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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개정안]자동차 관세폭탄 저지선 무너져


입력 2018.09.04 11:01 수정 2018.09.04 11:44        박영국 기자

철강 관세폭탄 저지에 희생한 자동차 업계, 박탈감 심해져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들이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현대·기아차 해외 수출 차량들이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현대자동차그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 서명이 미국의 자동차 관세폭탄(무역확장법 232조)의 저지선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동차 업계의 기대가 무너졌다.

정부는 지난 3일 한미 FTA 개정 협정문을 공개하고 외교부‧법제처 심사와 차관‧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등 국내 절차를 거쳐 서명한 뒤 개정 협정에 대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양국의 한미 FTA 합의 이후 이뤄진 정상적인 후속 절차지만, 당초 정부가 한미FTA 발효를 한국산 자동차 관세 면제 여부와 연계해 협상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린 움직임이기도 하다.

지난 7월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미국을 방문해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만나 자동차 관세 면제를 요청하는 자리에서도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한미FTA 개정안의 국회 비준동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의 자동차 관세 면제에 대한 언급 없이 한미FTA 발효 절차를 진행하면서 두 사안이 연계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면제 여부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생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이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미국에서 각각 앨라배마공장과 조지아공장을 운영하며 현지 수요에 대처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차량도 양사 도합 연간 60만대에 육박한다.

한국지엠 역시 스파크와 트랙스 등 미국 GM에 공급하는 물량이 연간 13만대에 달하며 르노삼성자동차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물량 배정에 따라 닛산 로그 미국 수출물량 12만대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해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경우 총 85만대에 달하는 자동차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

자체 브랜드로 미국에 판매하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가뜩이나 치열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수출 방식으로는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GM 역시 한국지엠에 대한 물량 배정 비중을 낮출 수밖에 없다. 한미FTA 발효에 따른 관세면제 효과를 노리고 르노삼성에 로그 생산을 위탁한 닛산도 다른 방식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한미FTA 개정협상 과정에서 자동차 분야를 양보하는 대신 당시 최대 통상 이슈였던 철강 관세폭탄을 면제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업계의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한미FTA 개정을 통해 한국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 20년간 픽업트럭을 수출할 수 없게 됐고, 미국산 자동차 5만대가 국내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국내 시장에 들어와 팔리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동차 업계의 희생으로 국내 철강업계는 미국의 ‘25% 고율 철강 관세부과’ 대상국에서 제외됐지만 막상 자동차 업체가 맞게 된 관세폭탄을 저지할 방법은 사라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미FTA 개정안 서명 추진을 통해 미국에 자동차 교역 여건 개선 의지를 전달함으로써 자동차 관세 면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 ‘자동차 분야를 양보했다’고 어필하는 것은 기존 합의된 한미FTA 개정안으로도 충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안에 담긴 내용은 동일한데 서명 이전과 이후의 효과가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가 한미FTA 개정안에 쉽게 서명해준다고 해서 서명 이전보다 자동차 관세 면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면서 “한미FTA 개정은 어차피 미국 쪽이 더 아쉬운 문제인데, 관련 이슈를 232조 발동 시점까지 끌고 가는 게 낫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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