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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폐기’는 어디가고 정상회담 세리머니만 거듭되는가


입력 2018.09.17 08:08 수정 2018.09.17 08:12        데스크 (desk@dailian.co.kr)

<이진곤의 그건 아니지요> 1국 2체제 허구성 직시해야

동질성 회복 없는 통일은 망상…대북경협 대못박기는 안 된다

<이진곤 칼럼> 1국 2체제 허구성 직시해야
동질성 회복 없는 통일은 망상…대북경협 대못박기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이 지난 5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 서훈 국정원장, 김상균 국정원 2차장, 김영철 북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이 지난 5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 서훈 국정원장, 김상균 국정원 2차장, 김영철 북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8일 평양으로 간다. 김정은과 세 번째 회담을 갖기 위해서다. 청와대측의 표현대로라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에 따라 평양에서 진행되는’ 회담이다. 그 판문점 선언의 대의는 선언문 제1항에 표명돼 있다.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

1국 2체제 허구성 직시해야

당초 북한핵문제 때문에 시도된 문 대통령과 김정은 간의 만남인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어느새 북핵은 뒷전으로 밀리고 이른바 진보정치세력이 집요하게 추구해 오던 남북관계 개선‧발전, 공동번영, 자주통일로 취지 및 목적이 바뀌었다.

우선 몇 가지 의문부터 정리해둬야 하겠다.

①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한 주권재민의 국가다. 북한은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를 표방하는 전체주의적 세습 1인 지배 체제다. 전혀 다른 두 체제가 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이루고 혈맥을 이어 공동번영, 자주통일을 이루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문 대통령은 정말 믿는다는 것인가?

②‘자주통일’의 ‘자주’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말하자면 미국은 남북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뜻 같은데, 오해인가?

③5년 단임의 대한민국 문 대통령과 세습 종신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이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자주통일’은 어떤 것인가? 1국 2체제가 가능하다는 식의 환상은 배제하고 현실을 직시하며 대답해 줘야 할 일이다.

④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이념‧가치‧제도의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과 상시적 체제위기에 처해 있는 전체주의 유사 신정체제 북한이 공존공영을 이룰 수 있다는 망상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

⑤전혀 다른 이념과 체제를 통일시키는 방법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 우리의 체제로 북한을 변화시킬 복안이 있는지, 아니면 북한체제에 우리가 편입돼 가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그 중간체제가 있을 수 있다는 허황한 공상에 매달리고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하지 않을까?
여러해 전에 어떤 정치인이 당시의 대통령을 겨냥해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하던 게 생각난다. 국민적 상식을 자신만의 깨달음이고 신조인 양 생뚱맞게 역설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그 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우리는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으로 계속 살아가게 될 것인가. 그래서 말인데 문 대통령은 평양으로 출발하기 전에 국민을 향해 어떤 형태의, 무엇을 위한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밝혀줘야 옳다.

그 이전에 ‘통일은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라는 주장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1987년 개정 헌법 전문(前文)에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는 표현이 있다. ‘통일’이 당시엔 시쳇말로 ‘대세’였다. 본문 제66조 3항엔 대통령의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가 명시됐다. 무슨 의무인지가 모호하긴 하지만….

동질성 회복 없는 통일은 망상

이 조문의 제2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계속성’을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행동이나 결정도 헌법에 반한다는 뜻이겠다. 문 대통령은 ‘자주통일’을 강조하기에 앞서 이 ‘책무’에 대한 인식도 천명해 줘야 한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이는 헌법 제72조의 내용이다. 대통령의 권한 사항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굳이 독립 조항을 두기로 했을 까닭이 없다. 열거된 정책들은 국민의 총의를 물어서 결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문 대통령과 그의 대북정책 참모들은 지난 1월 이후의 남북관계 급변 상황에 대해 진지한 설명을 해 준 적이 없다. 이른바 ‘촛불혁명’의 아들이 한 말이고 결정이니까 그 자체로 옳다는 것일까? “그렇게 기록하고, 그렇게 행하라(So let it be written, so let it be done).” 영화 ‘십계’에서 이집트 왕이 신하들에게 지시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 독선적 스타일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대한민국의 건국부터 지금까지의 보수정권은 모두 악이다. 이제 비로소 정의를 구현하려고 한다. 그 지지는 촛불집회를 통해 이미 포괄적으로 표시되고 확인됐다. 따라서 대통령의 말 그 자체가 법일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민족의 행복을 위한 통일이 되려면 무엇보다 겨레에 대한 사랑이 구성원들의 의식에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 김정은 집단은 우리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폭력집단이다. 그런 세력이 민족끼리의 교류협력을 통한 공동번영, 그리고 민족통일을 희구한다? 거짓말로도 너무 허황하지 않은가.

휴전 후 지금까지 65년 이상을 우리가 전쟁을 면하고 살 수 있었던 게 북한 정권의 선의나 민족애, 우리 내부의 친북‧용북 주의자들의 ‘민족공조’ 노력 덕분이었을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국민 누구나 안다. 진보좌파가 ‘외세’라며 꺼려해 마지않는 미국이 우리를 지켜 준 엄연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우리를 지키는 힘은 우리 자신의 호국의지와 미국의 후견에서 나온다. 이게 현실적 조건이다.

평화적 통일이라는 것도 지난한 과업이지만 그 이후의 통일국가를 유지‧발전시키는 일은 더 어려운 과제다. 일단 국가지도이념‧가치체계‧통치체제가 단일화 돼야 한다. 남북한은 그 초입에도 이르지 못했다. 더 앞세워야 할 조건이 있다. ‘민족적 동질성’의 회복이다. 이 또한 기약 없는 꿈이다. 이산가족의 상봉을 두고도 온갖 유세를 다 부리는 북한이 정서적‧문화적 민족 하나 되기에 협조할 까닭이 있겠는가.

대북경협 대못박기는 안 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거듭되는 주의 환기와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에만 마음을 쓰는 인상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한국정부의 US 패싱이다. 감당할 자신과 실력이 있기나 한가. 과감히 앞질러 감으로써 미국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하려는 책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간파 못할 미국이 아닌 게 문제다.

남북한이 합의하는 것만으로는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지 않는다. 미국이 빠진 한반도는 정글의 법칙에 휘둘릴 게 뻔하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권을 떠나 미국과 손잡을 입장이 못 된다. 한반도 안보체제에 구조적 변화가 있기 어렵다는 뜻이다. 북한핵문제의 해결도 한미 공조라는 구도 속에서나 기대해 볼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일방적 북한 돕기는 오히려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평양행에 대해 굳이 말을 보태려 한다.

①이미 평양행이 확정된 만큼 취소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큰 기대는 감당하기 어려운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할 일이다. 김정은은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이웃집 주인이 아니다.

②김정은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핵 및 미사일을 지키려 할 것이다. 핵 협상과 관련해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북한이다. 장기적으로 중재자, 운전자를 자처해온 문 대통령의 입지가 곤고해질 소지가 다분하다.

③대못을 박아두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대규모 경제지원을 덜컥 약속해 버리면 우리사회엔 심각한 갈등구조가 형성될 것이고 북한에 의해서는 코뚜레를 꿰이게 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④우리나라 대표적 기업의 총수들, 그리고 산업은행과‧한국전력‧코레일 등의 수장들을 거느리고 평양에 가서 김정은에게 인사시키는 것은 모양으로나 의미로나 기피해야 할 일이다. 북한과의 경협은 비핵화 과제가 풀린 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

⑤종전선언을 구체적으로 약속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일단 양측 정상들이 약속하면 협정과 같은 성격을 갖게 된다. 정전협정이 무력화되거나 폐지된 후의 상황은 두 가지다. 다시 전쟁상태로 되돌아가거나 평화협정체제로 가는 것이다. 평화협정체제가 된다면 그건 남북이 두 개의 국가로 양립하면서 세계가 북한 왕조체제를 승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면서 무슨 통일인가.

당장 닥칠 위험은 더 심각하다. 평화협정이 기정사실화되면 유엔사령부와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할 명분을 잃는다. 한미군사동맹체제도 폐기되거나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물론 북한 측까지도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 평화협정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특별한 의미가 없는 선언을 북한이 그처럼 집요하게 요구해 왔을까.

북한의 핵을 폐기시키겠다고 시작한 일이 왜 이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급속히 진전되고 있는지 그야말로 요지경속이다. 진보좌파가 지금껏 꿈꾸고 기도해왔던 상황이 이런 것인가? 누가 좀 친절히 자세하게 설명해 주면 좋을 텐데….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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