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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 광주 재판, 법리에 맞는가


입력 2018.09.06 10:19 수정 2018.09.06 10:20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칼럼> 전두환 재판, 형소법 '관할' 법리 지켜져야

'망신주기' 기류에 법조인들마저 휘둘러서는 안돼

<칼럼> 전두환 재판, 형소법 '관할' 법리 지켜져야
'망신주기' 기류에 법조인들마저 휘둘러서는 안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11월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을 찾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11월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을 찾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하고 있다. ⓒ국회 사진공동취재단

최근 광주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재판받으러 오라고 한 것에 대해, 전 전 대통령이 고령에다 알츠하이머 병 등을 이유로 못 가겠다고 하자 여당 대표와 반대 세력의 비난이 거세다.

비난을 하려면 광주법원이 전 전 대통령을 재판하겠다는 것이 절차법, 즉 형사소송법에 맞아야 한다. 과연 법에 맞는가 살펴보기로 한다.

광주검찰에서 전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광주법원이 그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사건의 내용이나 죄목이 대체 무엇인가. 전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저지른 어떤 말이나 행동을 가지고 재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에 그가 서울에서 펴낸 회고록 책자의 내용을 가지고 명예훼손죄의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전 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3일 출간한 회고록에서, 지금은 사자(死者)가 된 모 신부가 생전에 5·18 당시 광주에서 헬기 사격이 있은 것처럼 증언했던 것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으로 표현한 대목이 나오는데, 그 부분이 이미 돌아간 그 신부의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족들이 고소한 모양이고 광주검찰은 그 주장을 받아들여 "사자(死者) 명예훼손"이라는 죄목으로 전 전 대통령을 광주법원에 기소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고령과 알츠하이머 병세를 이유로 광주까지 못간다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일로 '광주에서 재판받는 것이 과연 법에 맞느냐' 하는 무언의 항변도 담겨있을 것이다.

이런 항변은 법률상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바로 재판관할의 문제이다. 형사소송법상 법원이 누구를 재판하려면 "관할"이 있어야 하고, 관할이 있는 법원만이 그 재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좁은 지면에서는 회고록 내용이 그 신부나 유족들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나, 전 전 대통령의 몸상태가 어떤지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을 광주법원에서 재판하는데 전제가 되는 '관할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 전 대통령이 서울서 펴낸 자서전 내용을 문제삼아 광주에서 그를 재판하는 것은 관할면에서 법에 맞지 않다고 본다.

형사소송법 제4조 1항은 "관할"의 기준을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거소 또는 현재지로 한정하고 있고, 따라서 "피해자 거주지"는 법률상 형사재판의 관할 기준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이 설령 그 신부의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다 해도, 피해자에 해당하는 그 신부의 유족들의 거주지(광주)는 재판 관할지역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본 사자명예훼손 사건에서 광주지역이 "범죄지"에는 해당하는가. 만약 범죄지에 해당 한다면 광주법원도 이 사건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짐작컨대 아마도 광주의 검찰이 광주법원에 기소한 것은 광주 지역을 범죄지로 볼 수 있다는 논리인듯 하다. 그러나 이는 정말 무리한 논법이고 온당치 않은 해석이다.

검찰과 법원이 진정 국민을 위한 기관이 되려면 형법 뿐만 아니라 형사소송법의 해석에서도 금도를 지켜야 한다. 법조항의 해석, 적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회고록에서 언급된 신부의 유족들이 광주에 산다고 해서 광주 지역을 명예훼손의 범죄지로 취급한다면, 앞으로 서울서 만들어져 전국에 배포되는 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 중에 특정 직업군이나 특정 계층에 대한 명예훼손적 내용이 언급되었을 때, 부산이나 대구, 또는 대전에 거주하는 그 직업군의 종사자들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문제를 삼으면 부산이나 대구, 대전이 범죄지가 되고, 그 기사를 쓴 기자나 신문사 대표는 그 지역까지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하나.

서울서 펴낸 책이나 신문에 만약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내용이 있다면, 당연히 그 책을 펴내고 신문 발행한 곳인 서울을 범죄지로 보고 서울에서 재판하는 것이 상식적인 법해석이다.

아무리 적폐 재판이 난무한다지만, 기소나 재판은 피해감정 혹은 여론만으로 할 수 없고, 죄형법정주의와 재판절차법에도 맞아야 한다.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교도소로 보낸 현 세태에서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망신주겠다는 기류에 법조인들이 줏대없이 너무 휘둘리는 것 같다.

상상해보라. 광주법원이 실제로 전 전 대통령을 불러 재판을 한다면 재판은 뒷전이고 법원 앞의 소란과 봉변이 더 큰 뉴스가 될 것이다. 그러고보니 전 전 대통령이 광주법원의 출두 요청에 불응하는 것을 강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내심 바라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점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기소가 된 이상 재판을 해서 결론을 내야 한다면 서울법원으로 사건을 이송해서 서울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마땅하고 타당한 일이다.

글/석동현 전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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