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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포장된 멋진 인형’ 스웨덴의 국왕


입력 2018.09.02 06:53 수정 2018.09.02 06:56        이석원 객원기자

<알쓸신잡-스웨덴 ⑬> 사회주의자들에게 왕실이란?

부정적 견해 늘어나지만 그래도 상징적 존재로 남아

현재 스웨덴 국왕이 집무를 하는 스웨덴 왕궁. 스웨덴 국왕은 유럽의 다른 입헌군주국 중에서도 가장 권한이 약하다. (사진 = 이석원) 현재 스웨덴 국왕이 집무를 하는 스웨덴 왕궁. 스웨덴 국왕은 유럽의 다른 입헌군주국 중에서도 가장 권한이 약하다.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은 잘 알려진 것처럼 입헌군주국이다. 국왕이 존재하지만, 유럽의 거의 모든 국왕이 그러하듯이 일체의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일종의 상징적인 국가원수인 셈이다. 그런데 스웨덴은 다른 입헌군주국보다도 더 국왕의 권한이 없다. 1974년 개헌을 통해 국왕에게 주어졌던 총리와 각료 임명권마저 의회로 넘어간 상황이다. 외국 대사의 신임장을 주는 일 외에 국왕이 국가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게 전혀 없다.

현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브 왕이 1973년 즉위한 후 의회와 협의해 이룬 일이다. 그 당시까지 존재하던 장남승계와 귀천상혼제를 폐지하면서 국왕이 국회에 대부분의 권한을 내어준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칼 16세 구스타브 왕을 계승한 사람은 아들인 칼 필립이 아니라 첫 자식이며 칼 필립의 누나인 빅토리아 공주다.

지난 2010년 6월 19일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빅토리아 공주와 다니엘 베스틀링 대공의 결혼식이 열렸다. 결혼 후 대공의 작위를 받았지만 다니엘은 빅토리아의 개인 피트니스 트레이너 출신인 평민이다. 브라질계 독일인인 구스타브 왕의 부인이지 빅토리아 공주의 어머니 실비아 왕비도 평민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공주의 여동생인 마들렌 공주와 남동생이자 유일한 왕자인 칼 필립도 평민과 결혼했다.

지난 해 한 연구기관에서 스웨덴 시민들을 대상으로 왕실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 스웨덴 시민들의 73%가 왕실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다. 스웨덴 국왕의 존재가 스웨덴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하고, 더 멋진 나라로 느끼게 한단다. 현 국왕인 칼 구스타브 16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좀 더 높기는 한데, 빅토리아 공주에 대한 호감 때문에 상쇄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런데 사실 사회주의자들의 나라인 스웨덴에서 국왕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것은 다소 의외다. 정치 체제나 경제 구조가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스웨덴의 기본 이념인 사회민주주의가 구체적인 이데올로기의 개념이라고 하기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개방적 시장주의 경제체제를 택한 것이 스웨덴이라고 할 수 있고, 상당수의 스웨덴 시민들은 큰 틀에서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한다.

현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브와 왕비 실비아.(사진 = 이석원) 현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브와 왕비 실비아.(사진 = 이석원)

아무튼 사회주의가 정치 이념이 된 첫 계기인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군주국가에서의 사회주의는 왕정을 폐지했던 게 일반적인 세계사인 것을 감안했을 때 스웨덴에서 국왕이 존재한다는 것도 고개 갸우뚱하게 할 일이지만, 더군다나 국왕의 존재가 제법 호감을 얻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세대에서는 다소 다른 분위기들도 감지된다. 국왕, 즉 왕실의 존재에 대해 대체로 60대 이상의 장, 노년층에서는 역시 호감도가 높다. 국왕이 상징하는 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그러나 4, 50대의 분위기는 다소 신중하다. 그들은 국왕이 나라에 보탬이 된다면 존재한다고 해서 나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비판적인 시각도 가지고 있다. 지난 2010년 빅토리아 공주 결혼식에 대해서도 “너무 호사스러운 결혼식은 스웨덴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왕실에 들어가는 시민들의 세금이 과하다는 지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왕실이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면 국왕의 존재가 스웨덴에 이로운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0대는 부정적인 의견이 높다. 앞선 조사에서 스웨덴의 30대는 왕실 폐지에 대한 주장도 드러내고 있다. 시민들에 대한 복지를 줄일게 아니라 왕실로 들어가는 시민들의 세금을 줄이거나 끊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의견도 있다. 어쨌든 왕실로 들어가는 세금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로 보인다.

그런데 20대들의 생각은 재밌다. 물론 20대들의 왕실에 대한 가장 많은 의견은 ‘무관심’이다. 농담 삼아 “아, 우리나라에 아직도 국왕이 있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 젊은 층에서는 “스웨덴의 국왕은 스웨덴을 외부에 홍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국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칼 16세 구스타브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국왕이 될 빅토리아 공주와 그의 남편인 다니엘 대공. (사진 = 이석원) 칼 16세 구스타브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국왕이 될 빅토리아 공주와 그의 남편인 다니엘 대공. (사진 = 이석원)

스웨덴 역사 속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국왕들이 몇 명이 있다.

1521년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가 하나의 국가 개념으로 존재하던 칼마르 동맹을 깨고 스웨덴을 덴마크에서 구한 구스타브 1세 바사왕은 스웨덴의 국부로 추앙받는다. ‘스웨덴의 광개토태왕’ 격이면서 ‘북방의 사자왕’이라고 불렸던 구스타브 2세 아돌프왕은 17세기 30년 전쟁 때 스웨덴을 유럽의 최강국으로 만들어 존경받기도 한다.

또 그의 딸 크리스티나 여왕은 가톨릭 신앙을 위해 신교 국가의 왕위에서 스스로 내려온 신념의 여왕으로 불린다. 현재 국왕의 거주지를 드로트닝홀름(여왕의 섬)이라고 부르고, 스톡홀름 시내 중심가의 보행자 전용도로를 드로트닝가탄(여왕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세계에서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는 44개다. 그 중에서 국왕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타르, 오만 등 중동의 나라들과 동남아시아의 부르나이, 그리고 부탄 정도다. 그 외 나라들은 입헌군주국가다. 국왕은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 이들의 경우 국왕은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다. 경우에 따라 태국처럼 쿠데타를 일으켜도 국왕이 승인해줘야 하는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전 존재하기만 할 뿐이다.

현재 스웨덴 국왕의 가족이 거주하는 드로트닝홀름 궁전 앞에서 만난 룬드에 사는 대학생 마리아 베네스트룀은 “국왕은 예쁘게 포장해서 멋지게 보이게 하는 스웨덴의 인형”이라고 조롱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시민 중 ‘국왕이 없는 스웨덴’을 상상해 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마도 한동안의 스웨덴 역사에서 국왕은 계속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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