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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했던 '은행 채용비리' 검사…기관 제재 없다


입력 2018.09.19 06:00 수정 2018.09.19 06:09        부광우 기자

금감원 채용비리 검사 결과 통보…모두 개선 명령으로 마무리

법적 제재 근거 불명확하다지만…솜방방이 비난 불가피할 듯

금융당국이 채용비리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은행들에게 주의를 주는 수준에서 검사를 마무리했다.ⓒ씨씨제로포토 금융당국이 채용비리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은행들에게 주의를 주는 수준에서 검사를 마무리했다.ⓒ씨씨제로포토

금융당국이 채용비리 논란으로 물의를 일으킨 은행들에게 주의를 주는 정도로 검사를 마무리했다. 상당수 은행들의 채용 시스템에서 구멍이 발견됐음에도 기관 차원의 제재를 받게 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중징계를 내릴 만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 내려진 결정이지만, 금융권을 넘어 사회적으로 공정성 시비를 불붙게 한 사건이었던 만큼 솜방망이 처분이란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국내 은행들을 대상으로 채용 관련 내부통제 시스템 검사를 진행하고, KB국민·KEB하나·NH농협·SH수협·부산·경남·대구·광주·전북·제주은행 등 총 10개 은행들에게 경영 개선사항 조치를 통보했다.

개선사항 조치는 금감원이 금융사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명령으로, 금융사의 주의 또는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 지도적 성격의 조치다. 이를 받은 금융사는 3개월 이내에 문제가 된 내용들에 대한 대응·수정 방안만 정리해 금감원에 제출하면 된다.

이번에 금감원이 주요 은행들에게 전달한 개선사항 내용을 보면, 우선 국민은행은 신입 채용 계획 관리에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내규 상 신입 행원의 채용 계획 변경에 대한 전결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신규 채용에 대한 전결권자가 아닌 실무 진행 담당 부서장이 이를 결정하고 있어 채용 절차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경력 직원 채용의 투명성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국민은행의 인력지원부서가 실무 부서의 수요를 반영해 전문성이 요구되는 특정업무의 전문 직무 경력직원을 수시 채용하면서 관련내규에 인력지원부서 및 실무 부서 간 업무분장 등을 세부적으로 정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채용 프로세스에 책임 소재 등이 불명확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전문 직무 직원 채용 업무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나은행은 공개 신입 채용을 진행하면서 내부적으로 임직원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이런 추천을 받은 지원자에 대해 서류전형 통과 혜택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서류와 필기, 면접 등 채용 전형 단계별로 합격자를 고르는 과정에서 공고에 기재된 요건 이외에 세부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지 않아 합격자 선발이 자의적으로 운영될 여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은행의 경우 전문 계약직 채용과 관련한 내부통제에서 다소 미흡했던 면이 발견됐다. 금감원은 농협은행이 전문 계약직 채용의 전반적 관리에 부족한 점이 있는데도 각 부서의 전문계약직 직원 채용 절차와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부서의 자체감사나 인사담당부서의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이번에 금감원으로부터 경영 개선사항을 통보받은 다른 은행들도 채용과 연관된 내부통제 시스템에 허술한 구석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에 대한 금감원의 이 같은 조치는 올해 초에 진행됐던 채용비리 관련 검사에 따른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시작된 채용비리 의혹이 번져나가자 혐의점이 포착된 다른 은행들을 상대로도 검사에 돌입했다. 다만, 신한은행은 이들보다 채용비리 혐의가 나중에 알려지면서 검사도 뒤늦게 시작돼 아직 조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일단 이번에 금감원 검사 결과를 받아든 은행들은 기관 제재를 피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기관 경고 등 금융당국으로부터의 제재가 쌓이면 금융사는 업무 인가나 해외 진출 등에 제한을 받게 되는데, 모두 경영 상 유의 수준의 조치만 받으면서 걱정을 덜게 된 모양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검사를 벌인 은행들의 채용 절차 곳곳에서 맹점이 확인됐음에도 금감원이 기관 제재를 하지 못한 것은 채용비리 등에 대한 법적 제재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문제는 이처럼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이런 금융당국의 조치가 끓어오른 여론을 납득시키긴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청년 취업 대란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상황 속에서도 고위직 자녀들을 몰래 채용해 온 실태가 드러나면서 은행들이 공분의 대상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금융당국의 조치는 부족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특히 채용비리와 연계된 임직원들은 제재를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여 향후 꼬리 자르기 논란도 일 전망이다. 은행 임직원들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는 검찰 조사가 끝난 후 논의된다. 검찰 조사에서 채용비리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임원의 경우 결격사유가 적용돼 최고 제재인 직무정지까지 나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채용비리를 가지고 금융기관을 제재하기에는 규정 상 한계가 분명하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을 생각할 때 이번 금감원의 조치는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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