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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두 어른이를 어찌하나'…중재자는 고민한다


입력 2018.09.05 03:00 수정 2018.09.05 05:56        이배운 기자

북미정상 자존심 대결 ‘팽팽’…체면 넘어 정치력 걸린 문제

대북특사단 중재안 마련 관건…실패시 ‘코리아패싱’ 위험

북미정상 자존심 대결 ‘팽팽’…체면 넘어 정치력 걸린 문제
대북특사단 중재안 마련 관건…실패시 ‘코리아패싱’ 위험


문재인 대통령 ⓒ데일리안 문재인 대통령 ⓒ데일리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이 5일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북한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메시지와 그에 따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현재 북미 핵협상 교착 원인은 북미 양 정상의 특출난 자존심과 '고집'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세습 왕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슈퍼 재벌'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유년시절부터 자존심이 남달랐음이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비핵화 교착 정세에서 이들의 자존심 싸움은 개인적인 체면 문제에서 나아가 국내 정치력 문제까지 결부된 모양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내적으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떳떳하게 맞서는 지도자의 모습을 선전해야 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모습을 과시해야 하는 입장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미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비핵화 당한다는 굴욕적 분위기를 피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비핵화를 이행하는 모습을 선전하고 싶어 한다고 분석한다.

군부와 주민들의 반미 의식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섣불리 미국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가는 수습하기 힘든 체제 동요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회는 과거부터 미국 등 서방세력에 의해 포위·고립됐다는 적대 의식이 지속돼 왔다. 북한정권은 이에 맞선다는 취지로 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했고 이를 ‘주체의 보검’이라고 칭하며 각별한 가치를 부여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의 압박에 못이겨 핵무기를 포기하는 듯 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주민과 군부의 불만에 불을 지피고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 여론을 촉발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례없는 3대 세습 독재자인 김 위원장은 가뜩이나 정통성이 취약한 입장이다.

이에 잭 데빈 전 CIA 국장대행은 지난 3월 일본 매체 기고를 통해 “김 위원장의 정신구조는 타고난 신과 같은 힘으로 왕국을 이끈다는 격리된 세계 속에서 구축됐다”며 “그의 민족적 자존심을 자극하고 북한 내부적으로 체면을 세울 수 있는 먹이를 주면 양보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데일리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데일리안

트럼프 대통령의 회고록 '거래의 기술' 공저자인 토니 슈워츠는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한 것에 대해 "트럼프는 굴욕과 수치심에 대해 병적인 두려움이 있다"며 "북한과의 협상에서 약하고 작아 보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성향은 지난달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통해서도 드러난 바 있다. 매체는 백악관 보좌관들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며 참모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날 해당 보도를 '가짜뉴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있고 핵협상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협상 교착상태를 거듭 부정하는 것은 개인적인 자존심 발동과 더불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최대 업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여론의 확산을 막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행정부들이 북한에 먼저 양보를 한 탓에 핵합의가 뒤집어 졌다고 비판하며 이같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한 바 있다. 비핵화 회의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핵협상 실패를 인정하거나 북한에 양보를 내주는 결정은 과거 핵 합의보다도 후퇴했다는 비판과 함께 무능론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우리 정부는 북미 양측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으면서도 비핵화에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중재안을 제시해야만 한다. 한쪽의 양보를 종용하거나 중재안 도출에 실패하는 것은 북미가 한국의 사정을 살피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려 나서는 '코리아패싱'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교착된 핵협상 국면에서 북미정상은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탄두 일부만을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합의를 맺을 수도 있다. 양 정상이 손쉽게 외교적 실리를 챙기고 대내외적으로 체면을 지키는 한편, 한국은 북한의 잠재된 핵 위협에 계속 노출되는 것이다.

지지부진한 대화에 인내심을 잃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락한 여론과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대북 군사적 타격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국 정보당국은 북한의 ICBM완성이 목전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본토가 핵 위협에 노출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북 타격을 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명분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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