이르지는 못했다.

    호타준족을 자랑했던 이순철은 1985년 데뷔해 1997년까지 해태에 몸담았다. 1998년 삼성에서 한 시즌을 뛰고 은퇴한 그는 삼성과 LG 트윈스의 주루 코치를 거쳐 2004시즌을 앞두고 LG의 감독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그는 2년 연속 6위에 그친 뒤 임기 마지막해인 2006년에도 팀 성적이 부진하자 시즌 도중 경질됐다. 이후 그는 우리 히어로즈와 KIA에서 수석 코치를 역임했으나 감독 기회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

    ‘해결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한대화는 1983년 OB 베어스에 데뷔했으나 1986년 해태로 트레이드된 뒤 전성기를 누렸다. 1994시즌을 앞두고 LG로 트레이드되어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한대화는 현역 은퇴 후 모교인 동국대 감독을 거쳐 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한 뒤 2010시즌을 앞두고 고향팀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첫해 최하위인 8위, 이듬해인 2011년 7위에 그친 뒤 2012년에도 최하위로 추락하자 8월말 자진 사퇴했다. 이후 KIA의 수석 코치로 활동했으나 역시 감독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고 있다.

    ▲ KIA 사령탑 시절의 선동열 감독 ⓒKIA 타이거즈

    해태가 낳은 최고 스타이자 ‘국보급 투수’ 선동열은 일본 주니치 드래건즈에서 현역 은퇴 뒤 김응룡 감독의 뒤를 따라 삼성의 투수 코치로 국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 감독 부임 첫해인 2005년을 기점으로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009년 5년 임기의 재계약에 성공했으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에 무기력하게 패퇴한 뒤 전격 사퇴했다.

    선동열 감독은 2012시즌을 앞두고 친정팀인 KIA의 사령탑으로 선임됐으나 1년차 5위, 2년차와 3년차 각각 8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KIA 구단과의 재계약에 성공하자 팬들의 강한 반발로 감독에서 자진 사퇴했다. 공교롭게도 타이거즈 선수 출신 감독 중에서 타이거즈를 우승시킨 이는 아무도 없다. 선동열 감독은 2017년부터 야구 대표팀의 전임 감독을 맡고 있지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선수 선발 논란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국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2014년을 끝으로 선동열 감독이 KIA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타이거즈 출신 감독은 KBO리그에서 사라졌다. 강력한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소수의 스타플레이어가 팀 성적을 좌우했던 20세기 해태 전성기의 방식이 21세기에 들어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분석이 있다. 과거와는 달리 정규 시즌이 144경기의 장기 레이스 체제로 정착되어 선수층, 즉 ‘뎁스(Depth)’와 더불어 선수와 코칭스태프 간의 수평적 의사소통이 중시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해태는 모기업의 규모가 일천해 선수단에 대한 지원이 크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해태는 ‘헝그리 정신’을 앞세워 최다 우승의 신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21세기 KBO리그는 구단 프런트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육성 능력을 갖춘 팀이 강자로 군림하는 추세다. 이같은 야구 문화의 변화 탓인지 타이거즈 출신 레전드의 상당수는 ‘잔혹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도자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 2018년 KBO리그 정규 시즌 최종 순위 (출처: 야구기록실 KBReport.com)
    ⓒ케이비리포트

    kt는 2015년 1군 진입 이후 내내 하위권을 전전해왔다. 이강철 신임 감독이 kt를 중위권으로 도약시키는 것과 동시에 ‘타이거즈 출신 감독 잔혹사’를 깨뜨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 이용선, 김정학 /정리 : 야구기록실 KBReport.com(케이비리포트)[데일리안 스포츠 = 케이비리포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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