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병역특례, 국익의 관점에서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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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 병역특례, 국익의 관점에서 보면
    한류 스타의 활약, 영향력 확대는 소프트파워이고 국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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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8-09-06 08:10
    하재근 문화평론가
    한류 스타의 활약, 영향력 확대는 소프트파워이고 국익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시안게임 이후 병역 특례 논란이 뜨겁다. 메달 획득으로 국위를 선양했다는 사람들에게 그 공을 인정해 군면제 혜택을 주는 것에 거센 반발이 나타난다. 공평하게 다 군대에 가라는 것이다. 국방부나 병무청에선 이런 여론을 감안해 대체복무제를 축소 또는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한다.

    특히 대중예술인에 대해선, 그들이 태극기 달고 나라 위해 뛴 것도 아닌데 병역 혜택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그들이 나라를 위해 무슨 공을 세웠길래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이냐’는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포상 면제’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에선 그들이 세운 공의 내용에 대해 복잡하게 따져야 하고, 별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혜택을 준다는 인상을 받기가 쉽다.

    하지만 ‘국익’의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운동선수나 한류스타를 군대에 보냈을 때 우리 공동체가 얻을 이익과, 그들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했을 때 우리가 얻을 이익을 비교하는 것이다. 여기선 혜택을 받는 주체가 우리 공동체다.

    스타급 운동선수나 대중예술인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때, 그들이 군대에 있을 때보다 우리에게 훨씬 큰 이익을 준다. 예컨대 손흥민이 해외 빅리그 무대에서 활동할 때와 국내에 들어와 군인이 됐을 때를 비교하면 말이다. 손흥민의 활약으로 한국이 더 널리 알려지고, 동아시아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국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 국가브랜드 가치, 소프트파워가 향상되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BBC는 ‘케이팝이 지구촌 한국어 배우기 열풍을 이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류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말레이시아, 알제리 등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2017년엔 태국에서 중고교생용 한국어 교과서가 공식 발간됐다. 당시 우리 교육부 관계자는 “한류 열풍을 타고 태국에서 한국어 학습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면서 “이번 교과서 발간은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태국 10대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엔의 한 원조 기구는 중동의 난민 청소년들과 서방의 학생들을 영상통화 서비스인 스카이프(Skype)로 연결해 소통하도록 하는 매개체로 케이팝을 활용한다고 한다. 알제리에서 케이팝 팬들이 평상시 대화에 한국어 문구를 스스럼없이 사용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도 인도네시아 한류팬들이 한국 대표팀 응원에 나서서 한류의 영향력을 확인시켜줬다. 심지어 아시안게임 폐막식 하이라이트 무대를 우리 아이돌인 슈퍼주니어와 아이콘이 장식하기도 했다. 현지의 6만 관객이 이들의 한국어 노래를 ‘떼창’했고, 실신해 실려나간 관객도 있었다. 이런 한류 인기가 한국 상품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져 국가경쟁력이 올라가기도 한다. 관광산업도 더 발전한다.

    방탄소년단은 미국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있다. 그들의 신곡이 나오자마자 미국인들이 한국어 가사를 습득해 떼창하기도 했다. 이러면서 우리 국가의 위상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일본을 우습게 여기지만 세계무대에선 일본과 한국의 위상이 비교가 안 된다. 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이 곳곳에 박혀있다. 방탄소년단과 같은 한류 스타의 활약으로 한국의 영향력도 확대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소프트파워이고 국익이다.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군대에 보내서 우리 공동체가 얻을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병역 특례 제도를 없애는 게 능사는 아니다. 국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논의하는 게 합리적이다. 병역 특례 기준이나 방식을 좀 더 적절하게 손보는 정도로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 대중문화계는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인데, 다만 가수의 경우는 예컨대 ‘해외 차트 100회 이상 1위’라든가 그밖에 적절한 기준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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